시애틀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문득 창밖을 봤다. 쨍하게 맑은 하늘이 반짝인다. 일하는 도중 바깥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꿀꿀해진다. 점심시간,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다시 창문 밖을 본다. 조그마해진 자동차가 바삐 고속도로 위를 움직인다. 가지런히 정렬된 길, 그리고 높은 빌딩 숲이 보인다. 하지만 하늘은 늘 그렇듯이 푸르다.
하늘이 유독 맑은 날은 오피스에서 레이니어 (Rainer) 산을 볼 수 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랜드마크와도 같은 곳이다. 사시사철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있는 이 산은 약 4,400미터 정도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활화산이긴 하지만 폭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뉘는 듯하다. 중요한 건 다운타운에서 쉽게 잘 보이는 만큼 시애틀 중심가에서 약 3~4시간 정도로 이동하면 각종 트레킹을 해볼 수 있는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
작년 이맘때쯤인가 지인들과 함께 레이니어 국립공원에 방문했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잡아서 2박 3일 동안 음식도 해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작년 시애틀 여름은 유독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여름인걸 감안해도 눈이 많이 녹아서 조금 아쉬워했었더랬다.
레이니어 등산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가장 쉽다는 코스를 골라서 예상 시간이 2시간이라는 말을 철떡 같이 믿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꼬박 4~5시간은 걸렸었다. 부드러운 흙으로 덮인 산이 아니라 대부분 지형이 딱딱하고 돌이 많아 발목이 욱신 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등산하면서 귀여운 동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람쥐부터 시작해서 이름 모르는 동물(?) 그리고 곰도 봤다.
막상 그때 등산을 하면서 다음에는 절대 이곳을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시애틀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라 지인이 시애틀에 놀러 오거나 부모님이 방문하시면 자연스럽게 관광지 코스로 레이니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도 뭔가를 알아야지 지인에게 추천하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등산을 시작했었지만, 그다음 날 나는 우수한 저질 체력을 증명하고야 말핬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고, 몸살 기운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회복하긴 했지만, 비교적 가볍지 많은 않은 산행으로 너무나도 쉽게 백기를 들었다.
'아, 다음에는 등산은 하지 말고 포토스폿에서 사진만 찍고 다른 옵션을 추천해야지!'
레이니어를 기대하고 있는 지인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같이 산행을 즐길 수는 없을 거 같다.
물론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가급적이면 여름이 절정일 때보다는 비교적 선선해지는 가을이나 늦봄이 좋다. 나 보다 우수한 저질체력을 가지기에는 많이 어려운 일이긴 하나 레이니어는 분명 쉬운 등산 코스는 아니다.
다시 오피스로 돌아와서, 유독 일할 때는 하늘이 맑으면 맑을수록 우울해진다. 밖에 나가고 싶고, 컴퓨터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탈출 본능이 되살아 난다. 중간에 집중이 흐트러지면 나는 일부러 자리를 옮겨 뻥 뚫린 창가 옆을 찾아 안락해 보이는 의자에 걸터앉는다. 그러면 기분도 전환되고 창가 멀리 보이는 레이니어를 힘겹게 올랐던 작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푸른 하늘을 보고 우울해지다가도 레이니어에서 고생한 기억을 떠올리면 끝내 웃음을 짓게 된다.
밖에 나가도 고생, 안 나가도 불평이다. 그래도 그때 고생은 하긴 했어도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서 기분 전환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후, 그래도 맨날 놀기만 하면 거지꼴이 난다. 적어도 오피스에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고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면 곧 월급날이 오지 않는가. 그렇게 위안하며 난 일을 이어가고, 또 다음 휴가 계획을 바쁘게 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