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평생의 소개팅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긴 한데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그 돈을 들여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것.
살아보니까, 인간은 생각보다 더 가성비가 떨어진다. 스스로와도 낯을 가린다는 건 심지어 좀 모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뻔한 질문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지루한 과정을 지겹고 길게 겪어야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사춘기를 거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얼추 서른이 넘어서야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대충 '취향'이라는 것을 정립한 후에야 비로소 조금 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과정도 공짜가 아니다. 적잖이 돈을 들여서 뭘 사고, 그걸 고스란히 버리는 걸 몇 번 반복해야 비로소 내 취향이라는게 생긴다.
예전에는 치킨, 피자면 그냥 덮어놓고 좋았다. 양 많은 호*이두마리치킨이나 피*스쿨 피자를 주로 먹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대체 비싼 돈을 주고 왜 다른 브랜드의 치킨을 먹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촌치킨은 별개였다. 뭘 모르는 입에도 허니콤보는 신세계였으니까.) 덜 벼려진 뭉툭한 혀끝으로는 달고 강한 양념으로 뒤범벅된 튀긴 닭의 맛이 구별되지 않았다. 질보다는 양, 무조건 양이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치킨이 '얇은 튀김옷'과 '적당한 짭짤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치킨이 맛있다'가 아니라 '음, 이 집 닭은 염지가 잘 됐군.'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할 때 나는 뜬금없이 내가 어른이 된 것을 실감한다. 허니*보는 교*이 맛있고, 네*는 허니*보와 꽤 비슷한 맛이 나므로 교*이 장사를 안하는 날에 대안으로 시킬만 하나 아무래도 치킨 조각이 크고 튀김옷이 더 두꺼우니 섬세한 감칠맛은 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남들에게 푸*닭의 최애는 고추마요일지라도 내 입맛에는 오리지널이 제일 맛있고, 유튜버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블*알리오올리오는 왠지 발사믹식초의 맛이 나서 나한테는 별로더라 - 하는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인 입맛의 분류 말이다. 고기가 푸짐하게 올라간 피자를 먹고 싶으면 파*존스, 정통 피자가 먹고 싶으면 알*로, 지갑 사정이 안 좋으면 5*쌀피자, 콜라는 펩*보다는 코*, 제로 칼로리 탄산을 먹으려면 칠*사이다 - 이런 복잡미묘한 여러개의 알고리즘이 내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생성되어 있어 0.5초만에 내가 가장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기까지는 서른하고도 몇 해의 긴 시행착오 과정과 상당량의 월급이 필요했다.
통짜 몸매라 아래위를 분리하는 옷을 입어야 날씬해보인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허리선을 강조하는 원피스를 몇 벌이나 샀던가. 굽 높은 구두, 진한 눈화장, 갈매기 눈썹, 붉은 머리색, 알록달록한 꽃무늬 패턴 블라우스들을 거쳐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있어 보이는' 옷을 고르기까지 버려진 옷들이 차고 넘친다. 이제는 인터넷쇼핑몰에서 디자인을 한번 쓱 보기만 해도 이 옷이 내 몸에 걸쳐졌을 때 어떤 실루엣일지를 너무나 잘 아는 수준이 되었다. 배가 도도록한 나에게 허리선을 강조한 원피스는 더 뚱뚱해보인다. 피부가 흰 편이라 푸른 색 계열이 잘 어울린다. 이렇게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은 신기하다. '내가 이런걸 좋아했던가? 이건 싫어하네?' 를 계속 반복해가며 나 자신과 끊임없이 소개팅을 하는 기분이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복잡하며, 얼마나 예민한가. 울트라 블루와 코발트 마린의 그 미묘한 색감 차이 사이에서 몇 시간을 줄타기하는 이렇게나 몹시 정교한 생명체가 나였다니.
어느 쪽이 코발트 블루, 어느 쪽이 울트라 마린인지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을까?
가끔은 그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퇴근하고 들어오는 엄마 손에 들려 있었던 봉지를 열면, 습기 찬 상자 속에 알루미늄 포일로 싸고 고무줄로 묶어 미지근하고 눅적한 양념 치킨을 보고 환호했던 시절, 피자고 치킨이고 있기만 하면 좋았던, 온 가족이 모두 모여앉아 한 마리 치킨을 뜯던 어린 시절 말이다. 내가 나를 다 알지 못해 남과 나를 분리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내가 너고 네가 나 같았던 아주 오래된 희미한 기억 말이다. 그 때 내 앞의 네 기쁨은 내 기쁨이었고, 네 슬픔은 내게 더 큰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너는 너무나 너, 나는 너무나 나일 뿐이다.
아직도 온전히 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런걸 좋아해' 라고 말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 줄 몰랐기에, 앞으로도 내 취향은 계속해서 바뀌고 나는 끊임없이 재구성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나와 하는 소개팅이 아직까진 즐겁다.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이 과정은 꽤 달콤하고, 가끔은 설레기도 한다. 새삼스레 요모조모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를 관찰하며 지치지 않고 내게 관심을 가져보자고 맘을 먹었다. 평소 녹색 옷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 벌도 산 적 없었는데, 얼마 전 충동적으로 산 짙푸른 초록색 원피스는 입을 때마다 싱그러운 느낌으로 나를 기쁘게 한다. 여름처럼 시원한 색감의 초록색 원피스가 '당신의 취향에 + 1', 경쾌한 알람을 울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