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원 _ the origin of love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순간

by Bella

어느 아침에는 그가 내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기뻐서 우리의 사랑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처럼 느껴지다가도 그날 저녁에 바로 말도 섞고 싶지 않아지는 날이 있다. 눈빛만 봐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하고 의아해지는 순간도 있다.


나는 과연 너를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인생 영화'는 존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이다. 나는 그 영화를 스무 번도 넘게 보았다. 수험생 시절에도 틈만 나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독서실 책상 네 모서리에 담요를 두르고 주변을 어두컴컴하게 가린 다음 넷북으로 그 영화를 몇 번씩, 몇십 번이나 돌려 보았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면이 설명할 길 없이 좋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주인공 헤드윅이 'the origin of love', 우리 말로 '사랑의 기원' 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은 모두 운명의 반쪽과 등을 맞댄 채 붙어 있었다. 그들은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얼굴로 온 세상을 빠짐없이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 자체로 온전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갈구하지 않았으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서로를, 완벽한 서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질투한 제우스가 우리의 맞붙은 등을 벼락으로 내리쳤고 갈라진 흔적은 척추가, 상처를 꿰맨 자리는 배꼽이 되었다. 태풍과 폭풍우가 몰려왔고, 혼란 속에서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서로를 찾아 헤매게 된 것이다. 과연 네가 내 반쪽이 맞을까? 끊임없이 의심하며 사랑을 찾아 떠돌았던 지난 날들은 모두 망할 제우스 때문이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기억나지도 않는 오래 전의 과거에 우리는 서로 척추를 맞대고 온기를 공유하는 하나의 사람이었을까? 네가 나고, 내가 너였을까? '헤드윅'의 그 장면을 유독 좋아했던 이유는 노래를 부르는 존 카메론 미첼의 더할 나위없이 공허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그러면서도 설렘이 섞인 복잡한 눈빛 때문이었다. 내 눈앞에 있는 너는 내가 찾던 사랑일까? 아니면 나는 또 이 지루한 여정을 계속해야 할까? 나는 너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널 사랑할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그 눈빛에 매료되어 나는 그 영화를 계속 반복해서 보았다. 그건 거울을 볼 때마다 언뜻 언뜻 비치던 설명할 길 없는 내 마음 속의 결핍을 해석해 주는 모범 답안이었으며, 이 세상에서 외로운 건 나만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뚜렷한 증거이자 내가 간절하게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가장 잘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의사가 아무 문제 없다고 해도 '제가 정말 괜찮나요? 같은 질문을 몇 번은 더 하는 사람.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포장까지 뜯어 한참 사용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타인의 후기를 찾아 읽는 사람. 단톡방에서 내가 보낸 메시지에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으면 괜히 스크롤을 위로 올려 지난 대화를 꼼꼼히 복습하며, 스쳐 지나가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합니다'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사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온전히 믿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그 이후에도 거듭된 질문들, 매일을 '나 사랑해? 진짜 사랑해? 얼만큼?' 하고 물어보며 하루하루 네 감정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내는 사람.


어느 때는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걷잡을 수 없이 그가 미워진다. 동시에 이거다 싶게 의견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너의 속이 아득하게 멀고 어둑하게 깊어 보인다. 대부분은 내 생각에 공감해 주지 않을 때, 내 의견을 따르지 않을 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다를까 싶은 순간에 나는 그가 미워진다. 분명 내 반쪽인 줄 알았는데. 너는 내게서 갈라져 나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와 나는 같은 생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데.




그럴 때 나는 백석의 시를 생각한다. 연이어 그의 연인인 자야를 떠올린다. 이제는 절이 된, 고즈넉한 길상사의 정원에 앉은 어느 곰방대 문 늙은 여인을 상상한다.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읊었던 젊고 아름다운 문학 청년의 옆모습을 생각한다.


평생을 일궈 쌓은 엄청난 재산을 기부하며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라고 말하는 이의 사랑을 짐작한다. 짧은 청춘의 사랑 끝에 긴 세월을 따로 견디며 백석은 북쪽에서, 자야는 남쪽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나 눈 내리는 겨울날에도 그들의 등 뒤쪽에서는 언제나 멀리 있는 연인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을 것이기에, 춥지 않았을 거라고 되뇌인다. 혼자 깊어가는 밤에 등줄기를 손으로 훑으며 이건 그대가 갈라져 나간 흔적이구나 - 읊었을 긴긴 세월의 무게를 가늠한다. 그런 사랑은 제우스가 질투할 만 하다.


어떤 이의 사랑은 평생을 함께 해도 마음을 할퀴며 아픈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어떤 이의 사랑은 젊은 날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어도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회사에서 돌아와 지쳐 잠든 남편의 마른 등줄기를 가만히 짚으며 나는 이건 너와 내가 한 몸이었던 흔적일까, 골똘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시 한 줄에 천억의 값어치를 매긴 사랑은 온 세상에서 오직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었던 유일함을 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same as the one down in mine - 네가 영혼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아픔은 나의 것과 똑같다'는 노래 가사는 사랑한 적 있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다. 같은 아픔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먼 과거에 우리가 한 몸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무거운 오늘 하루를 견디고 돌아온 이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짚어 본다. 온통 시달리고 돌아와 세상 모르게 잠든 얼굴이 안쓰럽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순간, 그 때가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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