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손톱이 자랄 때

순간을 놓치면 삶은 제멋대로 흐른다

by Bella


무의식적으로 손 끝을 만지다가 오른쪽 엄지 손톱이 어그러진 채로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깎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처음부터 모양을 잘못 잡은 손톱이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일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대충 넘긴다. 며칠 지나고 난 후에 잘못된 것을 발견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거슬리는 부분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되돌릴 수 없이 멀어지게 된다.


새로 산 차 조수석에 엄마를 태우고 처음 운전을 한 날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울 때 엄마가 운전 습관이 잘못 들었구나, 말했다. 정지선을 반쯤 밟으며 차를 세웠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으나 엄마 눈에는 심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엄마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엄지 손톱 생각을 했다. 사소한 운전 습관이지만 그게 반복되면 언젠가는 큰 사고가 될 수 있다. 손톱도 처음 깎을 때 신경 써서 동그랗게 다듬으면 시간이 지나 길어도 모양이 흉하지 않다.




나는 예전에 혼자 밤길을 잘 걸었다. 임용 준비를 하며 집 근처 독서실을 다녔을 때 귀가시간은 늘 새벽 두시였다. 그보다 더 어린 대학생 때는 자정 넘어 술에 취한 채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직장이 생긴 후에도 회식하는 날이면 늦은 밤 대리를 불러 길가에 차를 대 놓고 집까지 비틀비틀 걸어 들어왔다. 가끔은 달과 나 뿐인 산책을 하기도 했다. 지금 나는 밤 아홉 시 이후에는 혼자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지하주차장에도 내려가지 않는다. 동행이 없으면 밤에 움직이지 않는다. 겁이 많아진 탓이다.


이렇게 겁이 많아진 것은 살면서 어그러진 손톱 같은 일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시작된 작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큰 시련이 되는 일, 처음에는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한 방울 물 같았으나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차올라 부서진 댐처럼 넘치는 일,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불러온 엄청난 파장,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질 나쁜 인생의 장난들을 겪으며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그래서 나는 어그러진 내 오른손 엄지 손톱이 신경쓰인다. 내 의지로 다듬을 수 있는 것이라도 애초에 단정하게 시작해야지 싶다. 아마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징크스나 혼자만 고집하는 이상한 습관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고작 손톱 하나 잘 다듬는 것으로 삶의 고난이나 시련을 피할 수는 없다. 신의 짓궂은 장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흔하고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내 나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손톱을 자주 들여다보듯 한번 더 겉을 단정히 하는 것, 그러면서 내 안에 항상 타오르는 슬픔의 불꽃이 커지지 않도록 심지를 짧게 자르는 것을 반복한다. 마음밭에 심은 좋은 감정이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사소한 것이 인생을 망치듯, 사소한 것이 나를 구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의 사소함은 사소함이 아니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유튜버는 영상 말미에 늘 '오늘도 정성스런 하루 보내세요' 라는 인사를 덧붙인다.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의 진실된 응원이다. 그렇게 공들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삶은 견고하고 단단해 불행이 스밀 만한 성긴 틈이 없을 것 같다. 얼기설기 엮은 바구니에는 물이 잘 담기지 않을 것이므로, 그 마음을 배우려 한다. 가끔 멈춰서서 손톱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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