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29살에서 30살이 되었을 때는 몰랐다. 앞자리가 바뀐다는 사실로 기분이 우울하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30대 중반엔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인정해야 했다. 몸이 늙었다. 원래 소주는 두 병 반까지 마셨고, 소맥은 일곱 잔까지 멀쩡했다. 이제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오후까지 분수처럼 토를 해가며 숙취에 시달린다. 컨디션이나 여명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무엇보다 별로 술을 마시고 싶지가 않다. 다음날의 괴로움을 너무나 잘 안다.
먹는 양에 비해 배와 옆구리에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고, 무릎은 종종 화끈한 열감에 시달렸다. 단 음식을 먹고 나면 몸 곳곳이 가렵기도 하다. 머리숱이 줄고, 혀 끝이 갈라지고 돌기가 올라왔다. 피부는 급속도로 건조해져 스킨, 로션만으로는 부족해 크림에 앰플까지 발라야 한다. 이마와 목에 돌이킬 수 없는 주름이 생겼다.
올해 나는 35살, 되돌이켜 보면 그 동안 내 삶의 방식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다.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보다 잠드는 매일, 내킬 때마다 즐겨 먹는 치킨과 피자, 카페에 갈 때마다 단 커피를 마시는 습관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항상 카라멜 마키아토 위에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바닐라 라떼에 정착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크림은 빼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드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된다. 20대의 삶은 다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강의를 듣고, 단돈 1500원짜리 학식에 가서 나란히 식판에 밥을 받아 먹었고, 천 원짜리 커피를 마셨다. 이젠 그렇지 않다. 우리의 하루는 너무나 달라졌다. 내가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시간에 누군가는 둘째를 들쳐업은 채 첫째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내가 이번 달 월세를 낼 때, 누군가는 새로 산 집에 등기를 치거나 모기지론 이자를 갚는다. 나는 가끔 안도하고 꽤 자주 조바심이 난다. 몸은 착실히 나이들고, 서른 중반의 나는 어릴 적에 내가 꿈꿔왔던 나보다 초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게 어른의 삶이야?' 라고 과거의 내가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일 것 같다.
또래보다 뒤처진 것 같을 때,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자각할 때. 그럴 때 나는 가만히 '기본만 지키며 살자' 고 생각한다. 그저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지키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살자고.
하루 세 끼를 잘 챙겨먹고, 양치를 하고, 주기적으로 땀 흘려 운동을 하고, 단 음료를 줄이고, 가끔은 정성을 들여 건강한 식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 쓸데없는 것은 사지 않고, 월급을 받으면 저축을 먼저 하며,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는 것. 복잡할 것 없이 간단하게, 누구나 아는 당연한 원칙 - 그 정도만 지키며 살자고 되뇌인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미약한 바람 앞에도 미친듯이 흔들리는 등불 같은 나의 삶 앞에 복잡한 여러 가지 기준을 세우고 싶지 않을 뿐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이제 카페에 가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일주일에 두 번은 헬스장에 가서 땀을 흘린다. 통 안까지 박박 긁어 퍼낸 고추장으로 진미채를 볶거나 제철인 고구마 순 한 무더기를 놓아두고 껍질을 벗겨 데친 다음 된장에 무쳐 밑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달걀 한두 개 넣어 끓인 계란국으로 한 끼를 넘기기도 한다. 친구가 집을 샀다는 소식에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뒤이어 나를 질책하지도 않는다. 타인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삼지 않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기준을 지키는 것이다. 대신 이번 달에는 돈을 아껴 10만원짜리 개인 연금에 가입했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과 그들과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책 <월든>의 한 구절이다. 한때는 이미 여름에 들어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계절은 이미 한껏 무르익어 찬란한 햇살로 반짝이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무성한 나뭇잎이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는 그들과 나의 계절이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럴 때일수록 그저 묵묵히 땅을 다지고, 잎을 솎고, 돌을 고른다. 그리고 나서 굽은 허리를 펴면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있다. 나에게도 여름이 찾아온 것이다.
기본을 지킨다는 건 생각보다 결단력과 실천을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표면에 물방울이 얇게 맺힌 아메리카노 잔을 받아들 때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며 젖은 살갗에 부드러운 바람의 서늘함을 느낄 때 소박한 의지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선물한다. 잘 정리한 서랍 속처럼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