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나의 사랑이 칼날이 되었음을

통제라는 이름의 가짜 사랑

by 그대로 박희룡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이 말은 오랫동안 내 삶을 버티게 해준 가장 그럴듯한 핑계였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던졌던 이 말이 사실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가시였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뜻대로 상대가 움직여주지 않을 때, 감당하기 힘든 조급함과 불안이 일렁였다. 나는 그 불편함을 마주하는 대신, 슬픈 표정이나 차가운 침묵이라는 도구를 꺼내 들었다. 상대가 죄책감에 짓눌려 결국 내 뜻을 따를 때까지, 나는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정서적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상담실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했던 수많은 배려와 조언들이 사실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 했던 이기적인 욕심이었음을 말이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며 상대의 사랑을 조건 삼아 거래를 제안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상대는 숨이 막혀가는 줄도 모른 채, 나는 오직 내 안의 일렁이는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만 급급했다. 내가 내민 것은 자유로운 사랑이 아니라, 나를 떠나지 못하게 옭아매는 사슬이었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정직하게 바라본다. 그동안 나는 늘 상처받은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살았다. 상대가 내 지극한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고, 내가 정성을 다한 만큼 돌려받지 못해 억울하다고만 믿어왔다. 하지만 그 피해자라는 가면을 벗겨내자, 그 안에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힘껏 억누르려 했던 비겁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나의 불안함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협박은 대개 아주 작고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큰 소리로 위협하는 대신 “네가 그렇게 하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아”라며 나의 약한 모습을 날카로운 무기로 삼았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마치 상대의 잘못인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었고, 상대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꺾어야만 했다. 나는 상대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내 욕망대로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상대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며, 오직 내 고집을 부리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견디지 못했던 것은 ‘거절’ 그 자체였다. 누군가 나의 제안이나 마음을 거절하면 그것이 마치 나라는 존재 전체가 무시당하고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견딜 수 없는 마음을 피하기 위해 나는 상대를 몰아붙였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로 상대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때 나는 잠시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함도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 공허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나 자신을 속여가며 상대를 다그쳤다.


상대는 점점 내 앞에서 말수가 줄어들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을 나누기보다 내 눈치를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내 뜻을 잘 따르는 것을 보며 우리 관계가 편안하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상대가 억지로 참아준 것이었고,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고립시키는 일이었다. 나의 집착이 깊어질수록 상대의 마음은 지쳐갔다. 나는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상대가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면서도, 그 고통의 신호를 애써 외면했다.


“너 없으면 나는 죽어.” 이 극단적인 말조차 나는 절절한 사랑의 고백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어깨에 내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잔인한 일이었다. 나의 존재 가치와 행복을 오직 상대의 행동에만 매달리게 함으로써, 나는 상대를 내 결핍의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고유한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성장하는 것을 기뻐해 주는 일이어야 했으나, 나는 그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내 곁에만 두려 했다.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그의 세계를 조금씩 갉아먹고 좁게 만들었다.


어느 날 문득,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슬픔이 고여 있었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의심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이렇게 텅 빈 껍데기뿐인 관계였을까. 내 마음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상대를 굴복시킬수록, 내가 그토록 바랐던 진짜 사랑은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상대를 억누를수록 나 또한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왜 그렇게 상대를 마음대로 휘두르려 해야 안심이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내 안에는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대를 꽉 붙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를 버리고 사라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 그 공포가 나를 괴물로 만든 것이었다. 나의 협박은 사실 “나를 제발 떠나지 마, 무서워”라고 울부짖는 나의 비명이었지만, 그 소리는 상대를 아프게 찌르는 가시가 되어 나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혀서라도 내 곁에 묶어두는 비극적인 길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무거운 진실을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이 사실은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심이었다는 것을, 나의 억울한 눈물이 상대에게는 돌덩이 같은 부담이었다는 것을 아프게 인정한다. 내 잘못을 깨닫는 과정은 뼈저린 후회와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아픔이야말로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신호라고 믿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상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었고, 내 안의 거친 모습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는 상대가 내 기준에 맞춰 변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할 사람이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다. 나의 불안함을 상대에게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보듬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의 행동에 내 행복을 맡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를 스스로 가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안다.


관계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제야 가슴에 새긴다. 누군가의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려 했던 거만한 마음을 버린다.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 상대의 거절 앞에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다.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이 아픈 연습이 언젠가는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리라 믿으며, 오늘도 멈춰 서서 나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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