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불안의 파도타기

그림자와 나란히 걷는 법

by 그대로 박희룡

불안은 늘 소리 없이 찾아온다. 화가 가슴속에서 뜨겁게 일어나는 기분이라면, 불안은 등 뒤로 스며드는 차가운 기운과 같다. 어떤 날 문득, 익숙하던 거실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만 느껴지거나 가슴 한복판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불길한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평온했던 일상에 다시 불안이 찾아왔음을 알게 된다. 무감각했던 시간 뒤에는 다시금 마음을 흔들어 놓는 불청객이 나타난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불안을 반드시 고쳐야 할 틀린 답처럼 여겨왔다. 마음이 불안한 건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고, 실력이 부족해서 미래에 믿지 못하는 탓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매섭게 몰아세웠다.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더 완벽한 계획을 세워 걱정을 없애려 애썼고, 불안을 잊으려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불안을 완전히 뿌리 뽑는 것만이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나 스스로를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노력할수록, 마음속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도망칠수록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나를 가장 먼저 숨 막히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대비해야 해”, “실수하면 모든 게 끝이야”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돕기 위한 조언이 아니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가혹한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이 불안으로부터 더 이상 달아나지 않기로 했다. 도망치려 할수록 숨은 더 가빠지고, 결국 불안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불안이 찾아온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깊게 숨을 고르며 ‘지금 내 안에 불안이 있구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나를 흔들고 있구나’라고 이야기해 본다. 이런 내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머물기’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저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찌르는 듯했던 불안의 기운이 서서히 약해졌다. 우리가 불안에 힘들어하는 이유는 불안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불안해하는 자신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밀어내려는 마음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거부감을 멈추고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슴을 누르던 무거운 느낌은 어느새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고통의 진짜 모습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과 끝없이 싸우려 했던 내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불안은 마치 그림자와 같았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짙고 선명해지듯, 우리가 삶에 의욕을 품고 무언가를 잘 해내려 노력할수록 불안이라는 그림자도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림자를 없애려고 내 안의 의욕까지 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불안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당연히 생기는 그림자임을 인정하고, 억지로 떼어내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곁에 둔 채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불안과 함께 걸을 때 비로소 나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불안이 찾아와도 예전처럼 비명을 지르며 쫓아내지 않는다. 대신 나직하게 말을 건네본다. “네가 또 나를 지키려고 찾아왔구나. 내가 다칠까 봐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아. 조금은 진정해도 괜찮아.” 이렇게 불안을 억누르는 대신 그 떨리는 마음을 받아주면,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롭던 경고 소리도 서서히 작아진다.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기적이 아니다. 차갑고 무거웠던 그 느낌이 손에 익은 물건처럼 편안해지며, 내 곁에 머무는 법을 알아가는 관정일 뿐이다.


지금까지 불안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모습들이 나를 무너뜨릴 대상이 아닌 그저 흐르는 날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고집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일 비가 올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우리가 늘 우산을 준비하며 살듯, 불안도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생존 도구’ 일 뿐임을 알게 된 것이다.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안전한 길로 안내하려는 마음의 신호였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란 불안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진정한 평온은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거센 불안 속에서도 나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인 것이다. 발밑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들어 밝은 빛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불안이라는 감정 옆에 가만히 머물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온의 진짜 모습이었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도를 막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파도 위에 올라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파도가 높을 때는 몸을 낮춰 중심을 잡고, 파도가 잔잔해지면 다시 힘차게 팔을 저어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불안과 싸우기를 멈추는 순간, 파도는 나를 삼키는 위협이 아니라 나를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불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는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


여전히 어떤 밤에는 불안 때문에 잠을 뒤척이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억지로 잠을 청하는 대신,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불안과 마주 앉아본다. 예전처럼 서둘러 쫓아내는 대신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니?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도 좋아”라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것이다. 불안이 숨겨온 걱정들을 가만히 들어주면, 귀를 괴롭히던 거친 소리들은 어느새 평온한 위로가 되어 흐른다. 불안을 내쫓지 않고 그저 곁에 머물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마음은 안심한 듯 조용히 잠이 든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좀 더 커짐으로써 품어지는 것이다. 마음의 그릇이 넓어져 불안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것은 삶을 움직이는 정직한 힘이 되어 나에게 찾아온다. 혹시 지금 불안으로 잠 못 이루고 있다면 기억하길 바란다. 그 마음은 당신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부디 그 불안을 미워하지 말고 가만히 마주 앉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불안은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돕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불안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귀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 차갑고 답답한 기운 속을 지나는 동안, 당신은 미처 몰랐던 자신의 강인함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개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묵묵히 걷는 법을 배우는 연습이야말로 그 머무름 끝에서 당신은 비로소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평화를 만날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불안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분명한 증거이자 더 나은 삶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떼어내려 애쓰는 대신 보조를 맞춰 함께 걷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흔들리고 멈춰 서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온전한 내가 되어간다. 불안은 이제 나를 가두던 답답한 감옥이 아니라, 길 잃은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정직한 신호가 되어 내 곁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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