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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Jun 02. 2022

뜰집 이야기

제주도 민가 사진을 정리하며...

  어제는 선거 휴일이어서 모처럼 조용한 사무실에서 제주도 민가 슬라이드 필름을 마저 정리하였다. 온종일 필름의 장면을 확인하느라 불빛에 비추고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장면들의 연계성을 찾아야 하는데 해당 필름이 많지 않아서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답사를 다니고 슬라이드 필름을 찍을 당시인 90년대에는 우리에겐 필름값이나 현상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열심히 앵글을 보고 각도를 잡아가며 신중하게 눌러야 했고, 꼭 필요한 장면인지 고민하며 비장하게 눌렀다. 그래서 비슷한 장면을 두 번 찍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신중함이 담겨서일까 각 사진의 장면은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진다. 아니 사진에 담긴 민가집에는 굽이굽이 켜켜이 눌러 담긴 오랜 삶의 흔적이 짜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면(평면)으로 보는 민가는 참 단순하고 맹숭하다. 방 두어 칸에 부엌(정지), 귀퉁이 화장실(통시)이 전부이다. 또 마당에 창고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엉성한 모양새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구조에는 의, 식, 주 뿐만이 아니라 노동, 모임, 행사, 저장, 접빈... 등의 모든 활동들이 들어가 있다. 건축계획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가에서는 아주 조그만 돌 하나도 중요 역할이 있어서 그곳에 놓여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관광하면서 보는 기와집들은 대부분의 백성들에겐 구경도 못하던 사대부의 집이다.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민가들이 일반 백성들의 대대손손 가꾸고 보완하며 살아온 그야말로 우리네 집인 것이다. 농사철이 지나가는 기간에 이웃끼리 품앗이를 해가며 손수 짓고 각 지역적 특성에 대응하여 공간을 활용하는 지혜를 쌓아왔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에 비해 각 지역의 특성이 잘 반영된 민가형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그 지역의 민가형에는 그 지역민의 삶이 오롯이 잘 녹아있어서 참 신기하다. 

  슬라이드 필름에는 인물 사진이 거의 없다. 집을 찍는 것도 필름이 아까워서 조심하는 처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인물이 등장할 때가 있다. 그 집주인이다. 건축에 대한 공부를 하신 것도 아닌데.. 집에 대한 공간감을 느끼며 거주하시는 분도 계시고 인터뷰에 잘 응해주시고 뭐라도 내주시는 등... 남달리 정감 가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 너무 기억하고 싶어서 카메라 셔터를 주저 없이 누르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아련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저장된다. 

  어제, 필름 검색이 끝나갈 즈음 스캐너에 갑자기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슬라이드 필름에 인물이 뜨면 망친 필름인가 긴장하며 자세히 보는데, 반갑게도(?) 남제주에 거주하셨던 조@@씨였다. 지도교수님에게 뭔가를 환하게 웃으며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아. 행복한 모습이다. 두 분의 배경인 제주 민가집도 중요하지만... 민가를 매개로 만난 두 어른의 이야기를 나누는 표정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까. 나는 오랜 세월 자기 자리에서 진득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선문답 같은 대화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한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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