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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Nov 29. 2021

뜰집 이야기

제4화 나의 뜰집 만들기

  오랜 기간 '어떠해야 함'으로 살아온 내게는 묵은 어깨 짐을 비워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나를 찾아갈 공간을 몇 달간 찾아다니다가 비교적 조용한 동네에서 우연히 빈 공간이 많은 낡은 건축을 만났다. 외부로는 단호하고 내부는 하늘로 열려있는 모습이 뜰집과 꽤 닮아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여기서 '나의 뜰집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하고 건축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조용한 이 동네는 오랫동안 거주하신 이웃들이 많이 계셨고 비교적 연세도 높은 편이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에 들어오는 새로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서 우리 공사는 순식간에 이 동네 화젯거리가 되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한 달 남짓 동안 이웃들은 매일매일 출근하다시피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조언하고 격려하고 한 번씩 민원도 제기하며 우리의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 가셨다. 누가 이사 올 것인지.. 무엇을 할 건지.. 몇 사람이 지낼 것인지.. 등등. 이웃과 교류하는 것을 기대하고 동네 건축가가 되기로 했던 것이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인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초면인데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셔서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더불어 살아가기로 하였으니 빨리 적응하자며 내적 다짐을 하며 답했다. 덕분에 이사도 하기 전에 동네에서 인사를 못한 분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이사 떡을 돌리는 날엔 벌써 구면이 되어 있었다.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이사 떡을 돌린 일도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의 이웃 동네도 이러했다. 아니 훨씬 더 했다. 앞집이나 옆집의 집안사는 물론 큰길 모퉁이 집의 동생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골목에 놓인 주인 모를 평상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의 전파사 역할을 하셨고 우리들에겐 비밀이 없었다. 학교에서 넘어져서 무릎이라도 까진 날에는 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마는 알고 계셨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같이 입주하여 옆집에서 15년을 같이 살다가 작년에 이사 간 2호 언니와는 차 한잔을 같이 못했다. 2호 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지만 밥 한번 먹자고 15년을 말하다가 이사 갔다. 나는 그렇게 바빴을까...? 나는 왜 그 집 현관문 한 번을 못 두드려봤을까? 사회생활에선 나름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애썼다. 그런데, 분명히 2호 언니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정도의 추진력도 없었던 스스로가 참 부끄럽다.

  이처럼 잘 살아온 줄 알았던 나의 삶은 여러 곳에서 큰 구멍을 냈고 이제야 온전한 스스로가 되어서 나의 뜰집을 만들어서 시간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빈 벽을 채워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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