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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건축가 Dec 08. 2021

뜰집 이야기

제6화 바람 부는 날엔 바다로 간다

   어느 기간,  여러 해 동안 나는 비다를 볼 수 없었다. 

'바다'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은 쉽사리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아픔을 겪을 것이다. 불가항력적 자연의 힘을 어마어마한 폭포 속으로 떨어지듯 맞은 때가 있었다. 바다가 보일까 봐 하늘도 못 쳐다보고 땅으로만 시선을 꽂으며 걸었고 그 흔한 생선을 봐도 바다가 생각나서 그 권력에 치를 떨었다. 파도의 울렁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수평선의 침묵은 내 가슴 막막함의 절정이었다.

  대학 졸업 직전 12월, 나는 처음 서울에 취업하여 잠시 다닌 회사에서 적응을 못하였다. 점심시간 자리를 비운 동료의 험담을 소나기처럼 쏟아내고는 그 앞에서는 온갖 상냥함을 구사하는 분위기가 서울의 겨울을 너무 섬찟하게 했다. 분위기 동조 못하는 내게 화살이 돌아온 것인지 그들과 일이 진행이 안되어서 이내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내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희망에 설레었다. 웬일인지 바다를 보는 내가 당당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곳을 여행 다니면서 나의 기억은 물결에 씻겨지고 바람에 희미해져 이젠 바다는 치유의 장소가 되어간다. 나는 바람이 불면 바다로 달려간다. 바람이 바다를 나에게 데려다 놓을 것처럼. 이제는 우리 모두는 바다로 가고 있고 바다로 갈 것을 알게 되었음이리라. 어린 나는 내게 좋은 것만 주는 것이 선하고 내게 아픔을 주면 거부하고 두려워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닌데.

  부산은 바다가 많다. 유명한 해운대, 광안리, 송정, 송도, 다대포 등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자갈치나 해안부두 항만시설 등 다양한 바다가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송정 바다를 좋아한다. 송정은 착한 바다다. 규모가 작고 물이 얕으며 바다 색이 옅고 파도 소리가 자잘하여 작은 교향악 같다. 한마디로 내겐 따뜻한 바다다. 포옥 안아줄 것 같은 외할머니 이불 같은 바다다. 혼자 가도 외롭지 않게 한다. 결코 못했던 내가 하고픈 얘기들을 송정 바다는 다 해준다.

  나는 바람 부는 날엔 그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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