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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 한 드라마

제16회 DMZ 영화제

by 아라베스크


올해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본 영화 두 편은 마천루 아래에서와 경쟁자란 작품이었다. 두 작품을 연이어 보게 되었는데 우연이었는지 아님 프로그래머의 의도였는지, 두 작품은 동일한 정서로 보는 이에게 두려운 연상을 살아가는 의지로 뒤바꾸는 변화를 주었다. 그 동일한 정서란 바로 자기 삶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마천루 아래에서는 - 영제는 obedience - 2017년부터 촬영된 작품으로 감독 본인이 사는 홍콩 길거리의 모습을 담고자 한 게 최초 제작 의도였다고 한다. 촬영이 거듭될수록 자주 시선이 갔던 모습은 길거리를 오고 가며 쓰레기와 고철 따위를 옮기고 파는 하층민 노동이었다고. 나이 든 노인이 - 할머니 - 불편한 몸으로 자신이 사는 곳 부근에서 고철이나 고물을 주워 고물상에게 파는 모습이 감독에겐 현재 홍콩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영상에서 노인은 주울 게 있어도 자신은 느려 도통 남들이 줍기 전에 주울 수가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종일 주워 팔아도 5홍콩달러를 버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며 자신은 살코기만 먹기 때문에 괜찮다고, 먹고 안 죽으면 된다고, 모든 건 다 운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물이 주인인 곳에서 땅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란 아프리카 속담 뒤에 관음개고의 민속설화와 함께 해당 풍습을 지내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관음개고 풍습이란 관세음보살이 창고를 열어 배고픈 승려들을 배불리 먹었다는 설화에 기반해 현재 사람들은 관음개고의 날에 - 음력 1월 25일에서 26일까지 - 관음보살이 금고를 열어 중생들에게 돈을 빌려줄 거라 믿고 관음당에서 올 한 해 재물 운을 바라며 관음보살을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풍습적 맥락에 현재 홍콩 도시 계획 문제를 더해 하층민들의 삶이 더 이상 개선되기 힘든 점을 파악하고자 영화는 몇 안 남은 고물상 중 한 곳이 문을 닫는 것에 주목한다. 서두에 말했던 노인이 물건을 주워다 파는 곳이다. 해당 고물상이 위치한 건물은 도시 한가운데 목이 좋은 곳이지만 노후되어 재건축 대상으로 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물상은 계속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재건축되어야 할 해당 건축물이 재건축 작업에 착수하지 못한 건 이 고물상 때문이라는 내용을 방송하자 이내 고물상 사장은 사업을 접기로 한다 - 사장이 고물상을 폐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이 고물상이 문을 닫는 것은 주변 건축물들의 문제와 비슷하다. 아마도 부동산을 매입한 것은 홍콩 도시 재개발 위원회이거나 고급 상점가로 변모시킬 계획을 갖고 있는 기업일 것이다 - 이것은 내 추측이다. 홍콩의 도시 재개발 위원회 Urban Renewal Authority 줄여 URA는 홍콩 부동산 가격을 높인 주범으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공기관은 도시 정비 계획으로 주거 환경 개선, 도시 재개발, 재건축을 담당하고 있어 국가로부터 막대한 권한을 이임받았기에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에도 실상 재정 문제를 명분 삼아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리고 있다. 예를 들어 상기에 언급한 고물상이 있는 건물처럼 도시 한가운데 목이 좋지만 노후된 건물을 미리 사놓고 거기를 고급 주택가로 재개발하는 것이다 - 이것이 세계 부동산 거품 지수에서 GREBI 홍콩이 세계 최초로 2.0을 넘긴 주된 이유이다. 더 나은 생활환경을 위해 낙후된 건물을 재건축하여 도시 재생을 추구해야 하는 기관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시민들을 더 나은 환경,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도와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폐건물에 사는 환경 미화원이 재건축이 시작될 때까지만이라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관청에 전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 건물에는 본인밖에 살고 있지 않는데, 가능하다면 재건축이 시작될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매달 내는 여기 월세론 다른 곳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미화원과 같은 하층민들은 거리로 내쫓기고 그들이 살고 있던 건물은 그들이 살 수 없는 주택가로 변모되기에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홍콩 지역이 점차 늘어만 간다. 고물상이 없어지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일인 것이다. 감독은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대입한다. 홍콩 정부의 복지 예산은 어떻게 쓰이냐는 것이다. 예를 드는 것은 전철의 특정 구간이 아직까지 완공되지 못한 점을 꼽는다. 해당 구간은 사업비가 300억 달러로 진작 완공되었어야 하지만 현재 투입된 예산은 1000억 달러이고 완공은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전철 구간 하나가 700억 달러에서 더욱더 쓰일 동안 경제 사정으로 폐업을 하게 되는 시민들을 지원하는 예산은 수억 달러 정도로 실제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방송 패널이 성토하는 장면도 나온다. 감독은 자신이 길거리 삶에 주목하게 된 것이 자신과 밀접한 현실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 본인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곳이 집 안을 벽으로 쪼개 분할 임대한 쪽방이었다고. 문제는 이런 어려운 현실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 인과가 무엇인지 알지를 못하거나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구조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 수도 없다. 여기서 관객인 나는 당연히 질문을 하게 된다. 만약 전철 구간을 계획하지 않고 현재까지 쓰인 1000억 달러를 공공 주택과 주거 환경 개선, 일자리 복지에 쓰였다면 앞서 언급한 노인의 삶은 나아졌을까이다. 고물상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환경 미화원은 주거 문제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을까? 경제 사정으로 폐업하는 사업장들이 늘어나지 않고 현재까지 사업을 유지했을까? 홍콩 시민들은 오늘날에도 관음개고의 설화를 믿으며 관음당을 참배한다. 민간 신앙과 봉건 제도가 건재했던 과거의 사람들처럼. 물이 주인인 곳에서 땅은 복종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영화 속에서 날이 밝아오는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두려움과 피로, 불안을 느꼈다.

영화 경쟁자는 20세기 후반 일본의 전설이 된 티브이 프로그램 전파 소년에서 현상 생활 - 현상금, 당첨된 경품만으로 살아가는 방식 - 나스비 편의 주인공 코미디언 나스비, 하마츠 토모야키의 삶을 조명한다. 하마츠 토모야키, 나스비는 당시 전파 소년을 담당했던 프로듀서 츠치야 토시오의 기획에 따라 오디션에서 선발된 직후부터 바로 1년 3개월 동안 한 방에서 옷이 벗긴 채 알몸으로 감금되어 오로지 잡지, 라디오 경품 응모로만 생활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영상으로 기록되어 일본 전역에 방송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프로듀서가 방송은 거의 안 될 거라고 말해 그걸 진실로 믿고 카메라 앞에서 모든 걸 감추지 못하고 보여주는데 그의 얼굴 모양이자 예명인 나스비, 가지 모양 아이콘이 그의 성기를 가린 채로 전부 방영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시청자들의 엄청난 인기를 얻어 마지막 생방송에서 그가 스튜디오에 등장할 때쯤엔 일본의 모두가 나스비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방송은 1차와 2차 시기로 나뉘는데, 1차 시기는 일본에서 보낸 11개월로 당첨된 상품들이 총 100만 엔에 도달해야 끝나는 것이었고, 2차 시기는 1차에 성공한 나스비를 눈을 가린 채 한국으로 데려와 - 비즈니스 석으로 - 비행기 일등석 금액만큼 경품에 당첨되어야 끝나는 것이었다. 경악스럽다 할 수 있는 부분은 이 모든 과정에 조금도 꾸밈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스비는 수돗물과 가스레인지, 죽지 않을 만큼 공급되는 건빵 말고는 모든 걸 경품 당첨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고 급기야 한국에선 사전으로 한국어를 독학해 한국 잡지와 라디오 방송에 응모해 81900엔 상당의 경품에 당첨되어야 했다. 그는 죽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 얼른 방송을 끝내야겠단 의지로 매일 수백 통이 넘는 우편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 그가 썼던 일기는 시기별로 단행본이 되어 일본 내 8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저작권이 없어 인세는 조금도 받지 못했다고. 그는 모든 걸 운에 맡긴 삶을 살아야만 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인과를 조금도 알지 못한 채 오직 운으로만 연명해야만 했다. 그렇게 방송이 끝난 뒤 몸과 마음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알게 되었고, 모든 걸 극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알게 된 유명인이 되었지만 이 유명세는 자기 능력이 아닌 기획으로 불거진 센세이션일 뿐, 1년 3개월 동안의 방송 생활로 얻은 능력이라고는 경품 응모밖에 없어 전파 소년이 끝난 뒤 코미디언이나 방송인의 삶으론 능력이 부족해 처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를 결정적으로 뒤바꾼 사건은 바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태생이었던 나스비, 하마츠 토모야키가 고향으로 돌아가 시민들과 함께 재건 작업 및 지원을 한 게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하마츠 토모야키는 시민들에게 힘을 주고자 에베레스트 등산을 기획하게 되었고 네팔에 가서도 지진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돕다가 결국엔 등정을 하고야 만다.


두 영화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의 인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삶에 어떻게 굴종하고 좌절하고 극복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드라마였다. 먼 옛날 사람들은 자기 행복 추구와 삶의 개선을 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에 한계가 있었기에 좀 더 나은 삶을 신과 하늘에게 빌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많은 정보와 체계적 사회 구조로 자기 행복 추구와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층위에 올라 서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에 혼란을 느끼며 좌절한다. 모든 걸 운에 맡긴 채,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버려진 음식을 먹는 것처럼 살아가고 자신이 어떤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다만 하나의 성공적 사례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모습이다. 살아가는 모습에 다양한 차가 있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것은 진실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비록 사람이 사람으로 죽을 수 있더라도, 분명한 건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래서 작가 이상은 세상이 분명히 모순되어 보인다 했던가, 분명히 보이는 만큼 그것은 진리라 할 수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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