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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섬

삶과 노동

by 아라베스크


섬이 있다. 물이 없는 섬. 벌거벗은 섬. 그 섬에 가족이 산다. 부부와 아들 둘. 매일 동이 틀 무렵 8살 6살 형제가 아침밥을 차릴 동안 부부는 물을 길러 거룻배를 타고 더 큰 섬으로 노를 저어 간다. 가는 길에는 남편이 노를 젓고, 오는 길에는 아내가 노를 젓는다. 돌아와 물지게를 지고 힘겹게 산 길을 올라 집으로 가면 아이들이 차린 밥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엔 남편은 논과 밭에 물을 주러 나가고 아내는 첫째를 학교로 보내기 위해 물통을 챙겨 다시 배를 저어 큰 섬으로 간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물을 길어온 아내는 섬으로 돌아와 물지게를 지고 힘겹게 다시 산길을 오른다.


신도 카네토 감독 작품 벌거벗은 섬은 대사가 없는 영화다. 무성 영화는 아니다. 인물들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감독은 본인의 제작 회사가 문을 닫기 전 상업주의에 양보가 없는 순수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당시 영화 제작비의 10분의 1 수준으로 배우와 13명 스탭 모두가 1개월간 세토 내해 작은 섬에 머물며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이 영화는 일본 내에선 정식 개봉을 못했지만 - 소소하게 일부 회관에서 몇 번 상영되었다고 한다 - 1961년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그랑프리에 선정, 국제적 찬사를 받으며 비로소 일본 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화제에서 여러 나라에 영화가 팔리면서 감독은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고. 이후 당시 소련, 현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감독으로 구로사와 아키라 다음엔 신도 카네토 감독이라고 한다.


삶과 노동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아내가 너무 힘들어 물을 한 번 엎자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다. 벌거벗은 섬에서 물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다. 실제로 배우 오토와 노부코가 가득 담은 물통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모습은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가냘픈 다리를 계속해 떨면서 물통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모습. 하지만 남편은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내의 빰을 힘껏 때린다. 필사적인 모습. 가장은 가족이 사는 섬을 양 어깨에 지고 있는 듯했다.

말이 없는 일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건 장남에게 고열이 나면서였다. 이 뒤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일상적이지만 큰 고통을 주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사건을 겪으며 부부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에선 감동을 넘어선 무언가가 전해졌다. 보는 이의 삶을 바꾸는 무엇이. 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 노동을 이미지로 미화하지 않는다. 일상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영화로 나는 인생에 삶을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는 없다고 확신했다. 또한 그 뒤로 나는 이탈리아의 어느 시인이 영감을 받는 순간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어느 해변가에서 한 소년이 피곤한 기색으로 회상을 하던 사촌형의 미소를 보며 영감을 받은 순간. 하루는 이미 늙었기에 우리에겐 태양이 떠올랐다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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