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
샌드맨 10주년 기념작 샌드맨 : 꿈 사냥꾼 편은 고대 일본을 배경으로 승려와 여우, 음양사와 꿈결의 왕 샌드맨 그리고 그의 까마귀가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다. 샌드맨 시리즈는 본편 열 권에 외전인 영원의 밤까지 모두 그래픽 노블이지만 이 작품은 아마노 요시타카의 삽화가 달린 단편 소설이고 샌드맨 중 유일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작은 사찰에 홀로 사는 승려를 두고 여우와 오소리가 내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승려를 내쫓는 쪽이 사찰을 차지하는 것으로. 하지만 승려는 간파한다. 허황된 공포와 아름다운 기만을.
여우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승려에게 잘못을 구하면서 사찰 곁 폭포의 동굴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승려는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알게 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여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순결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인의 모습으로, 그를 기만하기 위해 젖은 채로 누워 있던 여우를 처음으로 가슴에 안았던 그때, 승려 또한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하나의 우화. 하지만 그 거부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걸.
이야기는 음양사로 옮겨간다. 원인 모를 무형의 공포에 매일 같이 시달리고 질린 음양사가 막대한 권력과 광대한 힘으로 공포의 원인을 찾는 것으로. 아무 고통도, 아무 폭력도 없이 작은 산 작은 사찰에 홀로 사는 이름 모를 젊은 승려를 죽인다면 그토록 바라는 평화와 안식을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음양사는 승려를 찾는다. 침착한 집요함, 고통에 지배당한 광기로. 그리고 이 젊은 승려를 평화롭게 죽이기 위해 옻칠된 상자 하나, 검은색 나무 열쇠, 다섯 장의 작은 접시를 준비하고 그중 세 장의 접시엔 색색별 가루와 한 장의 접시엔 한 방울의 액체, 마지막 한 장은 비워둔 채 더 이상 기쁨을 삼킬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다린다. 이제 승려가 꿈을 꾸게 된다면. 꿈만 꾸게 된다면 모든 것은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이었고 완전히 행복한 평화가 다시 자신을 안아줄 것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여우의 사랑. 여우의 헌신. 승려의 자각. 음양사의 인과. 승려와 여우의 사랑. 그리고 모든 꿈결의 왕 샌드맨이 등장하여 모든 것을 무로 돌려놓아야 하기에. 승려는 죽을 운명이었기에 죽었고, 승려를 도우려는 여우는 실패했으며, 음양사는 모든 것을 잃었다. 힘 권세 재물과 지능까지도. 꿈결의 왕의 오랜 친구이자 신하인 까마귀가 왕에게 묻는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여우의 소원을 들어준 게 무슨 소용이었나요?” 아무것도, 인간의 눈을 가진 까마귀에겐 무엇도 나아진 건 없어 보였으니.
“교훈이 있었고, 일어날 사건들이 제대로 일어났지. 내 관심이 쓸모없었던 것 같지 않구나.”
“교훈이라고요?” 까마귀는 목깃을 곤두세우고 까만 머리통을 높이 세우며 다시 물었다. “누가 교훈을 얻었는데요?”
꿈결의 왕의 마지막 대답은 이 이야기가 하나의 우화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단정한다. “그들 모두가. 특히 승려가.”
나는 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완벽함을 논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확하게 옳은 것이 없기 때문에, 명확한 것 또한 무엇이라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을까? 이 이야기의 신비한 힘은 이 질문에 우릴 망설이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인생의 신비로움이 이 질문에 가득한 듯 느껴지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