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빛
딕 홀로랜은 대니에게 샤이닝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 할머니께선 그런 순간을 샤이닝이라 하셨지. 내가 물어보지 않고도 너의 별명을 아는 것. 네가 어떤 것을 그렇게 아는 것 말이야.”
초자연적 능력을 말한다. 영화에선 이 능력의 범위를 예지와 해독, 텔레파시 정도로 규정하고 단지 딕 홀로랜이 명명한 샤이닝이란 단어로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소설에선 신성함 힘으로 묘사되며 단순한 예지가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능력의 비율은 예지 쪽으로 좀 더 비중을 두고 해독 능력은 공간에 아로새겨진 흔적을 토대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유추하거나 추상적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규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 능력들로 대니가 오버룩 호텔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 심지어 텔레파시로 딕 홀로랜이 대니의 별명을 부르는 장면까지도 - 영화의 장르가 된다. 바로 공포.
소설에서 샤이닝의 이미지는 어둠을 물러나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샤이닝은 어두웠던 곳을 밝히는 힘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샤이닝은 인간인 우리에겐 양면성을 지닌다. 비록 영화에서도 딕 홀로랜은 샤이닝이 은혜로운 순간이라 하지만 어두웠던 곳을 밝히는 힘의 성격이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 곳과 보이면 안 되었던 곳까지 보이게 하기에 빛은 자비로우면서도 무자비하다 할 수 있다. 대니가 아버지인 잭 토렌스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엉뚱한 말 “엄마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지?” 이 순간을 만든 건 바로 샤이닝이었다. 딕 홀로랜이 위기를 느끼고 호텔로 돌아가게 한 것도 바로 이 샤이닝이었다. 그래서 딕 홀로랜은 어떻게 되었던가?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희생자가 된다. 잭이 휘두른 도끼를 맞고. 영화에서 샤이닝은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연적 성질로서 그곳이 어둡기에 단지 밝힐 뿐이다.
샤이닝은 보이고 들리는 우리에게 분별력을 잃게 하는 힘을 가진다. 빛이 있으라 했을 때 인간은 분별력을 상실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빛이 우릴 올바른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나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저 별이 과연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게 해줄 것인지 종종 되묻는다. 빛이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되뇌며. 영화가 보여준 샤이닝은 이끌릴수록 점점 어둠에 다가가게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모순이 자아낸 공포. 신앙과 믿음의 근간. 나는 그것이 흥미롭다는 인간적 성격이 태초의 설계가 아닌지 종종 의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