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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을 수 없는 마음

미세리코르디아

by 아라베스크


miséricorde 용서 관용 (종교적 의미) 자비 긍휼 연민 동정 감탄사


비윤리적 성향 조건 관계 욕망으로 도덕의 본성을 드러내고 자비의 주체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그리고 강조가 없다는 점. 그러면서 관객을 영화 안에 붙잡아 두는 것. 그건 영화의 미덕으로, 중요한 건 영화의 특정 요소가 아니라 영화 전체라는 점을 되려 강조한 수준 높은 연출이었음을 나는 이해한다.


사랑이란 것은 제레미가 계속 머물게 하는 동기였다. 전에 일했던 빵집 사장 장피에르가 죽고, 미망인이 된 아내가 자기 집에 머물기를 권했던 것. 마르틴. 친구의 엄마. 뱅상은 제레미가 엄마 곁에 머무는 걸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마르틴은 제레미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직까지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죽기 1년 전에 찍혔다는 사진 속 장피에르를 밤마다 떠올리는 제레미에게.


마르틴이 제레미를 걱정하고 함께하려는 의도를 영화는 명확하게 드러내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같은 사랑 같은 사람을 상실한 상대에게 이끌렸음을. 거기엔 동정이, 그리고 연민이 있을 수 있고, 마르틴에겐 용서가 될 수 있다.


지역 신부 필리프는 제레미가 고해성사한 것을 두고 함께할 수 있다면, 매일 볼 수 있다면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필리프가 제레미를 사랑하는 것엔 이유가 없다. 순수한 이끌림이고 원초적인 욕망일 뿐이다. 그래서 필리프의 발기된 상태는 사랑의 증명이고 관용의 근거이다.


미세리코르디아가 내포하는 의미가 영화에 산재하지만 모든 게 비윤리적 상태에서 발현된다. 하지만 동정이라는 것, 연민과 용서, 긍휼한 자비와 관용이 어디 도덕적 기준으로 대상을 가리냐는 문제에서 인간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망설일 것이다.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본다.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 권능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으심은 영화가 부분이 아닌 전체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짐과 같음을. 그분이 역사하심은 우리가 계속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자비의 주체를 생각하고 느끼게 됨은 삶에서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아왔구나 느끼는 것. 오늘도 그분은 사랑에는 기준이 없음을 강조하신다. 인간의 삶. 그 전체를 통해서.


<은총은 낮은 것들을 사랑하고 가시 돋친 것들에 의해서도 혐오되지 아니하며 더러운 옷을 좋아한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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