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영화를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밤에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가설 극장에서 보았다. 전국이 새마을 운동으로 들끓고 있을 때였다.
새마을 운동을 홍보하고 국민들을 계몽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영화였다. 영화 제목은 꽃피는 팔도강산 시리즈 중 하나 였던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된 원로 배우 황정순씨와 김희갑씨가 부부로 나왔다.
영화배우라면 잘생기고 예쁜 줄 알았는데 두 분다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평범해 보여서 신기했다.
영화에서 황정순씨는 여성 지도자였는데 툭하면 부녀자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했다.
"여성들이 먼저 깨어나야 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남편에게 쩔쩔 맬 필요가 없어요.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여성이 돼야 합니다. 어쩌구저쩌구"
차분하게 말 할 수 있는 내용의 연설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황정순씨는 연설 도중에 흥분해서 손으로 탁자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열변을 토하고 집으로 간 황정순씨의 태도가 연설의 내용과 딴판이었다.
김희갑 남편의 말 한마디에 몸까지 굽실거리며 쩔쩔 매는 것이 아닌가. 동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웃었다.
'어, 자기 입으로 쩔쩔 맬 필요가 없다고 해 놓고 왜 저 남편에게 쩔쩔매는 거지?' 어린 마음에도 '여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남편에게 똑 부러지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러닝타임이 4시간이었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스칼렛 오하라가 왜 저 바보 같은 애슐리에게 죽고 못 사는 거지? 하는 생각에 답답했지만,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는 법 없이 헤쳐나가는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같은 과 커플이 영화 보러 간다고 하면 나도 같이 가도 되냐고 하면서 눈치 없이
끼어서 영화를 보았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 애정의 조건, 택시 드라이브, 다크나이트 같은 영화였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영어 학원 친구와 둘이서 보았다. 그 친구는 남학생이었다. 남자와 단 둘이서 영화를 본 것은 아마데우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라떼는 여간해서 남학생들과 영화를 볼 생각을 못했다. (나만 그런가?)
80년대에는 TV 명화 극장을 통해서 그야말로 수많은 명화를 두루 두루 섭렵했다. 십계,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다윗과 밧세바를 보며 구약 성경에 대해 감을 잡기도 했다.
남편은 영화를 보는 건 쓸데없는 돈 낭비라고 했다. 돈 낭비가 아니라 했어도 같이 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두 아이가 자라면서 애니메이션 시대를 맞이했다. 디즈니와 드림 웍스, 일본 애니메이션까지 가끔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보았다.해리 포터 시리즈를 그냐 지나칠 우리가 아니었다. 당시 육아와 일에 지쳐 어떤 시리즈물에서는 졸기도 했지만 해리포터가 커 버려서 좀 징그러운 마지막 화까지 싹다 보았다.
온 가족이 함께 본 영화를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오직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따뚜이와 맘마미아1 라고나 할까. 라따뚜이를 보면서 남편이 너무 크게 웃어서 아이들이 창피해 했다. 맘마미아를 본 후에도 남편이 문제였다. 남편은 저런 영화를 왜 돈을 주면서 보냐고 야단이었다.
(일러스트 by 솜)
영화는 고달픈 시절에 가장 손쉽게 즐길 거리가 되어 주었다. 영화를 보며 울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딸과 함게 국제시장을 볼 때는 딸이 많이 울었다. 가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는 남주를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했다. 엑시트, 반딧불이, 카운트 같이 소소한 영화도 울림은 결코 소소하지 않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은 주로 넷000나 왓0에서 영화를 많이 본다. 오래 전에 본 영화,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를 찾아서 다시 본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만큼 많이 본다. 아니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비율이 얼추 3 : 2 정도 될 것이다.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고는 나도 언젠가 영화 리뷰에 도전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보다 마음에 와 닿는 한 장면, 대사 한 줄, 감동적인 캐릭터, 개성 있는 주변 인물, 등에 대해 마음에 와 닿는 지점과 맥락이 통하는 일상 이야기를 엮어서 쓰고 싶다. 최대한 솔직하고 최대한 자유롭게. 영화너머 삶의 진실을 엿보다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