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추석 특집 원픽으로 고른 영화입니다. 우리는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와 보스톤을 놓고 살짝 고민을 했지만 배우 한 사람보다는 작품이 더 중요하다는 데 별다른 이견 없이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다음은 1947년 보스톤 마라톤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거머쥔 서윤복(임시완)의 어머니와 서윤복의 대화입니다.
-뛰지 마라, 그렇게 뛰면 신발 닳는다.
뛰지 마라, 뛰면 빨리 배고프다,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냐?
-나는 손기정이 될 거야
해방 후 미군정 시기 혼란기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빈국에 속했습니다. 너도나도 가난했죠. 서윤복의 집도 예외가 아닙니다. 겁나 가난합니다. 서윤복은 투잡러 입니다. 냉면 집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공사판에서 막 노동도 겸하지요. 이유는 악착 같이 돈을 벌어서 엄마를 호강 시켜 주기 위함입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한편 손기정(하정우)은 1936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화분으로 가렸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육상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육상에서 손을 뗀 상태입니다. 남승룡(배성우)은 그런 손기정에게 우리의 후배들은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태극기를 달고 뛰게 해 줘야 하지 않겠냐며 대표팀 감독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서윤복을 찾아온 손기정에게 서윤복(임시완)은 마라톤을 하면 돈을 주냐고 되물으며 현실에서는 돈이 더 급하다며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숨깁니다. 서윤복의 태도에 손기정은 서윤복의 깡과 근성을 알아보지만 섣불리 달래거나 설득하지 않고 돌아서지요.
남승룡은 서윤복에게 돈을 쥐어주며 서윤복의 마음을 달랩니다. 그리고 손기정에게는 병원에 입원 중인 서윤복어머니를 만나게 해 줌으로써 서윤복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알려줍니다.
서윤복은 팀에 합류하지만 엄마의 병수발과 투잡으로 인해 마라톤에 전력하지는 못합니다.
투병 중이던 서윤복 어머니가 사망하던 마지막 순간에 서윤복 대신 손기정과 류승룡은 임종을 지키고 서윤복에게 엄마의 유언을 전합니다. 서윤복은 임종을 지켜준 손기정과 남승룡에게 꼴까닥 넘어옵니다.(이때의 신파는 애교)
엄마의 장례식 이후 서윤복은 마라톤에 올인하며 손기정의 지도에 따라 지옥 훈련에 돌입합니다.
손기정 감독, 남승룡코치과 서윤복선수 3명의 마라톤 드림팀은 보스톤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런데 드림팀 앞에 놓인 보스톤 행은 녹록지가 않습니다.
조선은 미군정 치하에서 난민국으로 분류되어 국제 대회의 참석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지요. 손기정과 친분이 있는 켈리 선수의 초청장으로 한시름 넘기는가 했는데 더 큰 문제가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난민국의 신분으로 참가하려면 거액의 재정 보증을 해야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미 군정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재정 보증은 드림팀에게 커다란 난관이 되고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미국의 사업가 백남현(김상호)의 보증과 국민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어렵사리 해결하는 걸로 나옵니다. 후원금 모금을 위해 걸어 놓은 커다란 바구니에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는 장면이 등장하지요.
미군의 군용기를 타고 보스톤에 도착한 드림팀은 도착 신고를 위해 보스톤 마라톤 협회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난데 없이 성조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줍니다. 노발대발하며 항의하는 손기정에게 조선은 난민국이고 미 군정 치하이기 때문에 규정에 의해 태극기를 단 유니폼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협회의 입장을 설명하는 백남현과 감독님도 일장기를 달고 뛰지 않았냐며 중요한 것은 뛰는 것이라고 말하는 서윤복에게 손기정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조선인이 성조기를 달고 뛸 수는 없어!
(기자회견하는 손기정선수)
손기정은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호소합니다.
보스톤 마라톤 대회는 보스톤의 독립을 기념하는 대회이다. 미국이 독립국인 것처럼 우리도 독립국이다. 성조기를 달고 뛰라고 하는 것이 독립 정신이냐, 그것이 마라톤 정신이냐, 나는 일장기를 달고 달렸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육상을 금지 당했다. 육상을 할 수 없는 다리는 이미 잘려나간 다리나 마찬가지다. 우리 선수는 성조기를 달고 뛸수 없다. 그의 다리를 자르겠느냐?
손기정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협회장과 관계자들, 기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무릎 꿇음은 손기정에겐 죽음, 윤복과 조국을 위한 손기정의 살신성인)
손기정의 솔직한 토로와 호소에 감동한 회견장에 소동이 일게 되고 협회장은 대한민국의 국기를 달도록 허락합니다. 대한민국과 드림팀에 대한 자부심이 제대로 차오르는 순간입니다. (국뽕을 쥐어 짜내는 것과 차원이 다름)
남승룡은 35세의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서윤복과 함께 마라톤을 합니다. 남승룡은 서윤복의 옆에 붙어 달리며 서윤복이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힘내라 서윤복!)
마의 오르막 코스에서 서윤복은 엄마에게 밥을 갖다 주기 위해 서낭당까지 뛰어가 잿밥을 가져오던 일을 떠올리며 젖먹던 힘까지 쥐어짭니다. 힘든 코스를 지났지만 마지막 난관이 남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개로 인해 진로 방해를 받아 서윤복은 그만 넘어지고 말지요. 손기정이 외칩니다.
윤복아 일어나, 윤복아 잘하고 있어.
서윤복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뒤처진 거리를 좁히면서 불굴의 투혼으로 조국과 드림팀에게 우승 메달을 안겨줍니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서윤복이라는 이름을 모를 뻔했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조국의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자부심을 일깨워 주었던 서윤복 선수, 서윤복의 우승은 국민 전체의 우승이고 기쁨이고 영광이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그날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름도 빛도 없이 수고한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더했습니다.
첫 번째는 남승룡선수입니다. 남승룡선수는 아시다시피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와 함께 동메달을 딴 선수지요. 일제에 의해 육상 활동이 금지된 손기정을 대신해 마라톤 육성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베를린 올림픽의 울분으로 까칠한 손기정과 근성은 있지만 야생마 같은 서윤복을 중간에서 중재하고 설득하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요.
그 중에서 압권은 남승룡이 보스톤에서 서윤복과 함께 뛰었다는 것입니다. 남승룡이 35세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12위로 들어온 것도 가상하지만더 놀라운 것은 대회 경험이 일천한 서윤복의 페이스를 조절해 주어 서윤복을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서윤복이 마지막에 스퍼트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남승룡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남승룡의 페이스 조절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48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스턴 마라톤 출전은 그 이듬해 1948년 런던 올림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출전한 서윤복은 27위에 그치고 말지요. 원인은 페이스 난조였습니다. 마라톤선수에게 페이스조절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윤복은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페이스 조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강조했을 듯요. 서윤복의 메달실패를 교훈삼아 훈련한 결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위의 기록을 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이를 서윤복의 메달실패의 축복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난민국으로서 재정보증을 해결하는 것은 드림팀에게는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영화에는 백남현(김상호)선생과 국민들의 후원으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화에서도 인상 깊게 나오는 미군정청 체육담당관 스미들리 여사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서윤복의 마지막 스퍼트를 응원하는 사람들)
미 군정청 체육담당관 스미들리 여사는 당시 손기정의 손을 잡아 끌고 존 하지 군정사령관 앞으로 가 600달러를 선뜻 내놓으며 “장군도 협조하세요, 성금을 거둬 보냅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미 군정 직원들이 1달러씩 내고, 언더우드 연세대 이사장이 많은 돈을 빌려줘 출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유석재의 돌발史전)
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손기정의 집에서 숙식 하던 서윤복의 단백질과 염분 보충을 위해 통닭과 새우젓을 차려준 손기정 선수와 그의 아내도 숨은 공로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으로 이룬 경제적 부흥의 발판을 딛고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이름을 떨친 훌륭한 사람 뿐 아니라 이름 없이 수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또한 이 영화는 오늘날 한류가 있기 전에 마라톤 한류가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는 사실을 리마인드 시켜주었습니다. 한류의 원조는 두말할 것 없이 K마라톤이지요,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