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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소금 Sep 22. 2023

내사랑 - 붓 한 자루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아요


이 영화는 캐나다 최고의 인기 나이브 화가(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의 실화 바탕 영화입니다.




모드는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합니다. 숙모 집에 얹혀 살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엄마에게 물려받은 집을 팔아버렸다는 친오빠의 일방적인 통고를 받게 됩니다. 딱한 처지가 된 모드는 숙모에게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지요.




모드는 잡화점에 갔다가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가 하우스 메이드(가사 도우미)를 구하고 있는 것을 알아고 에버렛 루이스의 집을 찾아갑니다. 에버렛은 보육원 출신으로 작은 집에서 생선과 장작을 팔며 혼자 가난하게 살고 있지요.



첫 대면에서 모드는 퇴짜를 맞습니다. 모드가  하는 집안 일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죠. 에버렛이 쫓아냈는데 모드는 갈 데가 없습니다. 에버렛이 가라고 해도  기어이 눌러 앉아 집안 일을 시작합니다.



집안 일에는 대략난감이지만 모드도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입니다. 모드는 칙칙하고 어둡기만 한 집안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선반과 문, 벽과 계단 심지어 굴뚝에도 그림을 그리지요.




에버렛의 식사를 챙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에버렛을 위해 에버렛이 닭장에 키우는 닭을 손수 잡아서 치킨 수프를 끓이기는 수고도 마다않지요.

죽은 닭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살아 생전의 모습을 벽에다 예쁘게 그려줍니다.



에버렛이 모드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습니다. 에버렛은 모드에게 이 집의 서열은 에버렛, 개, 치킨, 그다음에 모드라며 대놓고 무시를 하죠. 게다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어요. 에버렛에게 손찌검을 당한 날은 모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큰 결심을 한 듯 당차게 한마디 하죠. 나가라고 하면 나가겠다고 대신 일 한 삯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에버렛이 준 돈으로 모드는 물감을 사옵니다. 모드는 열심히 그림을 그립니다.




에버렛의 단골 고객인 샌드라가 작은 집을 찾아옵니다. 샌드라는 생선 값을 치뤘는 데 생선을 배달 받지 못했다고 하죠. 그녀는  모드가 벽에 그려 놓은 그림에 관심을 나타납니다. 벽에 그려져 있는 치킨을 보며 저건 뭐냐고 물어봅니다.


모드가 대답합니다.


"치킨이 살아있던 시절을 기억해 주려고 그렸죠."




샌드라는 모드의 그림을 맨 처음으로 알아봐 주는 그 한 사람이 됩니다. 

샌드라와의 만남은 모드와 에버렛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오지요. 샌드라가 모드의 그림 카드와 그림들을 주문하면서 모드의 그림이 알려지고 더 나아가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모드의 카드 그림을 사 주었던 샌드라는 모드에게 더 큰 그림을 주문합니다.


"뭘 그리든 내가 살게요 뉴욕으로 보내줘요."

에버렛이 팔던 생선의 고객이 모드의 큰 손 고객이 됩니다.

"그림 같은 데 돈을 쓰는 바보도 있다니."

에버렛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이 납니다.


 

에버렛은 모드에게 "그렇다고 집안일은 놓아선 안돼." 하며 어깃장을 놓지만 모드를 위해

빗자루로 바닥을 대신 쓸어 주기도 하고  애버렛이 잡화점에 갈 때면 수레에 태워주기도 합니다. 츤데레 에버렛이라고나 할까요?





한편 모드는 에버렛과 같이 살면서도 한동안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에버렛이 결혼할 때 세금을 내야 하는 것과 사람들의 축하를 부담스러워 하며 하기 때문입니다. 모드가 입을 엽니다.


-같이 살고 같이 자는 데 왜 결혼하지 않는 거죠?

-나는 사람들을 싫어해

-사람들도 당신 싫어해요.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을 합니다.

애버렛이 자란 보육원에서요. 스몰 웨딩입니다. 하지만 보육원 원장님과 에버렛의 절친 부부의 축하 만큼은 결혼식 장을 넘어 모드의 부부가 집으로 가는 길까지 차고 넘칩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에버렛은 늘 하던 대로 모드를 수레에 태우고 집으로 향합니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웃으며 그들의 작은 집으로 돌아가지요. 저녁에는 방에서 춤을 춥니다. 음악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부부가 주고 받는 속삭임이 음악보다 아름답습니다.




에버렛 : 내일은 다시 평소와 똑같을 거야

모드 : 낡은 양말 한 쌍처럼? 한 짝은 다 늘어나고 한 짝은 구멍 잔뜩 나고?

에버렛 : 아니

모드 : 꾀죄죄하게 때 탄 양말?

에버렛 : 아니

모드 : 하얀 면 양말?

에버렛 : 아니야 당신은 감청색이나 선황색 양말이지



애버렛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감청색과 선황색이거든요.(순전히 저의 추측입니다.)




두 사람은 모드가 그린 그림을 파는 일에 진심입니다. 모드가 그림을 그리면 에버렛이 그림 값을 정하고 흥정을 합니다. 모드는 에버렛을 사장님이라고 부르죠. 훈훈합니다.

부부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기적 같습니다.






모드가 에버렛의 무시와 천대와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집을 떠났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모드가 그 집에서 끝까지 머물며 살아냈기에 쥐 구멍에 볕 드는 것 같은 좋은 날을 마침내 선물로 받은 것이지요




모드가 괴팍한 에버렛과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갈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머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축복입니다. 길이 많으면 무엇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길인지 헷갈릴 때가 많지요. 모드는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에버렛의 모욕적인 언행과 무시에도 그 집에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에버렛과 함께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욕적인 언행과 무시가 기본 값인 사람과 사는 것은 고통스럽지요. 현실은 영화처럼 녹록지 않은데다  인간의 감정은 쉬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날마다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한 일을 겪어야 합니다. 모드도 에버렛과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을 겁니다.



모드는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감성 가득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에 마음에 차오르던 기쁨과 희망과 행복이 저의 마음에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 기쁨이 충만한 모드, 그런 모드라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괴로움은 꿀렁꿀렁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애버렛에게 긁힌 마음을 덮고도 남을 듯 합니다.

(생전의 모드 루이스)

그녀의 몸은 비록 작은 집에 살지만 그녀의 마음은 새처럼 창공을 날고

말처럼 들판을 뛰어 다녔을 것입니다.

모드가 그림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샌드라와의 대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오래 알고 지냈죠, 아직도 그 창작 열의 원천이 뭔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저는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붓 한 자루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아요

창문, 창문을 좋아해요,나가는 새, 꿀벌 매번 달라요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바로 저기요


모드가 생전에 했던 말 속에서도 잘 나타나지요.

"그림 그리는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누추하고 힘든 환경이라도 그 곳이 제자리인 줄 알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갑니다. 행운의 여신은 길치라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잘 못 찾는 것 같더군요.

 


모드 루이스는 TV 방송과 잡지사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하는 등, 유명한 화가가 되지요.닉슨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모드의 그림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두 점이나요

게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서, 잘 살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모드는 죽음을 앞두고 에베렛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도 듣지요.


-나는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난 사랑 받았어 애버렛



모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난 사랑 받았어 에버렛."입니다.

(모드 루이스의 작품)

모드는 붓 한 자루로 자신이 치유 받고 행복을 찾은 것 뿐 아니라 함께 사는 에버렛의 가난한 마음까지 치유합니다. 모드가 죽은 후에도 모드의 삶과 그녀가 그린 그림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지요.

작고 보잘것 없는 몸으로 한 일입니다.



저의 삶과 글쓰기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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