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1.5세인 이민진 작가가 쓴 작품의 원작을 애플tv에서 8부작으로 만들어서 스트리밍 완료한 드라마이다.
1910년부터 1989년 까지 80년, 4대에 걸친 재일동포 가족의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이 과거와 현재를 쉴 사이 없이 왔다 갔다 하고, 배경이 되는 장소, 오사카, 뉴욕, 한국을 오가는데도 산만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도리어 역동적이고 균형이 잘 잡혀 있어 고급짐이 뿜어져 나온다.
여주인공 선자는 언청이이며 절름발이인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존감 있고 지혜로운 성인으로 성장한다. 선자의 어머니 또한 하숙을 하며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정성껏 돌보는 억척스러우면서도 마음 따뜻한 인물이다.
2화에서 선자는 뜻하지 않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고한수(이민호)와 사귀게 되고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한수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그러나 한수는 오사카에 결혼한 부인과 딸이 3명이 있기에 결혼할 수는 없지만, 아이와 선자와 선자어머니를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선자는 한수의 첩이 되느니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한수의 제안을 거절한다.
선자네 하숙집에서 선자어머니의 정성어린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김이삭 전도사는 선자에게 뱃속의 아이를 입양 보낼 것을 권유하자, 선자는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에게만은 최선을 다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당차게 말한다.
김이삭 전도사는 선자의 결심과 판단에 감명을 받고 선자와 결혼하고, 결혼 후 곧바로 오사카로 간다. 선자는 오사카에서 한수와의 아들 노아와 김이삭과의 아들 모자수(모세)를 낳았다. 모자수는 어른이 되어 파친코의 경영자가 된다.
할머니 선자(윤여정)의 손자 솔로몬(진하)은 1화부터 드라마의 중심에서 선자의 손자로, 또 성공한 금융계의 재원으로 선자와 함께 자주 등장하여 선자와 함께 드라마를 이끌고 나간다.
중심인물이 되는 젊은 선자역할의 김민하 배우는 외모부터 지극히 한국적이다. 강남역 부근이나 강남의 유명백화점에서 흔히 부딪힐 수 있는 예쁜 얼굴과는 거기가 멀다. 오히려 7~ 80년대 거리에서 간간히 만날 수 있는 둥그스럼하고 수수한 외모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인의 매력이 철철 넘친다.
김민하 배우는 3~4개월에 걸쳐 오디션을 봤는데, 그 당시 감독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숨 쉬라" 는 말이었다고 한다. 배우는 감독님이 말한대로 그 자리에서 그 때의 감성을 가지고 숨 쉬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선자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민진 작가는 하버드대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일본은 나쁘고 한국인은 옳다 와 같은 이분법이 아니라 좋은 일본인 나쁜 한국인이 있을 수 있음도 함께 언급했다. 따라서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훈계하지 않고 최대한 그 때 일을 사실적으로 조명했다고 한다.
드라마는 신파적이지 않고 과하거나 격한 묘사로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수난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중심인물 선자는 강요된 희생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현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선자의 자존감에 근거한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희생과 헌신이기에 선자를 바라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한국여성의 인내와 강인함에 공감과 함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인내와 강인함의 원동력이 노오력과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의 독한 정신력이 아니라 내면에서 넘치는 사랑과 자존감이 있기에 가능한 쿨한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예를 들면,
언청이 이며 절름발이인 선자의 아버지~ 장애에 대한 열등감이 없음. 아내에게 다정하며 선자에게 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는 인물
선자의 어머니~남편이 언청이에다 절름발이지만 무시하거나 구박하지 않음. 신세 한탄 1도 없음. 원색적인 부부싸움 없음. 남편의 죽음에 과하게 울지 않음.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충실하게 살아감
일본순사에게 잡혀가는 하숙집에 세든 아저씨~잡혀가면서도 꺾이지 않고 평소에 즐겨 부르던 민요를 부름
젊은 선자~고한수의 제안 거절, 아이를 자기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도 부러울 것이 키우겠다고 당당히 선언함. 이삭 전도사와도 쿨하게 재혼
선자의 손자 솔로몬~ 현실의성공과 야망, 한국인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인물, 4화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선택하여 부유층 할머니와 계약을 파토내고 빗속에서 춤을 춤(솔로몬의 선택은 아이와 사랑하는 여자 보다는 성공과 야망을 선택한 한수와 대조를 이룸)
이민진 작가는 외할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한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기독교의 용서와 사랑, 인내와 헌신이 드라마의 인물들에게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의 정신에 더 가깝다. 희생과 헌신이 자발적이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압제와 한국인의 수난이 극 전반에서자연스럽게 잘 전달되고 있다. 좋은 영화 한 편이 나찌의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데 기여한 것처럼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압제와 한국인의 수난과, 수난을 극복하는 한국인의 강인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 만들어진 수준 높은 드라마가 시청자의 정신세계를 한층 고양시킬 수 있음을 파친코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