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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제인 - 사랑을 선택하다

by 분홍소금

영화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삶과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앤 해서웨이가 제인 오스틴 역을, 제임스 맥어보이가 톰 로프로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6남 2녀 중 7째로 태어났습니다. 오빠와 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형제자매들은 사이가 돈독했다고 합니다. 제인은 여자가 교육을 받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던 탓에 오빠들처럼 옥스포드와 해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할 수는 없었지만 18세기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책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한 제인 오스틴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 앞에서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곤 했습니다. 영화의 초반에도 제인이 사람들 앞에서 글을 낭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인도 제도의 군목으로 떠나는 커샌드라의 약혼자 파울을 위해 쓴 글이었지요. 사람들은 제인의 낭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무척 즐거워 합니다.



제인이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쓴 글을 가족들과 함께 읽고 낭독하며 지내는 시간들은 제인이 소설가의 소양을 갖추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Becoming Jane입니다. 제인이 우리가 아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삶 중에서 결혼을 둘러싼 돈과 사랑에 대한 갈등과 돈보다 사랑을 선택했지만 가난을 이유로 거절 당하고 마는 결혼에 초점을 맞춥니다.



제인이 살았던 시대에는 결혼이 여성이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부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가정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제인의 가정 형편도 넉넉한 편이 못 되었기에 제인의 부모, 특히 그녀의 엄마는 결혼 적령기인 제인에게 근처 지주의 조카인 위즐리와 결혼 할 것을 종용합니다. 제인과 가족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위즐리가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추켜 세우는 엄마에게 제인은 "재산 따위로 나를 사로 잡을 순 없어요." 라고 합니다.



제인과 엄마가 갈등하는 사이 그레셤 부인과 위즐리가 제인의 집을 방문합니다. 이 때 위즐리가 제인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지요.



저는 이모님 재산을 상속 받을 것입니다.

저와 결혼하면 전부 당신 것이 될 것입니다.

제인은 위즐리가 하는 말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합니다.

제인의 태도에 넝쿨째 들어온 호박을 걷어찼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허리가 휘게 일해야 겨우 먹고 사는 주제를 알면서 그러냐고 화를 냅니다. 가난한 노처녀는 사방에서 조롱거리가 될 뿐이며 시골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거라고 악담을 합니다.



난 제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오, 하던 아버지도 엄마를 거들지요.

부부간에 사랑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돈이 없으면 못 사는 거야.

뼈 때리는 말입니다. 당시에 여자가 바깥에 나가 돈을 버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제인은 말처럼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제인은 자신의 결혼에 있어 엄마의 생각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사랑 없는 결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임스 앤 해서웨이.png
제임스 맥어보이.png

로프로이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갈등은 위즐리와 겪은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가져옵니다.


로프로이와 첫 만남은 엉망이었지만(제인의 작품 속 남녀와 비슷한 모습)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난 돈도 집도 없는 가난뱅이고 괴팍한 외삼촌한테 얹혀살아요.

청혼할 자격도 없지만 내 마음은 알아줘요.

제인 난 당신 거에요 내 심장과 영혼을 모두 당신께 바칠게요.



로프로이의 사랑을 확인한 제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언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커샌드라 언니, 너무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아, 의심과 방황은 끝났어.

그 대단한 부잣집 부인과 조카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

톰이 판사 외삼촌 댁에 우릴 초대했어.

내가 그분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하지만 제인의 바람과는 달리 로프로이의 외삼촌은 제인이 가난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부자 과부를 앞세워 가난한 계집들을 끌어들이다니,

술에 절고 계집질에 미치면 나아질 가망이라고 있지,사랑 타령 하며 불행한 결혼에 발목을 잡히겠다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엄청나게 돈에 집착합니다.



낙심한 제인은 커샌드라의 약혼자였던 파울이 산도밍고에 도착 직후 황열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로프로이가 약혼한 소식을 듣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한 제인 자매가 같은 시기에 일생일대의 아픔을 겪은 셈이지요.

제인은 늘 언니인 커샌드라와 함께 있습니다. 제인은 글을 쓰고 커샌드라는 제인이 쓰는 글을 좋아합니다.



-제인, 편지 쓰니?

-아니, 런던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야, 주인공은 아주 훌륭한 두 여성인데, 둘은 엄청 가난해.

-누구 얘기 같다. 어떻게 끝나?

-두 여자 모두 행복을 찾아.

-멋지게 결혼도 해?

-눈부시고 멋지게 결혼해, 엄청난 부자를 만나거든.



글을 쓰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던 제인 앞에

약혼을 했다던 로프로이가 떡 하니 나타납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다면 삶이 무슨 소용이에요?

함께 도망칩시다.

런던을 지나 스코틀 랜드에 가서 결혼합시다.

이 방법 밖에 없소.

-가요 마차 소리가 들려요.

제인과 로프로이는 사랑의 도주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타고 가던 마차가 진흙탕 길에서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로프로이는 겉옷을 제인에게 맡깁니다.거기에 있는 남자들과 함께 마차를 밀기 위해서지요.

제인이 로프로이의 겉옷을 건네 받을 때 겉옷 호주머니에서 편지 한 통이 떨어집니다.

로프로이의 엄마가 로프로이에게 쓴 편지였지요.

아들아, 네가 보내 준 돈도 잘 받았다.

삼촌이 준 용돈을 우리에게까지 보내 주다니,

너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니?

200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편지 한 통이 제인의 마음을 온통 뒤흔듭니다. 수심이 가득 밀려오지요. 모두를 위해 가장 나은 선택은 무엇일까? 제인은 사랑의 도주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놓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제인은 현실적인 감각과 사람의 내면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른 작가입니다. 한 통의 편지가 제인이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제인을 깨웁니다.



로프로이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제인이 입을 뗍니다.



-리머릭에 가족이 많아요?

그 많은 가족을 누가 부양하나요?

방탕하다는 소문은 뜬소문이었군요.

대체 몇 명을 먹여 살려야 하죠?


-가지 말아요 제인, 난 당신 포기 못해요.

사랑하기만 하면 돼요.날 사랑하죠?

-그럼요,하지만 가족을 무너뜨리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어요.

죄책감과 후회, 비난이 우릴 서서히 좀먹을 거예요.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는 로프로이에게 제인은 현실을 일깨웁니다.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남자의 애 끓는 심정이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제임스 맥어보이 엄지척입니다.)


글 쓰는 제인 오스틴.png

집으로 돌아온 제인은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소설의 제목은 '첫 인상'(오만과 편견)입니다.

제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해 속속들이 경험했지요.



제인이 비록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하긴 했지만 그녀는 시대 정신에 저항하는 투사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지위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무도회와 만찬을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았지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춤은 질색이라고 하는 위즐리에게 제인이 대꾸합니다.

젊은 층에겐 무도회는 큰 즐거음이죠, 대화하고 춤추고 예의를 지키며 교제하는 자리라고요.

성격도 대단히 활달합니다. 크리킷 경기를 하는 남자들 틈에 끼여 배트를 들고 홈런을 쳐서 4점을 득점하기도 하죠.



소설은 세상의 현실을 보여줘야 하죠.

인물과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인간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 그게 소설의 역할이에요.

제인이 로프로이에게 한 말처럼 제인은 소설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돋보기로 본 듯 자세하게 보여 줍니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건과 인물을 통해 마치 우리가 그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입니다.



제인의 소설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옵니다. 시대에 순응하는 사람, 돈만 따지는 사람, 돈 때문에 비굴하게 사는 사람들 등 이지요. 하지만 제인은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입장이든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녀의 치우치지 않는 시각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에 종속과 억압이 단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부자 이모의 재산을 상속 받기로 한 위즐리는 사사건건 이모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본인의 일에 대한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지요. 로프로이가 방탕하게 사는 이유도 법관인 외삼촌이 상속을 이유로 로프로이를 심하게 구속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외삼촌의 반대로 제인과의 결혼이 무산되었지요. 로프로이는 가난한 집의 장남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인 로프로이에게 현실의 올가미가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인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서술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대의 상황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제인은 종속과 속박의 문제는 여성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씌어진 족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아가 종속과 속박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지워져 있는 십자가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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