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 가장 좋았던 것은 사우나를 다시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잃어버린 나의 힐링 스팟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이런 날이 다시 오긴 오는구나 싶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날씨까지 쌀쌀해지고 있어 사우나의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평일에는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해서 주로 토요일에 간다.
토요일은 출근하지 않는데도 일찍 일어나는 까닭이다.
우리 집 두 남자가 하루 종일 먹을 밥과 반찬을 준비해 놓고
일찌감치 사우나로 향한다.
물론 혼자 가지 않는다. 찜질방 가자고 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오는 언니와 함께 간다.
우리집과 언니 집 중간 지점에 위치한 양재천 근처의 불가마가 있는 찜질방이다.
사우나 근처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언니가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약속 장소를 벗어나 가을 산책 겸 해서 양재천을 걸었다. 단풍이 들지도 않았는데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상 기온 때문에 전처럼 단풍이 예쁘게 들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했다.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쯤 언니가 왔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노?
-집에 있어봤자 밥 셔틀 밖에 더 하겠나? 빨리 커피 사자.
-비싸다.
-그래도 사자.
-더 가보자,천지가 커피 집인데, 설마 커피 집 없어서 커피 못 마시겠나?
사우나 근처에서 커피를 샀다. 입구에서 반입 안 된다고 할까 봐 커피가 보이지 않게 가방에 숨겼다.
언니와 나는 사우나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몸에 냉기를 빼 조야 면역이 좋아진다.
-뜨거운 물에 푹 담궈서 건조해진 몸을 젹셔조야 돼.
-바이러스가 열과 습기를 싫어하잖아, 사우나 하면 감기도 낫는다.
우리는 자매아니랄까 봐 죽이 척척 맞는다.
-원적외선 천기토 찜질도 하자.
언니는 뜨거운 원적외선 구슬에 맨발을 그대로 집어 넣었다.
-언니 다리 익을라?
-시원하다.
-아지매가 독하다.
나는 최근에 딸이 보이스 피싱 당할 뻔한 이야기를 했다.
-언냐 솜이 보이스피싱 당할 뻔했다.
-그리 똑똑한 애가?
-똑똑하고 돈 있는 애들이 걸리는 보이스피싱이 따로 있는 갑더만
-그런 것도 있나? 큰일 날 뻔했네, 어쩌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하더노?
-검찰이라고 하면서 솜이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등록이 되었다고 하더래, 솜이 그걸 어떻게 아냐고 증명하라고 했대.
그러니까 서류를 보내 줬다고 하데, 솜이가 또 이걸 어떻게 믿냐고 하니까 또 서류를 보내주고, 이런 식으로 서류를 10개 이상 보내줬나 봐, 우리 같으면 서류 같은 것 보내줘도 읽는 게 귀찮아서 그냥 됐다 할 건데 솜이 집요하잖아. 상대방이 자기가 말하는 걸 자꾸 증명해 주니까 끌려 들어간 거지.
-그래서 돈을 어떻게 했다노?
검찰이라는 사람이 금융 감독원에 안전하게 맡겨주겠다고 하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은행가서 돈을 다 찾으라고 하더라나, 내가 솜이 보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지 했더니, 자기도 이상해서 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냐고 물었대. 그랬더니 그럴듯한 이유를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대면서 엄청나게 빌드업을 하는 통에 홀딱 넘어 갔다지 뭐야
-근데 보이스 피싱인 줄 어찌 알았다노?
-솜이가 은행에서 돈을 다 찾았대, 그리고 돈 찾았다고 금감원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하니까 전화를 바꿔주는데, 근데 금감원 담당자의 목소리가 방금 검찰 이라고 하던 사람 목소리와 어째 비슷해서 아무래도 같은 사람 같더라지 뭐야.
-이놈이 1인 2역을 했구만.
-바로 그거지, 이 사람이 둘이서 하면 말을 맞추기 어려우니까 혼자서 1인 2역을 한 거지.
-그제서야 솜이 정신이 퍼뜩 들었나 봐. 전화를 끊고 아는 변호사 오빠한테 물어봤대. 그 오빠가 보이스피싱이라면서 어이없어 했대나 뭐래나.
-천만다행이다, 그건 그런데, 햐아, 그놈들이 1인 2역을 하다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맀네.
-사람들이 당황하면 1인 2역 하는 줄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솜이가 은행에서 얼마나 찾았다노?
-3500만원 정도 털릴 뻔 했나봐.
-아이구 애가 돈도 많다. 언제 모았노? 그나저나 솜이한테 보이스 피싱으로 3500만원 털린 셈 치고 너한테 1000만 달라고 해봐.
-언니야 와그라노?
우리는 보이스 피싱에 대해서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한 사람, 당한 사람, 보이스피싱의 다양한 수법,보이스피싱에 관한 영화 '보이스'까지 총망라 했다.
지인의 시어머니가 일주일에 걸쳐 현금 6억을 금감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갖다 바친 얘기를 하면서는 우리 돈이 뜯긴 것처럼 아까워 했다.
찜질하고 먹고 자고 수다까지 실컷 떨고 나와 보니 바깥은 해거름이 되어 있었다.
-나는 냉기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든다.
-언냐, 그걸 우찌 아노, 나는 잘 모르겠다.
-냉기가 박멸이 되서 감기가 뚝 떨어질 거다. 그리고 일주일은 얼굴이 반질반질할거야
-2주일 반질반질 하지르
언니는 힐링 하는데 찜질방보다 더 가성비 좋은 것은 없다고 했고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내가 똑같은 말을 하고 이번에는 언니가 맞장구를 쳤다.
집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정말로 냉기가 빠졌는지 감기로 잠겨있던 목소리가 트이고 머리가 맑아졌다. 며칠 만에 머리가 맑아지니 살 것 같았다. 브런치스토리에 로그인해서 연재도 설정하고 글도 다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