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 떡국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겨울을 사랑한다. 다른 계절에도 먹을 수 있지만 겨울에는 왠지 한 맛 더 나는 것 같다.
언니가 떡국과 동치미를 가져가라고 해서 남편이 어제 아침에 갖고 왔는데 출근하기 직전이라 먹을 시간이 없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누가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며 먼저 일어서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집에 꿀 발라 놨나? 집에 뭐 맛있는 거 쟁여 놓고 왔길래 그리 바삐 가노?" 그런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막 생각을 했다.
'집에 가자마자 일단 동치미를 한 사발 먹어야지, 떡국도 끓여 먹을까. 잘 밤에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요새 외식을 많이 해서 2킬로나 늘었잖아, 그래선 안돼. 아니다, 맛있게 먹고 영화를 보면서 소화를 시킨 다음 좀 늦게 자면 별 문제 없을 거야. 근데 매번 그러다가 이렇게 쪘잖아.'
집에 가자마자 동치미를 먹었다. 옛날에 장독대에서 퍼다가 먹던 맛이었다. 우리 언니 대단하다.
내친김에 떡국도 끓여 먹어야겠다 하고 멸치 다시 물을 찾는데 다시 물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다시 물을 끓이는 귀찮음이 먹고 싶은 마음을 이겼다. 떡국은 패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다시 물부터 끓였다.
다시 물이 달큰하니 입에 착착 감겼다. 떡국 떡을 한 웅큼 넣었다. 달걀도 넣고 대파도 어슷하게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원래는 달걀 지단을 채 썰고 김도 가늘게 자르고, 갈아서 양념한 쇠고기도 볶아서 한 숟가락 올려야 하지만 내 입에 들어갈걸 애먼 수고는 애초 부터 할 생각이 없었다.
언니가 좋은 쌀로 떡을 하고 두께도 일부러 얇게 부탁해서 한 떡국떡이라고 했다.
과연 그 맛은? 예상을 빗나가라고 있다는 데 이번에는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떡국은 내가 상상한 바로 그 맛이었다. 동치미와 함께 한 냄비를 먹었다. 행복했다. 원초적인 행복이라고나 할까. 소소한 행복을 너무 무시하고 살았구나.
오늘은 금요일이고. 원래는 회원들에게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는 날이다. 이번 주말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피크를 찍는 주말이니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친절한 인사 한 마디도 공공 서비스의 주요한 축이 아니던가.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빨간색 테두리가 있는 미색 니트 모자에 빨간 목도리, 빨간 브이 넼 니트 윗도리이다.
사실 이 옷차림을 놓고 엊저녁부터 고민했다. 다 늙은(사무실 직원으로는) 주제에 TMO(투머치 오지랖)가 아닐까 다들 어려운 시기에 생뚱맞은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떡국 한 그릇의 행복에 그만 마음이 바다같이 펑퍼짐해져서 입고 보자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좋아.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즐거울 수 있다면 기꺼이 망가져 주리라. 아줌마의 전공 과목이 망가짐 아니던가.'
날씨까지 도와주는 구나. 저 모자를 언제 써보나 했는데 엄동설한이 나의 의상 콘셉트에 대한 당위성을 팍팍 부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