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대체 공휴일이라 느지막이 일어나려고 했으나 일찍 잠이 깼다. 어제 초저녁잠을 잔 데다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잠은 깨었으나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찌부둥했다.
언니와 통화를 했다. 언니는 4시40분 알람을 했는데 대체공휴일을 인식하지 못한 알람때문에 일찍일어났다고 했다. "언니, 알람이 정말 대체 공휴일까지 인식할 거라고 생각했어? 농담이지?"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도 몸이 좀체로 개운해지지 않았다.
우리동네 천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비가 와서 말라 있던 도랑에 물이 불어 있었다.
청둥오리들이 즐겁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두 마리 세 마리 다섯 마리가 헤어졌다 만났다를 거푸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경계하는 날개짓을 두어 번 하는 것 같았으나 날아 오르지는 않았다.
절정의 생명력으로 다정하고 느긋하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청둥오리 한 쌍처럼 나도 같은 기운으로
채워지기를!
사진을 얼른 찍고 둘의 시간에 방해가 될까봐 살금살금 뒷걸음을 치며 얼른 물러났다.
여기저기 아카시아 꽃이 범람하듯 만발했다. 아카시아꽃을 따먹고 줄기로는 머리를 감아 파마놀이를 하던 때를 떠올리고 있는데 앞서 가던 나이 지긋한 남자 어르신이 아카시아 꽃을 훑어서 한 입에 넣었다.
앗, 그렇다고 먹으면 쓰나요? 소독차가 맹독성 살충제를 벌써 여러번 분사했을 텐데,
어쩜 비가 와서 다 씻겨내려갔을라나? 씻겨내려 갔겠지.
아카시아 뿌리가 주변 식물들을 고사시킨다고 파내야 한다고 야단이었는데 최근에는 아카시아의 뿌리혹이
주변토양을 기름지게 한다고 해서 아카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쑥 들어갔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폈네~하얀꽃 이파리가 비에 젖에 무거워졌다.
안그래도 두꺼운 꽃잎때문에 무거운데 비가 오니 무거워진 꽃 이파리들이 아래로 축 쳐졌다.
꽃잎이 두꺼워서 슬픈 아카시아여!
레드클로버다. 봄날 이맘때 우리 천변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꽃은 없지 싶다.
비를 맞으며 키큰 레드클로버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기쁨와 환희로 가득찬 생명력이 눈에 보인다
산책을 나오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나. 이렇게 어여쁜 너를 두고
혼자 골방에서 두통이 난 머리를 쥐어 뜯을 뻔 했다
야아 너무 예쁘다. 꽃이 작아서 더 예쁘다.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벌과 나비와 바람과 햇빛이 없어도 꽃망울처럼 터지는 기쁨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있음을 노래하는 듯 하다.
비가 멈추고 해가 내리 쬐면 우린 끝이야 ,우린 오늘이 마지막이야 를
생각했다면 저토록 맑고 투명하고 밝은 표정을 짓지는 못했으리라
내개 주신 오늘의 기쁨을 부디 손상하지 말기를
오늘 내게 주어진 것들에 스크레치 내지 말아야지
파란 작은 꽃이 파란 반딧불 같이 반짝이며 비와 바람을 타고 너울거린다
꽃이 너무 많아. 꽃이 너무 예뻐, 비가 와도 예뻐, 이파리 위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같아,
빗방울 다이아, 물방울 다이아가, 또르르 굴러가잖아.
굴러가는 다이아에도 초연할 수 있는 날, 비오는 날!
징검다리를 건너야하나, 말아야 하나
시간이 너무 지났다.
비오는 날 자연이 내게 안겨준 선물을 가득 담았다. 사진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고 몸에도 담았다.
다리를 높이 들고 보폭을 멀리하여 힘있게 내딛었다.
오늘 내가 받은 선물을 빼앗기지 말아야지!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