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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소금 Jul 18. 2024

사랑의 언어-외식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토요일 오전에 남편과 함께 외식을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계산이 있는데 청계산 길목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출발하면서 밀면, 쭈꾸미 볶음, 만두 샤부샤부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먹고 싶은 것 먹자고 했다. 당신 밀면 좋아하잖아, 했더니 자기는 평소에 맛있는 것 많이 먹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 먹으면 된다 했다. (남편은 혼자 있을 때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남편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편의점 도시락이다.) 

만두 샤부샤부를 먹기로 하고 개점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게 일찌감치 나섰다.   

산자락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상가나 주택이 없다. 오른 쪽은 산이 이어져 있고 왼쪽에는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도로에 차가 다니지 않는다면 고요한 산길 그 자체이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여기는 고개가 있어서 옛날에 산적이 출몰하던 지역이야, 사람들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산적들에게 통행세를 내야 했어."산적이라니 무섭다." "고개너머에 있는 동네에 볼 일이 있을 때는 여러사람이 뭉쳐서 함께 갔다구."

"근데 우리가 이야기 책에서 보는 험상궂고 못된 사람들은 아닐 것 같아, 당시에 산적이라고 해봐야 좀 도둑 수준일 걸. 가뭄 홍수같은 자연재해로 소출이 일천한데 세금이나 높은 임대료 뜯기고 나면 먹을 양식이 없잖아, 할 수 없이 산으로 토낀 사람들, 민초들 아니었을까? 좀도둑 수준이라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동냥수준으로 구걸하다시피 했을 것 같은데,"



남편은 원래 목소리가 큰 데다가 거칠 것 없이 떠들어 대니까 무슨 말은 해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보, 당신 목소리 산적 두목 같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설사 남편의 목소리가  산적 두목보다 크다 한들 걱정할 건 없었다. 변함없이 그자리에 누워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산과 저수지가 남편의 목소리를 맛있게 먹고 달게 삼켜주기 때문이다.



남편이 하는 이야기에 음, 글쿤, 웃기다, 하며 가고 있는데 남편이 신고 있는 운동화가 웬지 불편해 보였다. "여보, 운동화 한 켤레 사세요, 내가 전에 사 준 운동화는 왜 안 신어요?"

"아낀다고 안 신는다." (내가 사준 신발이 남편 발에 좀 끼이는 듯) 

여보 잘 안 맞으면 다시 사세요, 당신이 직접 신어 보고 사요. 그래야 실패 안 한다."

"지금 신은 것도 멀쩡하다." "멀쩡해도 싸구려 티난다. 싸구려 티가 문제가 아니라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구만. 남방도 사 줄게, 티셔츠도 다시 사고, 자꾸 사면 되니까 낡은 거 입지 마세요." "사지마라 사지마라 사지마라 있는 것 입으면 된다. 아무거나 입으면 어때?" "사야 된다 사야된다. 사 줄게 사 줄게." "당신이 돈이 오데 있노 돈이 오데 있노."  "돈 있다 돈 있다 걱정 마라 걱정 마라."

우리는 한 번 말하지 않는다. 두 번씩 어떤 때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그리고 "머리가 나쁘나? 왜 했던 말 또 하노?" 하면서 웃었다.



풍성한 야채와 약간의 고기, 주재료인 만두 8개를 육수에 살짝 익혀서 먹는 건데, 고칼로리 음식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우리부부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데다가 맛도 훌륭하고 가격도 적절해서 대만족이었다. 



육수가 금방 끓었다. 먼저 백합조개 4개를 넣은 후 입이 벌어지자 꺼내고 야채부터 조금씩 넣어 익힌 후에 건져 먹었다. "여보 꼭꼭 씹어서 천천히 묵어라, 당신은 넣지 마라, 그렇게 한꺼번에 넣으면 허겁지겁 먹어야 돼. 내가 할게, 당신은 먹기나 해라."

조금씩 넣어서 이가 안 좋은 남편이 천천히 먹을 수 있게 조절했다.



"밥을 먹었으니 커피를 마셔야지." "당신이 사나?" 

근처에 새로 생긴 까페로 갔다. 단순하고 세련된 외관에 저수지가 한 눈에 보이는 까페이다.  

"당신은 커피 안 좋아 하니까 카오마일 마시라," "카모마일이 뭐꼬?" "국화차다, 나는 아메리카노"

카페의 통유리 너머로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여보, 잠깐만, 사진 찍어야 돼, 맨날 까먹고 먹다가 찍는데 오늘 딱 맞췄다." 디저트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내가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이제 됐다, 마시라" 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뷰가 너무 좋아서 호텔에 온 것 같다, 힐링이 된다, 집 가까이 이런 곳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카페 건물로 들어오는 차를 구경했다. "까페가 입소문이 났나, 차가 계속 들어오네, 1분 사이에 3대가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고 있는 차를 세고 있는 모습이 영화 '베스트 오퍼'의 주인공 '올드먼'이 고저택에 들어 갈 때 마다 숫자를 세는 바에 앉아 있는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홈 화면을 정리하고 나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었다. 남편이 "뭐 보노?"했다. "아무것도 아이다." 우리는 한참 동안 각자 휴대폰을 보았다. "멍 때리고 저수지 보는 걸 뭐라 하게?" "저멍인가?" 까페에 빈 자리가 없이 가득찼다. 입구 쪽을 보니 한 커플이 자리를 찾느라고 두리번 거렸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두 전골에 이어 카페에서 먹은 디저트도 남편이 계산했다. "오늘 당신 돈 마이 썼네." 했더니 "일주일에 한 번인데 뭐,"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유투브를 켰다. 몰래 카메라 영상인데 본 걸 또 보고 또 보면서 볼 때마다 웃는다. "그게 그리 재밌나?" "웃을 일이 있나, 이거라도 보면서 웃는다 아이가."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사진을 계속 찍었다. 스마트 폰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명의 이기 중에 으뜸이 폰 카메라가 아닌가 한다. 예전에는 카메라를 쉽게 가질 수도 없을뿐더러 카메라가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다.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카메라에 넣을 필름을 사야했다. 필름을 구입해서 카메라에 장착한 후 다 찍으면 현상과 인화를 거쳐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필름 값도 값이지만 사진 1장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데 비용이 만만찮았다.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처럼 특별히 기념이 필요한 날에만 사진을 찍었다.  불과 몇 십년 되지 않았는데 세상이 천지개벽수준으로 좋아져서 앉은 자리에서 수 십번 수 백번을 찍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목장 모임시간에 방향과 표정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정신없이 셀카를 찍는 아이에게 "너는 똑같은 사진을 왜케 많이 찍노?"하고 물은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찍힐 확률을 높이려면 많이많이 찍어야 돼요. 많이 찍어서 마음에 드는 컷 한 두장 고르고 지울거예요." 했다. "어, 말 되네, 근데 목장 끝나고 찍으면 안되겠니?" 

무조건 찍고 보는 습관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상이다. 


 

남편이 나를 기다리기 위해 계속 멈춰 섰다. "당신은 먼저 가라," "아니다 같이 나왔는데 같이 들어 가야지."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검은 콩을 사다가 씻어서 두유제조기에 안쳤다. 요즘 단백질에 꽂혀 있는 남편이 좋아했다. 남편의 기분이 좋으니까 나도 기분이 좋았다.



함께 외식을 하고 싱거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상대의 행색과 마음을 살피며 마음이 평온한 날, 이런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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