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기도원을 가고 난 후 곧이어 아들도 군입대를 했고 딸은 대학 입시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제야 우리집에 정신 없이 휘몰아쳤던 광풍같은 고난에 대해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게 왜 이런 일들이 있어야만 했나? 내가 해결해야 할 나의 쓴 뿌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물으며 내 안에 감추어졌던 나를 들춰보기 시작했지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낡은 12색 크레파스를 책상 위에 올려 놓기를 부끄러워 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몇몇 친구들이 갖고 있던 36색 24색의 새 왕자파스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새 왕자 파스로 그림을 그린다면 훨씬 더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낡고 부러지고 다른 색이 묻어서 지저분한 12색 티티파스만이 서로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요즘 같은 장마철에 제대로 된 우산이 없어서 마음 졸이던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우산이 없어서 우산 살이 부러진 파란 비닐 우산을 쓰고 가거나 그마저 없을 때는 씻어서 말린 비료 부대의 한쪽 면을 잘라서 머리에 쓰고 갔습니다. 짚이 비료 부대로 변신한 70년대판 도롱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적인 수치감에다 툭하면 고성이 오가던 부모님의 다툼으로 불안하고 우울했습니다.
이렇다저렇다 하는 자식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에게 존중과 공감, 지지받지 못함으로 생긴 애정결핍 속에서도 힘든 부모님을 보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과 공부를 알아서 척척 해냈습니다.
일주일을 불안하고 우울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살아 보기로 했습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감정이었기에 솔직한 표현을 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때 무슨 말을 했을까?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 낡은 티티파스도, 살이 부러진 파란 비닐 우산도 싫다, 나는 커서 꼭 부자가 될거야." 하지만 저는 그때 그런 말뿐 아니라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힘들게 사는 부모님을 미워할 수 없었고 탓하지 않았지만 상처로 인한 우울과 불안과 애정결핍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두운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꼬리를 감추고 자기가 가진 힘을 행사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남편의 외도로 들이닥친 역경이 기승을 떨칠 때, 어두운 감정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기 세상을 만났습니다. 가장 먼저 존재감을 과시한 것은 미움과 분노였지요. 남편에 대해 실망을 하며 분노하기 시작하자 숨어 있던 감정들이 달라 붙었습니다. 전가된 감정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진 미움과 분노는 남편을 향해 소용돌이 쳤습니다. 유약한 남편은 얼떨결에 분노의 폭탄을 맞은 셈이 되었던 것이지요.
남편에게 나는 어떤 아내 일까? 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았습니다.
저는 화목한 가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의 원가정은 화목과 거리가 먼 역기능가정에 가까웠습니다. 친구들이 가끔 자기네 식구끼리 가족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면, '항상 같이 사는 식구끼리 왜 여행을 갈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지요. 가정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살뜰하게 대해주는 애정 어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본대 없이 자랐고 남편은 본대 없는 아내와 결혼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내 안에 나를 붙잡고 있는 강한 세력을 보라고 조금 더 강한 세력인 남편을 만나 이런저런 사건을 겪게 한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이런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모습이었으니까요. 광풍 같은 사건을 만나 상처와 어두운 감정이 드러나고 내 안의 쓴뿌리가 하나하나 해석되어 짓눌려 있던 것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니다. 비로소 제 안에서 견고하던 옳고 그름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도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점심으로 찐감자 4개와 찐고구마 한 개, 오이 한 개를 가져왔습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높을수록 혈관 문제를 일으키는 콜레스테롤, LDL, 중성지방 3종세트의 수치가 모두 높고 체중도 2~3킬로 줄이는 게 좋겠다는 소견이 나와서 다이어트를 해 볼 요량에 준비한 것입니다.
고구마와 감자는 다이어트를 위한 식품이기도하지만 사실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지요.
어렸을 때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밥 대신 자주 먹었습니다. 그런데 끼니를 때우려고 감자를 먹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감자보다 밥이 더 맛 있었지만 감자도 맛 있었지요. 감자를 먹으며 '나는 밥이 좋은데 왜 감자로 끼니를 때워야 하나? 나는 커서 끼니는 꼭 밥으로 먹을거야,'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내 환경을 바꿔야 한다거나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말하자면 헝그리했지만 헝그리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남편이 집을 나가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자 헝그리한 삶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없던 헝그리 정신, 헝그리 복서라는 말도 흘러간 옛말이 되었나 할 정도로 귀해진 헝그리 정신이 고난 중에 살아나 빛을 발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딸이 대입시험에서 면접을 보고 난 후 전해 준 이야기입니다.
면접 시험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주로 자소서를 바탕으로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면접관은 딸이 쓴 자소서를 보면서 너가 말한 진실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딸의 대답입니니다. "진실은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겉으로 보기에 공부도 잘하고 실기도 잘하고 또 활달하지만 저의 진실은 돈도 안 벌어오면서 괴롭히는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우울하고 힘든 것입니다. 저의 작품은 저의 진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교수님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그 때부터 면접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 다음 질문은 “학생은 아버지에 대해 적잖이 언급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보라”였습니다. 딸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아버지는 처음에 저에게 원망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돈도 벌지 않고 집안에만 계시며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아버지 때문에 저는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저의 헝그리 정신도 그런 아버지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가난한 부모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남자 교수님들이 정말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도 놀라서 어떻게 이런 답을 했냐고 하니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깨달은 대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딸의 간증문에 있었던 내용도 맥락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간증문의 일부입니다.
(중략)고3이 되어 입시를 치르며 재앙 같았던 고난들이 제게 얼마나 유익이었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실함과 솔직함이 능력이라는 말씀을 들었기에 저의 환경을 솔직하게 쓰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쓸까 걱정했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넘쳤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가난하고 힘든 환경이 최고의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비로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낙심하지 말고 척량하면 하나님께서 약재료가 되는 잎사귀를 주시고 그것으로 인해 옆에 있는 사람을 살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수 바다로 만들어 주시고 죽음의 바다를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척량이라는 말이 낯설지만 언젠가는 소금 땅을 살리는 생명수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이제 졸업하게 될 텐데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다가올 청년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힘든 청소년 시절에 부족함이 없도록 공급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저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