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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소금 Jul 25. 2024

평범한 하루

10화에 걸쳐 '상처가 별이 되기를' 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당한 고난의 시작과  꼼짝 없이 겪어내야 했던 고통의 사건과 회복과정을 썼습니다. 가끔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할 때도 있고 다시 겪어라 하면 절래절래 사양하겠지만 그럼에도 고난을 통해 얻은 유익이 적지 않다는 것만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닷가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뭍이 드러나면 온갖 오물들이 보입니다. 저의 삶에서도 나를 덮고 있던 것, 나를 안온하게 하던 가정이 남편의 외도로 쓸려나갔을 때 저의 민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났을 때 비로소 오랫동안 묻고 있던 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지요. 성장과정에서 억압된 감정과 결핍은 사라지지 않고 내 삶의 영역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호탄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그 시대와 문화의 피해자인 것도 이해했지만 텅빈 아버지의 자리에서 올라오는 분노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남편에게 덧씌웠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한 행동보다 더한 미움을 받아야 했지요. 남편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이런 저런 노력을 해 보는 대신 일찌감치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했던 대로 남편에게 한 것입니다.



저의 결핍과 억눌린 욕구는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을 통해서 보상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기질이나 취향을 고려하고 그들의 감정이나 의견을 먼저 묻기보다 저의 생각대로 밀어 붙였습니다. 한마디로 경청 할 줄을 몰랐습니다.



'너희에게 좋은 것만 주려고 노력하는데 왜?' 아이들에게 좋은 것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주려고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큰 아이에게 특히 미안합니다. 소심하고 예민한 아들인데 그저 말 잘 듣는 아들이라고 착각하며 다그쳤습니다. 가장 크게  후회되는 것은 시행착오를 할 권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아들이 직접 해야할 사소한 것들까지 제가 나서서 했습니다. 과잉보호의 극치였지요. 마음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하고 실수하고 좌절하면서 스스로 터득할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지켜보면서 격려하고 기다려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할 때 스티로폼 상자를 나르면서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했는데?"

"엄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스티로폼에서 나는 소리 진짜 싫어했잖아. 그걸 엄마한테 말했는데 그 때 엄마가 뭐라 했는지 알아? 내가 공부 안하면 스티로폼 만지는 일 할거라고 했어."


스티로폼 만지는 일에 대한 차별은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뭐든 공부와 결부시켜서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예사로 한 것이지요.


'엄마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의 생각이 아이에게 내면화 되는 것을 일컫는데, 엄마의 생각이 내면화된 자녀는 자기 생각이 없어지고 엄마의 기준이 자신의 기준이 되지요. 이런 자녀는 엄마의 기대치가 자신의 기대치가 되어 현실이 따라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무기력해 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쓸데 없이 높아서 보는 제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주입한 생각인 것도 모르면서요.


아들과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면 되었을 것을, 공부가 아무리 중하다고 한들 아들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도 마, 내가 겪은 것을 쓰려면 책 한권으로는 모자란다고?' 라고들 말하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당한 고난이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가지고 뭔 엄살이냐, 라는 말을  듣지 않만큼은 되지 싶습니다. 한동안 외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숨쉬기 운동이나 잘하면서 오늘 하루 살자 한 적도 많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제가 정신승리로 제 자리에서 꿋꿋이 잘 견딘 것처럼 보일 수가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믿는 하나님께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물으며 따지기도 했지요.

제 힘으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 소그룹 모임에 가서 저의 고통을 나누며 남편을 열심히 고발했습니다. 소그룹지체들은 늘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 주고 한마음으로 아파하며 위로와 격려와 해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저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일을 하느라 바빠서 우울할 틈이 없었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말씀에 비춰 내 자신을 직면하고 내 주제(자기비하 아니고 자기 발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당한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게 되면서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아도 더 이상 지옥을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겸손이 뭔지도 배웠습니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인데 제 자신의 보잘것 없는 모습을 직면하지 않았다면 제 잘난 줄 알고 나대는 재수 없는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제 안의 슬픔을 들여다 보고 슬픈 제 자신을 다독이자 기쁨도 덩달아 회복되었지요. 이전에는 생각도 하기 싫었던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왔습니다. 예컨데 가난 수치 불안 우울 열등감 같은 것들입니다. 저의 내면에 숨어 있던 감정들을 인정하고 나니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생겼습니다. 지질한 모습이라 여겼던 것들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들이 되어 주었지요.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서 벗어났습니다. 나쁜 환경 좋은 환경이 따로 없다것도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나를 포함하여 누구든 살기 위한 본능으로 이기적일 수있겠구나, 힘들어서 그랬겠구나 하는 것도 인정이 되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열매는 이타적인 가치관입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의 건강과 평안이 최고의 관심사였는데 고난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타적인 가치관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떴다고 해서 내 삶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내게 맡겨진 역할 잘하며 평범한 하루 잘 살아야 하겠다 하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이타적인 삶의 출발이라는 것을 등산 길에서 나무들에게 배웠습니다.

나무와 풀과 새들은 사람들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늘을 만들고 산소를 뿜어 내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 자리에서 나무로서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힘을 얻게 되는 것이었어요.



고난과 고통으로 여러 문이 닫혔을 때 생각지 않은 문들이 열렸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아무런 고난이 없었다면 여행하고 쇼핑하고 사람들 만나서 노느라고 글을 쓸 생각 같은 건 못했을 것 같거든요. 인생이 힘들어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고난이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경우엔 그렇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는 많은 지식보다 작은 용기가, 큰 용기보다 적은 인정이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사랑이 더 도움이 된다는 확신 외에는 독자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 서문 중에서 -



"사연이 있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서 유년시절 행복하게 보내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성공했어."

"끝이에요?"

"그렇지, 그게 아리고 먹먹해 그게, 여기 애들 사연 한 번 늘어 놔 볼까? 내 사연이 이것 뿐인게 얼마나 아리고 먹먹한건 줄 알아?"

 -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 주인공 남녀가 보육원 아이들을 보며 나누는 대화 -



침묵하고 있다가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입을 열어요, 나도 그랬다며 내 아픔과 고난을 나눠줍니다.

내 상처와 연약함, 심지어 내 수치와 죄가 생명의 샘이 되어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 김양재 목사님 -


이상 에필로그였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거듭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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