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고 하며 집을 나갔다. 남편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성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폐허가 되어 터만 남은 곳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집을 나간 남편은 수시로 전화를 해서 이혼을 요구하며 여자와 함께 집에 찾아오겠다고 통보를 했다.
우리 집에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오지마라 한다고 안 올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온다고 통보한 날에는 시간 맞추어 내가 집을 비웠다. 제 정신으로 만날 자신이 없었다.
내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마그마처럼 들끓었다. 남편을 만난다면 화산처럼 폭발할 터였다. 차라리 분노가 가시적인 화산 폭발이 되어 두 사람을 흔적도 없이 녹여버린다면 만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은 화산처럼 이지 화산 자체는 아니었다.
제대로 한 방 날려서 초토화시키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남편에게 화산 폭발에 맞먹는 힘을 가진 표현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나의 화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남편이 한 짓에 걸맞은 적절한 욕이 없었다.
예고도 없이 집에 와서 자는 날도 있었다. 그 때는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내리치고 싶었다. 눈 앞에 안 보일 때보다 훨씬 더한 분노로 떨었지만 여기선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아들의 야구방망이를 가져와서 남편의 구두를 마구마구 내려 쳤다. 빳빳한 구두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내리 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기분을 맛보았다.
외도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집안에 등불 하나가 꺼져 버렸다. 꺼져 버린 등불을 붙잡고 울어본들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날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천 갈래만 갈래 찢어진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붙들고 일어나야 했다.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꺼져 버린 등불에 불을 붙여야 했다. 물러서면 안 되었다. 아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맞닥뜨린 이 낯선 광야에서 길을 찾아 보기로 했다. 엄마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