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미덕을 찾아서

by 분홍소금

남편 때문에 인생이 지루할 틈이 없다. 좀 더 진실을 말한다면 쉴 틈이 없다. 몸 말고 마음이 그렇다.

직장에 있거나 바깥에서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면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있을 남편이 하염없이 안쓰럽다. 집에 가서 잘해줘야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둬야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트에 가서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장을 본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서 남편을 보는 순간 밖에서 불쌍하게만 보였던 마음은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컴퓨터 모니터에선 매일 보는 똑같은 유투브가 지겹게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그렁거 보고 있어요? 저거다 가짜 뉴스잖아요, 조회수 올리려고 점점 자극적으로 쌩쇼를 하는 것 안보이나? 씽크대가 저게 뭐꼬? 인간아, 너가 쳐 먹은 거는 너가 치워야지.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들을 거요? 컴퓨터 앞에도 컵 하나 놓을 틈도 없구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고, 불쌍하다 했던 마음이 저렇게 돌변했다는 말이다.



넷플릭스에서 하는 '결혼이야기' 라는 영화를 봤다. 첫 장면 내래이션에서 아내가 얘기하는 남편의 미덕이 잔잔하게 소개되었다. 아무리 이혼을 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미덕이 없을 수는 없나 보다 했다.



이혼을 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엄청나게 불쌍했다가 그보다 몇 배는 미워서 죽겠는 남편이라도 미덕은 있을 것이다. 100퍼센트 나쁜 인간도 100퍼센트 선한 인간도 없을 테니!




일전에 친한 지인이 자기는 가족 외식이 싫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 이유가 외식을 할 때 꼭 남편이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고 해서 라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맞추어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꼴을 못 봤다고 했다.

"그래서 뭐 묵노?"

"맨날 한식만 먹어요."

"그게 단점이가?"

"네 유일한 단점이에요"

"뭐꼬?"(염장 질림)




우리 가족도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종종 외식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었다. 한번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집하지 않았는데 미덕이라면 미덕이겠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광릉 수목원에 자주 갔다. 벌써 오래 전부터 광릉 수목원은 예약을 미리 해야 갈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예약 없이 가고 싶은 날에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자연 학습 겸, 운동 겸, 소풍 겸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참 자주 갔었다. 우리 가족 끼리만 간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들이나 딸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은 군말 없이 데려다 주었다.



또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대학로나 예술의 전당, 이태원 등으로 공연이나 미술관 관람을 자주 갔었는데 그 때에도 기꺼이 픽업을 해 주었다. 대부분은 같이 들어가지 않고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가 태워 주었다. 남편의 운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문화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끔 집을 나선다 해도 이고 지고 갈아타면서 오가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의 두 번째 미덕 덕분에 삶의 질이 조금 상승했다고 믿는다.



세 번째 미덕은 약간 애매하지만 비교 우위는 확실하기에 소개해 본다.

내 친구의 남편은 사람을 좋아해서 인간관계에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한다고 한다. 그 남편의 허세 질과 실속 없음에 내 친구는 썩을 속이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걸로 속을 썩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인간관계가 워낙 희소해서 칩거 수준으로 밖으로 나가지를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유지하고 관리할 인간관계가 없다. 이래서 밖으로 돌지 않는 것이 이건 미덕인가, 악덕인가? 그것이 알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 아이가 대학교 면접을 볼 때였다. 교수가 아이에게 자신의 장점을 물어봤다고 했다.

아이는 서슴없이 장점이 '헝그리 정신'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의 헝그리 정신의 근거는 가난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부자였다면 저의 헝가리 정신은 발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한 아버지 덕택에 헝거리 정신으로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 최고입니다."

그러자 교수님들의 표정이 급 밝아졌고 특히, 남자 교수님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역발상으로 헝그리 정신의 근거가 된 남편의 아리송한 미덕이라고나 할까?



아이가 중학교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와서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엄마 00이 아빠는 돈도 잘 버는데 나이스하기 까지 해. 인자하고 친절했어."

"에엥, 뭐 하는 사람인데?"

"강남에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 엄마도 들으면 알 거야."

"흠, 그 아버지에 비하면 니 아버지는 진짜 안습(그때 유행하던 말)이다. 니 친구 진짜 부럽겠다.

아무리 나이스하면 무슨 소용이겠니? 그래봤자 그 아버지가 니 아버지가 아닌 걸.

나이스한 00이 아버지와 이상한 니 아버지, 둘 중 누가 너를 더 사랑할까? 돈도 못 벌고 지질해서 나이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의 친 아빠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남편, 우리 아이들의 친 아버지라는 견고한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건 미덕을 넘어서는, 나누어도 나누어지지 않는 관계,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떨쳐 버려지지 않은 인연,바로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원래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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