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혼하지 않았더니

결혼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

by 분홍소금
(일러스트 by 솜)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켜지면서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편이 낮에 집에 있는 동안 볼륨을 높게 해 놓고 유투브를 봐서 그렇다.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싱크대에서 야채를 씻는다고 왔다갔다 한다. 나부터 하면 안되냐고 하니까 3분이면 된다고 한다. 내가 부엌에 있으면 잘 나오지도 않는데 엊저녁을 일찍 먹더니 배가 고픈지 일찍부터 설친다. 감자를 깎다 말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야채를 다 씻고 나더니 이번에는 또 청경채를 데쳐야 한다고 렌지에 물을 올린다. 나는 식사준비를 포기하고 출근 준비를 먼저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올해 4월에 남편과 결혼한 지 35년이 되었다. 우와! 뭐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한 다윗의 말이 실감난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35년을 이혼하지 않고 산 셈이다. 남편의 행동이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하며 소리나지 않는 총이 있다면 쏘아 죽이고 싶은 날도 있었고, 내 팔자는 왜 이런가 신세한탄을 한 적도 많았다. 지금도 가끔 나는 왜 이혼하지 않은거지?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론은 잘 살았다, 이다. 나는 조선시대 감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순종적인 아내는 더더욱 아니올씨다, 이다. 그럼에도 여지껏 남편과 아들과 딸과 네 식구가 옹기종기 잘 살고 있다.


친정엄마가 아버지에게 살갑게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미덕이 있어서 언젠가는 옛말하는 날이 오겠지 하지도 않았다. 그저 견딜만해서 견뎠고 그 덕에 오늘까지 그럭저럭 잘 살았다.


다만 때마다 모습을 바꿔가며 다가오는 고난을 겪으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고 내가 봐야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젖히자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마음의 눈을 뜨니 절망적인 순간에도 한줄기 빛을 볼 수 있었다. 다 잘려나간 나무같은데 거기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었다. 한쪽 문이 닫혔을 때는 다른 한쪽의 문이 열려서 숨통이 트였다. 죽을 일만 쌓이는것 같았는데 다 그런건 아니었다.


결혼 생활 35년에다 그전의 세월을 더하면 내 삶도 빅데이터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덮어놓고 부러 얼굴을 돌리며 회피하고 살았던, 잠 못 들었던 날들을 마주하고자 한다. 이제 쓴물 짠물은 그만 들이키고 싶다고 온몸으로 낙심하고 계신 한 분을 위해서, 다 그런건 아니더라고, 고난이 줄기차게 있었지만 달콤하고 상큼한 날도 많았다고, 그래도 결혼은 지킬만한 가치가 100퍼 1000퍼 있었다고. 이야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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