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도 징한 여정

by 분홍소금


은행 빚이 연체 되자 은행은 직접 빚 독촉을 하는 대신 채무 이행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넘겼다. 의뢰를 받은 곳에서 가하는 새로운 압박은 은행에서 우편물과 전화로 독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상이 험상궂게 생긴 직원이 집으로 찾아와서는 기간을 정하고 각서를 쓰라고 했다. 전화를 할 때도 반 협박조로 몰아 부치며 다그쳤다. 무서웠다. 이러다가 무슨 일 나겠다 싶었다.




시어머니께 사정을 아뢨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집을 구할 돈이 없으니,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큰 아이가 4학년, 작은 아이가 1학년이었다. 당시에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안 가는 데가 없었다. 주로 공원에서 놀았지만 몇 코스나 떨어진 도서관까지 갔다 와서는 온 몸으로 기분 좋은 향취를 뿜어내곤 했다.



딸은 학교에 가는 것을 아주 신나 했다. 딸이 입학하기 바로 전 해에 남편이 집을 나간 터라 변변치 않은 입학 준비로 라떼 처럼 제 이름이나 쓸 줄 아는 정도였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읽기와 쓰기를 빠르게 습득했다.



입학생들의 첫 배움의 양상은 이렇다 저렇다로 예단할 수 없다. 미리 이것저것 배우고 들어가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익숙해서 집중을 더 잘 할 수도 있고, 이미 아는 것을 배우는 것에 싫증을 내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행 없는 첫 배움을 재미있어 할 수도 있고, 처음 보는 것이 낯설어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딸은 요즘엔 좀 드문 케이스로 처음 배우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글씨도 손아귀에 힘이 들어 갈 때 쓰기 시작해서 그런지 힘 들이지 않고 금방 적응했다. 전학을 하기 위해 선생님을 만났을 때, 딸의 글씨가 그 반에서 가장 반듯하고 예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부산 할머니 댁에 가서 살거라고, 전학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너무 슬프다고 했다. 자기들이 싫다고 해봤자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눈치챈 아이들은 완강히 거부하는 대신 눈물을 글썽이며 꼭 그래야 되냐고 물었다.



사실 아이들보다 더 가기 싫은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였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 현실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가장 나쁜 선택이라면 어떡하나?' 수많은 밤을 뒤척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가야 할 이유가 더 선명해졌다. '빚은 갚아야 한다. 빚을 갚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우리는 폭망했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생활비가 없다. 이혼을 해봤자 경제적으로는 변하는 것이 없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시어머니 말고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먼저 나를 설득해야 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시댁에 가 있으면 남편도 자기 엄마 집이니까 들어오는 것이 쉬울 테지. 아이들이 사춘기가 아닌 게 어딘가. 사춘기였다면 어찌 감당할 뻔 했나.'



사실은 먹고 사는 1차원 적인 문제보다 더 강력한 설득은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앞에 두고는 강아지가 범 앞에서 깨갱하며 납작 엎드리는 것처럼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라도 한순간에 허접쓰레기처럼 무의미하게 보였다.



서러워도 그 집 귀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앞서 간 수많은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길을 나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을 집안에 눌러 앉혔던 지극히 고전적인 이유로다가 나도 짐을 쌌다.


버리고 또 버리고 몇 날 며칠을 버린 끝에 마침내 간소해진 짐을 꾸린 후, 결혼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외롭고도 징한 여정에 첫발을 디뎠다.



이토록 놀랍고도 거룩한 여정의 시작은 역설적이게도 보잘것 없는 겸손한 환경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갈 데 없는 환경 덕분에 이후에도 삶에서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었다.




사납고 더럽다고 모두 피하는내 가족을 주님처럼 소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되십시오. 평생 온 가족을 괴롭히는 것만 같은 그 한 사람이 집안의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크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김양재 목사님 어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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