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ktx에 몸을 실었다. 시무룩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떠나는 아쉬움과 도저히 털어지지 않는 온갖 신파적인 설움과 불안을 애써 감추며 태연한 척 했다. 딸은 기차를 타자마자 금방 잠들었지만 예민한 아들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시장에 가고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댁에 도착하자 명절이나 생신, 휴가 때 시댁을 방문했을 때처럼 며느리의 군기가 자동반사적으로 장착되었다. 침울한 얼굴로 늘어져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훈련병처럼 날렵해진 몸으로 재빠르게 집안을 정돈하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어머니와 함께 먹을 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 때, 시장 일을 마치고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를 보자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게
"와 우노? 누가 죽었나? 살아있으모 그걸로 됐다. 쉬어라." 하셨다.
어머니의 한마디로 불안과 연민으로 파도처럼 출렁이던 마음을 일순간에 잔잔해셨다. 어어니의 힘센 말씀 망치가 부정적인 감정의 두더지들을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부산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시고를 하고 ,아이들을 전학 시키고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에 등록을 했다. 어머니는 여전한 방식으로 새벽 3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하셨고, 나도 뒤따라 일어나 밥해서 두 아이 먹이고 등교시킨 뒤, 어머니가 드실 아침도시락을 싸서 시장에 갔다.
*능력자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30대에 혼자 되셨다. 시아버지는 포크레인 기사였는데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그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청천 벽력같은 시아버지의 비보를 듣고 혼절하신 뒤 열흘 동안 물 한 모금 못 넘기셨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야지 우야겠노?" 이웃 아주머니들의 보살핌과 위로로 겨우 정신을 차렸으나 그 때까지 집안에서 살림만 하셨던 어머니로선 앞날이 막막했다. 생계를 위해 이웃의 주선으로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당근 씻는 일을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처음으로 한 일이 당근세척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농산물시장에서 비록 당근세척 일을 시작했으나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곧 시장에서 자판을 벌여 야채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사 수완이 좋았고 실력을 인정받게 되자 청과 조합에 가서 중도매인 신청을 했다.
어머니가 중도매인 신청을 하기 전에는 시장 안에 여자 중도매인은 한사람도 없었다. 거기에도 금녀의 벽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중매인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허가가 곤란하다는 조합 측에 어머니는 여자라고 왜 중매인을 못하게 하냐, 개명 천지에 이런 차별이 말이 되냐고 당당하게 맞섰다. 중매인 허가를 내 줄 때까지.
결국 어머니는 농산물시장에서 여자 중매인 1호가 되었다. 혼자 힘으로. 어머니는 한마디로 능력자셨다. 그리고 이런 저런 험한 일을 겪으며 웬만한 일은 눈도 끔쩍 안하셨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천만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한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시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주인공 덕수가 가족을 위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듯이 시어머니도 가족을 위해 청과시장에서 반평생을 일하셨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나도 어머니의 시장에 숟가락을 얹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거야
덕수의 대사가 내 삶을 통해서도 보여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