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등장-네이버 이미지 검색)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는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선물 상자를 대량으로 사는 손님들을 위해 가게 안에 경매 받은 과일 박스를 산처럼 쌓았고 그렇게 쌓아 놓은 물건들은 낮 동안에 대부분 팔려나갔다. 나는 쉴 새 없이 과일 박스를 손님들의 차량까지 날라 주어야 했다. 대목에는 옆집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바쁜 터라 카트를 내 것 남의 것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서로 가져다가 쓰는 바람에 카트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카트에 짐을 실을 수 없게 되면 숫제 양손에 하나씩 들고 뛰어야 했다.
오렌지 박스는 하나에 20킬로그램, 사과 박스는 하나에 15킬로그램이었다. 20킬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뛰다시피 가서 손님의 트렁크에 실어주어야 배달이 끝났다. 어떤 날은 트렁크 문이 자동으로 닫혀서 어깨와 목 사이를 찍어 누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극한 직업이 따로 없었다.
한번은 옆 가게에 카트를 찾으러 갔더니 사장님이
-힘들어도 돈 많이 번께 얼매나 좋노?
-돈을 얼마나 버는 지 저는 모립니더.
-아이구 이 새댁이 아직 돈 맛을 모리는 갑네. 했다.
시장에 남편이 나타났다. 4개월 여 만이었다. 집을 나가서 떠돌던 남편이 우리의 이사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가게로 온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돌아옴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장에 일을 하러 온 것이지 가정으로 돌아온 것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어디론가 퇴근을 했다. 어디론가 의 어디는 너무나 뻔했다.
남편이 시장에 합류하면서 큰 거래처가 연결되어 사업의 규모가 커졌다. 남편은 편하게 돈을 벌려면 가게의 판매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어머니의 일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취급하는 과일을 최고급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했다. 경매할 때 질 좋은 과일을 구매해서 최상품 과일을 취급해야 여러모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겼다. 어머니는 남편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셨다.
-니가 뭔데 내 장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노, 나는 늘 하던 대로 싸고 맛있는 과일 사서 단골손님 줄거다 어쩔래?
남편은 남편 대로 맨날 그러니까 평생 고생이라 하면서 언제까지 고생만 하실 거냐, 도움 되는 말을 하면 좀 들어 보시라 했다. 어머니는 나는 이게 젤로 편하다, 내 한테 간섭할 생각 말고 너나 잘하라고 딱 잘랐다.
어머니의 확고한 태도에도 남편은 쉽사리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은 엄마는 평생 내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고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이미 밖으로 나가버리셨는데도 한번 폭발한 분노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남편의 자아는 병적인 급 발진에 휩싸여 진정한 악당의 비행으로 발전했다.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애써 진열해 놓은 과일들을 사정 없이 둘러 엎어버렸다. 과일들이 쏟아지고 굴러가고 더러워지고 멍들고 으깨졌다.
한바탕 푸닥거리가 끝나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 듯 죄 없는 과일과 나만 죽도록 고생을 했다. 상품을 진열하는것도 만만찮게 힘든 일인데 망쳐 놓은 가게를 수습하는것은 그보다 훨씬 힘들었다. 못 쓰게 된 과일을 모아서 갖다 버리고 더러워진 과일을 닦아서 박스에 담았다. 박스로 도로 넣지 못하게 된 대부분의 과일은 소쿠리에 소분해서 담았다.(일명 소쿠리치기). 이미 상품 가치가 떨어진 과일은 제 값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한 소쿠리 무조건 1000원 2000원 떨이 가격으로 없앨 수 밖에 없었다.
기가 막혔지만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다. 어머니 앞에서 남편에게 대놓고 소리를 지를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 남편 두 진영 모두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의 날 선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다. 용광로가 따로 없었다.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러다가 별안간 꼬꾸라져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들었다. 시장도 과일 가게도 넌더리가 났다. 내가 살아야 자식도 돌볼 수 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그러려면 빨리 시장을 벗어나야 한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