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7월 4일에 했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로 익히 알려진 날인데,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날 이사로 우리의 독립도 확증 받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작고 오래된 집이었지만(우리는 이 집을 카타콤이라 불렀다.) 어떤 대궐도 부럽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시어머니 고래와 남편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의 처지를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 했던가? 역시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마음 편한 게 최고다.
내가 바라 마지 않던 교회에 등록을 하고 입시 학원에 가서 상담도 받았다. 학원에서는 입시 미술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입시 반에 넣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할 수없이 일반 반에 등록을 했다.
독서 논술 업체에서 교육을 받고 방문 교사를 시작했다. 어떤 육체적 힘듦이나 정신적 고통도 부산에서 고생한 것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기적 같은 일이었고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7월의 한여름 날씨라 찌는 듯이 더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찬란한 영광을 내뿜고 있는 눈부신 태양이 아름답기만 했다.
어둠은 지나가고 빛의 시대가 열렸다. 이젠 해방이다. 평화가 깃들었고 자유도 찾아왔다. 우리 집 어귀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쓴 플래카드라도 떡 하니 매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장도 얻었고 마음도 편했다. 남아 있는 문제는 시간이 차차 해결해 줄 것이다.
새로 찾은 일은 적성에 맞았고 회원 수도 늘고 있어서 의욕이 넘쳤다. 뉴노멀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느닷없이 허리가 뻐근해서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몸은 우리 두뇌보다 훨씬 정직한 것 같다. 두뇌는 힘든 상황을 피하고자 요리조리 합리화하고 회피하며 속임수를 부리지만 우리 몸은 모든 혹사 당한 것과 받은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아구가 차면 기어이 티를 내고야 만다. (몸으로 온다고 신체화 라고 함)
수업을 끝내고 그날 따라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오른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 파열로 마비가 왔다고 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빨리 보호자를 불러 수술을 하라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디스크는 수술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당장 택시 타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할 수없이 집으로 와서 남편을 기다리는데 오른쪽 하반신을 꼼짝도 할 수 없는데다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화장실도 갈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다리가 마비가 되었는데도 주말이라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에 출근한 의사 선생님은 남편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환자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리가 썩을 거라고 했다. 부랴부랴 수술을 했지만 마비된 부분의 상당부분이 회복하지 못한 채였다. 평소에 건강하나 만큼은 자부하고 살아 왔는데 디스크 파열로 마비된 다리를 보자, 부루투스 너마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서울에 올라온 지 3개월이 막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힘든 시절이 지나갔으니 자유와 해방과 평화를 마음껏 외쳐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친 몸과 마음을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디스크 수술을 하고 마비된 다리의 회복을 위해 밤낮없이 재활 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깜깜한 터널을 막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또 다른 터널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나는 마음속 플래카드의 글귀를 다시 썼다.
고난, 시즌 2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