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과 공동체 나눔으로 심신이 회복되다

by 분홍소금


(양재천의 가을)

우리가 서울로 올 때 남편도 어머니와의 잦은 다툼과 거래처의 부도로 시장 일을 그만두었다. 다만 우리와 함께 오지 않고 지방에 일자리를 얻었는데 몇 개월이 못되어 실직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다.



나와 비슷한 유형의 부부들을 보면, 대개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이전보다 더 잘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내 경우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나가서도 항상 가족을 생각했다. 얼마나 가족을 생각했으면 내가 돌아왔겠느냐, 내가 조상의 죄 값을 치뤘다. 조상의 죄 때문에 낀 화가 있는데 내가 그 액 땜을 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돌아온 탕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점쟁이나 할 법한 말을 했다. 아니면 너무나 기가 죽어서 미리 철벽 방어를 한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도 있겠거니 하지만 그때는 남편의 상상을 초월하는 궤변에 억장이 무너졌다.



남편의 존재와 디스크 후유증으로 불편한 다리는 끔찍한 일상을 불러왔고 나의 심신은 미움과 증오와 어찌할 수 없는 분노로 뒤덮여 몸살을 앓았다. 게다가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어떤 경제 활동도 할 수 가 없었다.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하려면 재활을 해서 다리를 이전처럼 돌려 놓아야 했다.



그런데 다리를 쳐다보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 마비된 다리가 꼭 통나무 같았다. 왼발 다음에 제때에 오른발이 나가 주어야 걸음을 걸을 수 있을 텐데 통나무처럼 감각도 없고 힘이 주어지지 않으니 육중한 몸뚱이가 맥 없이 푹 쓰러지기 일쑤였다.





양재천


나에게 세금 대비 가성비 갑인 장소를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양재천이라고 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오른쪽 다리의 재활을 위해 무조건 걸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양재천은 걷기 운동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걷기 뿐만 아니라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도 양재천 만한 곳이 없었다.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꿈지럭거리며 속을 뒤집는 남편 때문에 쌓인 울분을 양재천 산책로에서 쏟아내었다. (후에 이 나눔을 들은 한 집사님은 자기도 양재천에서 그렇게 울었다고 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서러워서 서럽게 울었다. 양재천에 눈물을 보탠다고 생각하니 그 와중에도 고려 중기 시인인 정지상의 '송인'에 있던 시구가 생각났다.




(1,2연 생략, 원문의 한자는 한글로 대체함)
대동강수 하시진고
별루년년 첨녹파라

(대동강물 언제 마를꼬?
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에 보태노니)



위의 시를 신파 감성으로 아래와 같이 바꿔보며 헛웃음을 짓곤 했다.



양재천수 하시진고
연루년년 첨오수라

(양재천물 언제 마를꼬
해마다 연민의 눈물 오염된 물에 보태노니)



정지상의 시가 좋아서 억지로 가져다 붙인 넋두리에 불과하지만 양재천을 걸으며 흘린 눈물을 생각하면 양재천이 조금은 맑아졌지 않았나 싶다.(너무 나갔나?)


딱히 신세 한탄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났다. 무능력에 대한 비애, 오도 가도 못하는 막막한 현실에 대한 분노,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하는 빡침과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80퍼 이상이 아니었나 싶다.




매일 오전 두 시간을 걸었고 저녁에도 그 만큼을 걸었으니 일로 삼고 걷기를 한 셈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걷기를 위해 나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걷기가 루틴이 되고 이런저런 시도들도 효과가 있어서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육안으로 보기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회복했다.



몸이 회복하는 것이 기뻤지만 그보다 더한 감사와 기쁨은 따로 있었다. 주일 예배와 매주 금요일 공동체 나눔은 꽉막힌 숨통을 트게 해 주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침을 튀기며 남편을 신나게 고발했다.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았다. 그럴 수가, 말도 안돼, 남의 남편이지만 가서 몽둥이로 실컷 때려 주고 싶어요. 함께 흥분하고 분노했다.



각 양 각 색의 고난을 나눠 주시는 집사님들의 나눔을 들으며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목장 나눔을 통해서 나의 과거와 고정관념들이 전복 되었고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해석되며 내 짐은 점점 가벼워졌다. 나는 나의 고난과 분노를 나누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결론은 "집사님 구원을 위해서 남편이 수고 많이 하셨네요." 였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고 수고는 제가 했는데 왜 남편 보고 했다고 그러세요? 반문했지만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한 덕분에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한 거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가치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용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용기 courage는 심장을 의미하는 라틴어 cor에서 왔는데 원래 의미는 자신에 대해서 솔직히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가치감을 가진 사람들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할 용기가 있었다는 거죠. ...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었는데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보여 준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지각을 버리고 진짜 자아 authentic self가 되어야 했었는데 그것은 연결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브레네 브라운의 TED강연 '취약성의 힘' 중에서~~~


keyword
이전 11화고난, 시즌2가 시작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