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랑 왜 결혼했어?

by 분홍소금


-엄마 아빠랑 왜 결혼했어?



최근에 산책 길에 아들이 물었다. 아빠 때문에 속상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말투에 원망과 불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어'와 같은 질책이 섞여 있었다.


-아빠가 하도 나 좋다고 따라다니니까 저런 사람하고 결혼하면 편하게 살겠지 했지.
-자세히 말해 봐.
-아빠가 나 퇴근할 때 회사 정문 앞에서 매일 기다렸어. 스토커가 따로 없었지. 스토커가 뭐냐, 상대방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꽂혀서 행동하는 사람이잖아. 이기주의의 끝판왕인 건데, 그때는 그런 걸 몰랐어, 나한테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걍 미친 사람이더군. 사람을 보는 눈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지.



-엄마는 인싸야, 핵인싸에 가깝다구, 왜 아빠 같은 사람하고 결혼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겉으로 보기에만 인싸지, 내면이 허약하잖아. 자존감이 하나도 없었어.
-엄마,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존감도 유전인 것 같아.



-맞아. 심리학자들도 인정하더라구. 내가 갖고 있는 우울감이나 낮은 자존감이 외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것도 있어

유전적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받았는데, 환경은 더 안 좋았어. 들어볼래?

-어, 뭐 함 말해봐



-우리 집은 역기능 가정이었어. 우울한 엄마, 부재중 아버지의 전형적이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엄마, 아버지 부부 싸움이 장난 아니었지. 두 분이 어찌나 맹렬하게 싸우던, 엄마가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어. 그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불안했을지 짐작이 가지?



학교 갔다 오면 텅 빈 집 마당에 아버지가 던진 밥상이 나 뒹굴고 있었어. 하교 시간이 되면 교문 앞에 나설 때부터 불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러니까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 반가운 마음에 격하게 '엄마' 하고 불렀지, 그러면 엄마가 "야가 미쳤나 와 이라노?" 했지. 내가 예민해 있는 상태인데 엄마가 저런 식으로 나오니까 불안이 하나도 해결이 안됐어. 과도하게 예민한 상태인데 불안 해제 신호가 없으니까 불안과 우울을 달고 살았지. 그러니까 자존감은 말해 뭐해.

가정에서 성장 단계마다 채워져야 할 사랑, 존중, 공감, 지지, 인정이 있는 법인데 나의 내면은 그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던 거지.




-엄마 개불쌍하다. 아빠 집은 어때?
-개불쌍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집이랑 막상막하라고 봐야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30대) 혼자 4 남매를 키우셨잖아. 아빠도 아버지 없는 장남으로서 그만큼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었겠지. 엄마와 동생들을 자기가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은 진심이었을 거야. 책임감, 부담감에 콱 눌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스럽기 만한 사춘기를 보냈을 거야.(아마도) 거기다가 할머니가 아빠 한테 거는 기대도 무지하게 컸으니까. 아빠의 환경 자체가 자기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였다고 봐.



-두 집 다 불쌍한데, 빡친다. 그래도 엄마 탓은 아니지.
-그러니까 엄마 아빠의 결혼은 불행한 나와 불행한 너가 만나 불행한 우리가 된 셈이지. 결혼하자마자. 고난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어. 잡아 놓은 물고기 밥 안 준다는 말이 있잖아. 날마다 따라다니면서, 헤어지자고 하면 자기는 절에 가서 스님이 될 거라고 하던(그런 말을 하는 데도 안 헤어진 나는 천하에 바보 멍청이)사람이 결혼을 하자마자 돌변했어.
갑자기 100년 쯤 산 부부처럼 행동하더라고. 게다가 결혼 전에는 꾹 누르고 있다가 결혼하고 나서 자기가 대장이 되니까 그때부터 사춘기의 지랄 총량을 막무가내로 쏟아내기 시작했어. 외도도 그 연장선 상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엄마, 근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엄마 똑똑하다.

-아빠가 하도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하니까 인간이 왜 저 따위로 생겨 먹었나, 너는 누구이고 너랑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자꾸 연구하게 됐지.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옳고 그름이 없어지고 근원을 따지면서 해석이 되었어. 해석이 되니까 숨통이 트이더라. 따지고 보면 엄마를 이 만큼 성장 시킨 일등 공신은 바로 아빠인 셈이지.



-반전 아줌마 별명이 걍 생긴 건 아니네.

-나보고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뒤집어 버린다 카데.

-나는 아빠 닮아서 아빠를 이해하면서도 싫다.
-홈아, 사람이건 사건이건 근원을 알고 해석이 돼야 유전자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 연사 외치고 싶어.


-그래도 싫다.
-니도 고생 많았어. 미안하고 고마워. 너랑, 솜이랑 공동체 덕분에 오늘 이렇게 서 있어. 진짜다.



-맞나?

그래도 내가 니 아빠랑 결혼했으니까 니가 태어났다 아이가? 그리고 힘들게 살았지만 따지고 보면 못한 게 별로 없다. 할 것 다하고 살았다. 엄마는 피해자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수혜자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 또 '고난이 축복이다' 그 말 할라고 했지?
-그런가?
-기성전 '고난이 축복이다' 잖아.

-아들아,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해 줘서 고마워, 고맙다.




악을 행하는 자의 기쁨보다 악한 일을 당한 자의 슬픔이 낫다

-성 어그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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