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by 솜부산으로 가기로 한 나의 선택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을 가져왔다. 부산, 시댁살이, 도매 시장, 과일 가게, 과일장사 이런 단어가 내 삶을 장악했고 나는 아이들과 굶지 않고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시대로 돌아갔다.
청과 시장은 4시에 경매를 시작하면 대략 5시 전에 끝이 난다. 그 시점에 도매 장사를 시작한 어머니는소매 상인들과 거래처에 물건을 대 주었다. 과일이 주를 이뤘고 야채는 주문이 있을 때만 경매를 받았기에 부수적으로 취급했다.
어머니의 아침 도시락을 시장으로 가져갈 때는 도매 장사가 끝날 즈음이었다. 도매장사를 막 끝낸 어머니는 비로소 한 숨을 돌리시고 식사를 시작 하셨다. 그동안에 과일가게는 내 차지가 되었다.
도매 손님들이 얼추 가고 나면 소매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우두커니 서서 손님들이 물어보는 과일을 어머니가 일러준 가격을 받고 건네주었다. 그런데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지극히 수동적었던 나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그렇게 탈바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 동안에만 가게를 잠깐 봐 주는 식이었는데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슬그머니 길어지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장사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던 것이다.
시장에서 식사를 마친 어머니가 " 올라가 봐라" 하는 즉시 냉큼 집으로 갔는데 어머니가 점점 뜸을 들이시더니 언젠가 부터 아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고의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깜박 잊어버리고 아무 말도 안 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알아서 시장 일 좀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머니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쪽에서 먼저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버렸다. 연로 하신 어머니가 시장에서 고생하는데 젊은 내가 한가하게(집안일과 가게 일이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함)살림만 하는 것이 못할 짓이어서 가게에서 아예 대놓고 일을 하는 것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열정 페이도 효심도 착한 병도 아닌 단지, 내 맘 하나 편하자고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어머니의 일꾼이 되었다. (부실한 몸땡이가 혹독한 대가를 치룬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할 예정)
장사 초기에는 멋 모르고 오는 손님마다. 그날 들어온 제일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을 권했다.
"참외 들여가세요. 복숭아도요. 단 냄새가 폴폴나요. 어머니가 오늘 경매를 잘 해서 과일이 좋아예. "
나는 손님이 싸고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을 살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말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손님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전혀 엉뚱한 물건을 골라 갔다. 내가 한 말을 단지 물건을 팔아 치우려는 상술로 받아 들인 것이다. (손님 탓은 아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의 솔직한 손님 응대를 어이없어 하셨다.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니는 아침에 경매 받은 걸 사가라카면 우야노? 저 재고 쌓인 거 안보이나? 생물 장사는 재고 처리가 먼저다.
-호오! 손님한테 신상을 권하니까 재고를 사가던데요. 그럼 재고를 팔려면 계속 신상을 권해야 되나요?
-사람 봐가면서 권해야지. 손님을 손바닥에 올리 놓고 주물러야 된다.
-우짜모 그런 경지에 올라갈 수 있습니꺼?
-하다 보모 그리 된다. (사장님 시어머니 싸부님 장사의 신이시여, 저에게는 그런 날은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심더)
어머니는 손님들의 면면에 대해 줄줄줄 다 꿰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언제 다 묵을라꼬 저렇게 많이 사간대요? 내가 팔았지만 걱정된다 아입니꺼.
-응, 저 사람은 식구들을 불러서 갈라준다. 큰딸, 작은딸, 아들, 동생까지 불러서 나눠준다 아이가.
-저 사람은 왜 만날 수박만 많이 사가요?
-저 집은 사시사철 수박을 갈아 묵는다 카데. 수박 주스 마시고 신장에 박힜던 돌도 나왔다카더라.
뿐만아니라 어머니는 맛있는 과일을 사는 데 도가 튼 분이었다.
-어머니 이렇게 맛있는 거를 우찌 알고 샀어예?
-저녁에 집에 가기 전에 적채장에 가서 안보나. 한 바퀴 돌아보고 누가 과일을 갖고 왔는지 미리 봐 뒀다가 그 사람 걸 사지. 과일 농사 잘 짓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 양반이 갖고 오는 걸 사면 틀림없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과일을 손질했다. 재고와 그날 받은 물건을 재배치하고 박스를 들이부어서 썩은 것들을 골라내고 새로운 박스를 만들었다. 박스에 남은 재고는 바구니에 소분 해서 담았다. 시식할 과일을 골라서 미리미리 잘라두고 빠진 물건들을 창고에서 날라다가 채워 놓았다. 창고 정리도 했다. 창고 정리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호출이 있을라치면 얼른 뛰어가서 손님들의 과일 박스를 카트에 싣고 자동차까지 득달같이 배달해 주었다.
점심에는 어머니와 국수를 주문해서 먹었다. 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위에 얹는 고명은 부추 나물과 양념장밖에 없었는데도 세상 맛있었다. 국수 먹는 낙으로 장사가 다 즐거울 지경이었다. 12시 반 만 되면 아주머니가 널찍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국수를 이고 와서 이집 저집으로 날라다 주셨는데 국수 맛 계의 지존이란 칭호를 붙여준다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아주머니 국수 맛의 비법은 국수를 건진 후 최대한 물기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쿠리에 건진 국수를 손으로 짜듯이 꾹꾹 누르고 소쿠리의 뒷면도 물기 없이 탈탈 털어주고 나서 꼬들해진 국수에 육수를 부으면 국수 맛이 예술이 된다고 했다.
과일 장사가 손에 익을수록 내 머리 속은 시장에서 팔아야 할 과일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재고, 재고, 재고를 어떡하지? 시장에 쌓여 있는 딸기 상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엊저녁에 00사장이 왔다 갔을까?
재고를 다 팔지 못한 날에는 김해에 계시는 요양원 원장님을 불렀다. 원장님의 트럭에 남은 과일 박스들을 실어드렸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꼬박꼬박 오셨다. 어머니는 "노인들이 얼마나 심심하겠노?"하시며 요양원 원장님과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재고 뿐 아니라 그날 받은 싱싱한 과일도 종종 챙겨 주시곤 했다.
몇 년 뒤에 어머니가 수술을 하시고 거동이 어려워 졌을 때 당신 몸을 그 요양원에 의탁하셨다. 김해의 요양원으로 어머니와 사장님을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힘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야채를 다듬고 계셨다. 편안하고 해맑은 표정이었다. 마치 마땅히 내가 있을 곳에 잘 있으니 아무 걱정마라 하는 것처럼!
사실, 어머니의 과일 가게에서 먹고사니즘에 매달려 있던 덕분에 남편과의 크고 작은 국지전을 피할 수 있었다. 낮 동안의 고된 노동으로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시체처럼 널부러져 꿀잠을 잤다. 좌절과 배신감, 우울과 불안, 두려움과 염려로 뒤덮인 나의 내면은 '재고,재고, 재고를 어떡하지' 딱 한 가지로 대체되었다.
부산에 내려 갈 적에만 해도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진과 후퇴를 떠나 그곳은 나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가 되었다.
아이들은 시골과 다를 바 없는 부산의 땅끝 오지 동네에서 느릿느릿하고 편안하게 지냈다. 딸은 주로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라떼처럼 소꿉장난을 하고 놀았다. 아이들은 편견과 차별이 없는 인간관계와 놀이의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고 터득했다. 더우기 엄마의 치맛바람에서도 완벽히 보호되었고 치열한 경쟁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내가 그토록 목 말라 했던 전인 교육이 뜻밖에도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과일은 원 없이 먹었냐구요? .
대장간 주인 집에 쓸만한 연장이 없고 생선 가게 주인 집엔 제대로 된 생선이 없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