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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Sep 30. 2020

마지막을 위한 시작

2019년 5월 / 시작은 늘 그렇듯 갑작스런 전화에서부터 출발한다.

초여름이 막 시작되는 오월 초, 프라하는 선선한 기후에 맑고 건조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던 쯤이다.

맑은 햇살이 투명한 유리를 꿰뚫던 오후 보이스톡의 전화벨이 조용한 집안의 공기를 흔들었다.


'오빠? 웬일이지..??'

프라하로 넘어온 이후 오빠가 보이스톡을 한적은 거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쓱 한편에 배어났지만 모른 척 여느 때처럼 혀 짧은 코맹맹이 소리로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다.


"오뽱~웬일이야?"

".. 엄마가 많이 아파... 이젠 너에게 알려야 할 듯해서.. "

"뭐?!! 어디가?"

나는 황급히 전화기를 들고 거실에서 안방으로 숨어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딸아이에게 왠지 바로 들키면 안 될듯한 마음이었다.


"췌장암..."
췌장암이란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은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이모가 췌장암으로 고생하고 돌아가신 걸 알기에 어쩌면 결론을 이미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입을 틀어막아도 울음소린 거침없이 방문을 헤치고 집안에 울렸다.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은 비통한 소식에 울음으로 삼키고 나를 안고 위로했다.
남편과 딸이 있는 프라하로 온 지 다섯 달째. 재택근무로 3월까지 일을 했으니 이제 막 한국의 회사생활을 내려놓고 재미있는 첫여름을 즐겨보자 할 때였다.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울다가 지쳐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하루를 보냈다.
일주일에 몇 번이고 페이스톡으로 얼굴을 보며 전화했는데.. 엄만 진단을 받고 상세 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나에게 얘길 안 해줬다. '멀리 사는 딸이 일찍 들어봐야 걱정만 하지..' 엄마의 생각은 안 봐도 훤했다.
한국과의 시차가 7시간.
아침 일찍부터 전화기를 들고 준비를 해도 한국은 이미 오후 한나절이다.  

'엄마에게 머라고 하지? 엄마를 어떻게 쳐다보지??'
전화기를 손에 잡고도 쉽게 통화버튼에 손이 닿질 않았다.

"엄마... "
전화기에  엄마 얼굴이 보이자마자 나는 역시나 한마디를 못하고 울어버렸다.
"여기선 아무도 안 우는데 네가 왜 울어~엄마 괜찮어.. 지금 하나도 안 아파..

병원 들어갈 땐 조금 아팠었는데, 지금은 괜찮어.."
".. 엄마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너희들 잘 성장했고 각자 좋은 가정 꾸리고 잘 사니까 됐어.. 감사해.."

누가 아픈 사람인 건지..
엄마는 우는 나를 달래기만 하고 정작 나는 엄마를 위한 얘기 한 자락 못했다.

아픈 엄마 옆을 바로 갈 수도 없는 형편에 그 뒤로 오래도록 나는 집안에 숨어 드러누워 울기만을 했다.
(이렇게 나는 나약하기만 하다)

남편이 손을 잡아 이끈다.. 이렇게 누워서 울기만 하면 안 된다고.
밖으로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자고..

그사이 날은 벌써 오월말이 되어가고 있었고 신록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옳다.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아프면 안 된다.
내가 체력을 키워서 엄마를 돌봐줘야지.. '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니 옷을 갈아입고 나설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나선 집 근처 산책길.

숲을 걸으며 슬펐던 마음이 회복이 되었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니 기운이 차오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새소리.. 바람소리..

개울물소리..

숲은 다양한 소리로 나를 감싸며 맑은 자연과 햇살이 나에게 깨어나라고 진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가기 위한 준비는 이렇게 숲을 걸으면서 시작했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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