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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Sep 30. 2020

이곳이 있어 다행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마음껏 뱉을 공간.

이곳이 있어 다행이다.


10월 8일에 다시 만난 엄마를 새해 1월 3일에 잃어버렸다.

아니 고통스러웠던 육신의 감옥에서 편안한 천국으로 배웅을 하였다는 게 맞다.  

엄마와 함께 했던 가을.. 겨울.. 묵은해를 떨쳐 버리며 백일치성을 드리는 심정으로 호스피스의 생활을 이어갔다.

길어져 가던 병원생활 속에서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고 병원 쪽잠 생활도 몸에 배인듯 자연스러워져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프라하에 두고 온 식구들 생각에 머릿속은 정리가 안되고 있던 쯤이다.

새해를 맞기 며칠 전.. 큰 시누가 고모부와 함께 와서 안쓰러운 얼굴로 쳐다보시며 안아주고 밥 사주고 가셨다.

험한 공사장 일을 하셨지만 참 바르고 성품 좋은 고모부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앞에 놓더니 이만큼 했으니 그만 프라하로 돌아가라 하신다. 엄마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엄마의 갈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고 자네도 자네 식구들 챙겨야지 않겠냐며.. 그동안 정성으로 돌봤으니 그만했으면 됐다 하셨다. 한편으로 서운할 만도 한데 그 말씀이 틀리지 않아 커피를 들이키며 고개만 숙였다. 돌아서 나가는데 큰 시누가 흰 봉투를 주머니에 또 찔러준다.  먹을 거라도 잘 챙겨 사 먹으라고.


얼굴이 못쓰게 되었다고..


마음 한편 떨어져서 생활하는 내 식솔 생각에 언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될까 싶은 막막함도 없지 않았다. 

'그래.. 일단 들어갔다가 와야겠다.' 

친정오빠도 아빠도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성화를 대던 참이었는데 오히려 믿음을 가지고 길게 보자 싶기도 했다. 생각을 달리 하니 새해도 끄덕 없이 함께 지내실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친한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1월 11일 자 프라하행 귀국 표를 다시 발권했다. 그리고 귀국 전에 아빠에게도, 엄마 간병에 대해 단단히 일러두고 간병인 아주머니하고 일주일을 인수인계하고 잠깐 들어갔다 와야지 하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었다. 

물론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고 말이다.



어떻게 한 치 앞도 못 보고 이런 헛된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미열이 올라 38도를 왔다 갔다 하던 새벽이 지나고  배는 며칠 전과 동일하게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아침부터 침상에서 엄마 머릴 감기겠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목욕봉사가 일주일에 두 번씩 있어도 한 번씩 씻는 것이 보통 요란한 일이 아니라서 오늘은 개운하게 머릴 감겨드려야겠다 싶었다.  뜨거운 물을 대야에 받아 놓고 방수포를 깔고.. 갈아입을 환자복을 미리 챙겨놓고..

아기 목욕시키듯이 엄마 머리맡을 안아 들고 후닥닥 손이 바쁘다.


커튼 사이로 건너편 간병인 아주머니가 도와줄까냐고 참견하시는데 엄마와 어찌해본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했다. 그리고 새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를 바꾸는 일도 보통 힘에 겨운 게 아니다. 엄마 역시 부푼 배를 가지고 주삿바늘과 콧줄이 주렁주렁한데 오른편으로 왼편으로 돌려 눕기가 쉽지 않은 상황. 축 늘어진 엄마를 붙들고 혼잣말을 해가며 연신 안간힘을 써서 새 환자복까지 입히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개운하게 씻겨드리고 로션 발라 드리는 때가 되면 대견한 일을 혼자 해낸 아이처럼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은 금요일 발마사지 자원봉사팀이 오는 날이었다. 

마침 머리도 감은지라 발 마사지까지 부탁을 드리고 지원봉사자 선생님들과 엄마를 에워싸고 수다를 몇 마디 나눴다. 엄마는 내처 계속 눈을 감고만 계신다.

따뜻한 스팀타월로 발끝까지 깨끗이 닦아 낸 뒤.. 오늘 엄마 머리도 감고 큰일 했다고 연신 큰소리로 치켜세우며 허공에  얘길 했다. 


나는 그때도 몰랐다. 

그날이 마지막일 줄은.


화장실에서 마사지 크림이 뭍은 수건을 빨고 있는데 누가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거의 다 빨았는데.. 누구..?'

담당 간호사가 나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 혈압이 많이 떨어지셔서 그런데.. 가족분들에게 연락을 하시는 게 좋겠어요.."
"네...? 얼마나...?"
"69에 79"

손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혹여나 누워있는 엄마가 들을까 젖은 손으로 간호사 손목을 붙들고 병실 밖으로 끌고 나와서 재차 물어봤다.
"많이 낮은 거예요?"

"아무래도... 지금 상태가...."


알겠다고 얘기하고 오빠에게 전화를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재보겠다고 간호사는 엄마에게 혈압계를 다시 채웠지만.. 수치는 올라가지 않았다.


간호사는 1인실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한다.


한 병실을 쓰는 환자 보호자들과 간병인 아주머니의 눈길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우리가 당첨되었네요.. 이번엔 우리 차례인가 봐요...'

호스피스 병실에서 순서를 예측하는 게 우습지만 엄마보다 먼저 상태가 안 좋으셨던 앞자리 어머니도 아니고.. 병색이 짙은 옆자리 젊은 친구도 아니고 우리 엄마라니...


앞편의 병상을 지키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등을 쓸어 토닥여 주신다.

눈물이 계속 차올랐지만 병실 안에서 소리 내어 울 수도 없기에.. 기이한 소릴 내며 울음이 비어져 나오는 걸 막아보려 했다. 울면서도 '이렇게 1인실로 갔다가 다시 회복되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슬퍼하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에 12층 수간호사 선생님이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들어오신다.

 


"침상 옮길게요. 하나 둘.."


1인실..

호스피스에서 1인실은 가족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이별할 수 있는 공간을 얘기한다.

냉장고와 오디오 시스템, 소파와 침대.

각종 CD가 있고, 붙박이장 안에는 성경책도 구비되어 있었다.


엄마, 엄마..


금요일 오후 오빠가 회사에서 뛰어오고.. 아빠를 불렀다.

엄마는 자꾸 진땀을 흘리신다. 땀에 젖은 윗도리를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등이 축축하게 다 젖었다.

혈압은 더 떨어져...'59'를 찍는다. 이게 사람의 혈압이 맞나 싶다.

콧줄로 계속 엄청난 양을 토해 내신다. 오빠는 뱃속에 나쁜 것들이 이렇게 쭉쭉 빠지면 엄마가 좀 더 편안할 거라고 연신 얘기하며 콧줄이 엉키지 않도록 그 줄에만 집중하고 있다. 

순식간에 1000ml가 채워졌다.


엄마손을 잡고 머릴 쓰다듬으며 엄마 사랑한다고 얘기하며 엄마에게 빛을 따라가라고 거듭 얘기 하지만 엄마는 초점을 잃은 눈빛을 허공에 둘 뿐이다. 앞서 먼저 돌아가셨던 옆 침상 할머니에게 봤던 그 눈빛.

검은 눈자위가 공허하다.


그동안 병실에서 들었던 임종의 징후가 엄마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끝이 차가워지고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아빠는 혈액순환이 안돼 나보다 하며 연신 발끝을 주무르신다. 나는 아빠에게 이게 임종의 징후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사람의 혈압이 떨어져서 혈액공급이 잘 안되기 시작하면 몸에서 먼 곳부터 파랗게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호스피스 병실에서 자던 첫날에 앞 침대 병상을 쓰시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발바닥 색이 검푸르게 변하던걸 보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이 임박한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태연한 듯 굴었지만..

그 발바닥에 깊이 있게 배인 절망적인 색은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이 오시고 임종예배를 드리고 이제는 한적히 우리 셋이 엄마를 에워싸고 있던 때.

엄마의 호흡이 거칠다.


간호사를 뛰어가서 불렀다. 이상한 박자로 호흡이 꺾이고 있었다.

간호사는 들어와서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호흡이 바뀌셨네요!" 한다.

그것도 순간.. 엄마의 입에서 흰 거품이 올라왔다. 두어 차례 내가 휴지로 닦아 내는데 호흡이 뚝 멈췄다.

긴장하고 있는 데 잠시 후 엄마후... 하고 쉼을 쉬어줬다. 아. 다행이다.

호흡을 잠시 고르시나 보다 하고 있다가 다시 호흡이 멈추었을 때.. 간호사가 심장 박동 기계를 가져왔다.

기계를 엄마 가슴에 대는 순간, 다시 엄마가 후.. 하고 숨을 쉬어야 하는데 기계에 보이는 숫자가 0이다.

엄마가 다시 숨을 내뱉지 않으신다.

기계를 잘못 가져온 거 같다. 이게 잘 못된 거지? 하는데 간호사가 운명하셨다고 하며 기계를 그대로 빼간다.


"엄마? 엄마?? 엄마!!!"

"아이고.. 이렇게 아프단 말 한마디 못하시고 가시면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 숨 한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가 울부짖는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무릎으로 병실을 기었다.



1월 3일 저녁 11시 03분

엄마가 하늘나라 예수님께로 떠났다.


간호사들이 몰려와 엄마에게 붙어있던 관과 주삿바늘을 떼어가고 깔끔한 시트로 단정하고 편안하게 엄마 침대를 정리해 주고 나간다. 석 달을 꽃아 뒀던 콧줄.. 오른팔의 주사관.. 엄마 얼굴이 이제 편하게 살만해졌다.

나는 예쁜 우리 엄마 얼굴을 자꾸 쓰담 고만 있다. 

열이 한참 올랐기에 엄마의 몸은 따뜻함이 그대로 있었다.

주무시듯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1인실에서 우리 세 가족은 엄마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각자의 방법으로 인사를 하고 쓰다듬으며 정신없이 큰일 치를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 

그날의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다. 

그 찰나의 순간 그 하루를 끄집어 얘기하기엔 내 슬픔이 너무 커질까 봐 가족들은 두려웠을지 모른다.

남편도.. 그리고 오빠도.. 아빠도 나와 엄마가 어떻게 24시간.. 석 달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깊이 있게 흐르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는 석 달이지만 엄마가 날 품고 세상에 내어놓고 평생을 보듬었던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엄마오의 카이로스의 시간.

나에겐 정말 깊은 감사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석 달이 지났다.



엄마 없이 나는 50대를 어떻게 보내지..

철부지 같은 생각이다.  아직 50이 되려면 몇 해가 남았어도.. 엄마와 그 시절을 같이 얘기할 수 없어서 너무 서운하다. 이미 나보다 어린 시절에 먼저 엄마를 보낸 많은 이들이 있지만. 나의 욕심은 엄마를 계속 찾고만 싶다.


그리고 다시 석 달이 지났다.

문득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 딸을 생각한다.

나의 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주고 있을까. 

엄마처럼만 엄마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하늘로 눈빛을 발사한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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