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꿈.

표현이 서툰 아빠와 나의 이야기

by 성북구 비둘기

'위이이이이이잉'


늦은 토요일 아침, 조용한 내방 문틈 사이로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기지개를 켜고 정신을 차린 뒤 거실로 나가려고 할 때, 청소기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 아빠는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며 나에게 환기 좀 시키고 살라는 익숙한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면 나는, 아빠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코를 자극하는 엄마의 찌개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도망친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따스한 햇살 가득한 거실은 아빠가 틀어놓은 TV 소리로 가득 차있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TV 소리를 뚫고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아빠를 흔들며 편하게 누워 자라고 했지만 아빠는 그런 내가 귀찮은 듯이 대충 대답만 하고 다시 소파에 기대 눈을 감는다.


쌀쌀한 토요일 저녁, 막내 동생이 아빠를 흔들며 놀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는 몇 번 저항하는가 싶더니 결국 동생의 시끄러운 방해에 당하지 못해 놀아주기 시작한다. 동생과 유치한 장난을 하며 노는 아빠를 보면 적응이 안 될 때도 있지만, 내가 어릴 때도 저렇게 놀아 주었겠지 라는 생각에 그냥 웃어넘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시간이 찾아오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아빠는 항상 그랬듯이 나에게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들을 쏟아놓으신다.


아빠가 어릴 적, 가난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다는 이야기.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이 행복이라는 그런 뻔한 이야기들. 그리곤 자신이 못다 한 꿈에 대해 말하며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다. 나는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내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며 아빠와 말다툼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이 되었지만 아빠와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잘 지냈기에 나는 아빠와의 관계가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계속되자 언젠가부터 아빠와의 대화가 싫어졌고 자연스럽게 아빠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빠와 나는 엄마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고, 둘만 있는 상황에서는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이 끝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냉탕에서 함께 물장난 치는 모습, 나란히 미용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도 자취를 시작하는 나를 많이 걱정해주었지만, 나를 제일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취방으로 내 짐을 옮기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그날 저녁, 나는 어쩌다 아빠와 단 둘이 자취방에 남게 되었다. 한참 정적이 흘렀고 결국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한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빠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러다 보니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의 대화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나는 조금씩 내가 몰랐던 아빠를 알아갔고, 내가 알고 있었던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여전히 아빠의 말투는 무뚝뚝하고 무심했지만, 그 말은 나를 응원한다는 따뜻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심한 듯이 뒤에서 응원하고 챙겨주는 것, 그것이 표현을 하는 게 서투른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아빠와 함께한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헤어져야 하는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은 찾아왔고 나는 가족들과 인사를 했다. 가족들은 차에 타기 전에 한 명씩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와 동생들과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아빠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서로 민망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괜찮다며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때, 아빠가 먼저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아빠가 나를 안아줬다는 충격에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빠의 따뜻한 품, 나의 등을 토닥거리는 아빠의 손, 그리고 익숙한 아빠의 스킨 냄새. 곧이어 아빠는 나에게 “기죽지 말고 살아라.”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차를 타고 떠났다. 아빠는 떠났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눈물은 아빠에게 감동을 받아 흐르는 눈물이라기보다는 드디어 아빠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흐른 눈물이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는 아직도 2월 말 쌀쌀한 바람이 불던 그 언덕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나는 아빠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어릴 때처럼 냉탕에서 함께 물장난은 치지 않았지만, 시원한 온탕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때를 밀자는 아빠를 피해 도망 다니던 작은아이 대신 내가 먼저 아빠의 등을 밀어 드렸다. 무심한 듯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표현을 하는 게 서투른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아빠의 뻔하고 지루한 어릴 적 이야기와 아빠의 못다 한 꿈에 대한 이야기가 싫지만은 않다.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해본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아빠가 나에게 바라는 기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빠의 꿈이 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항상 그 꿈들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사시는 우리 아빠.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가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내 동생들도 언젠간 나처럼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아는 날이 올 것이다.


새벽 6시 모두가 잠든 시간, 아빠는 오늘도 꿈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무거운 넥타이를 맨다.



에필로그


이 글을 엄마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어릴 적에 문학소녀였다는 우리 엄마는 이 글을 읽고 참 좋아하셨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아빠한테는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걱정이 되었지만 난 엄마의 의리를 믿었다.


며칠 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정말 드문 일이었다. 나는 설마설마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도 밥은 먹었는지 요즘 뭐 하냐는지 그런 뻔한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기 직전 아빠는 나에게 조심스레 "그.. 용돈 필요 없나?"라고 물으셨고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민망하기에 내가 쓴 글을 읽었냐고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역시 읽은 것 같았다.


얼마 후 내가 고향에 내려갔을 때 식탁 위에 내가 좋아하는 빵과 바나나 우유가 잔뜩 있어서 막냇동생에게 누가 산 거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어제 사놓으셨다고 한다. 차라리 내 글을 본 게 잘 된 건가 싶었다. 저녁을 먹을 때 아빠가 나에게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이런 아빠의 모습이 조금 어색했지만 나에게 다가와주는 아빠의 모습이 꽤 다정했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산책을 하다 앞에서 혼자 걷고 있는 아빠를 봤다. 난 빠른 걸음으로 아빠 옆으로 가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같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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