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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Sep 12. 2019

쉰 포도주와 입꼬리

감히 너마저 내게 -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을까. 마지막 대사를 생각하는 와중에 칼을 뽑은 흉중에서 펑펑 쏟아지는 핏물을 보며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를 찌른 칼끝처럼, 이제는 네 마음도 예리하구나"


나는 그렇게 한번 말해 본다. 이것은 칭찬이었다.


너는 어딘지 모르게 여린 구석이 있었고, 늘 너 자신의 주장보다 남들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나는 그런 너에게 웅변술을 가르쳤다. 주장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전에 너의 생각을 가지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모진 선생이었음에 분명했다. 내 시선을 피해서 저 안의 상상 속으로 도피하던 너의 머리카락을 잡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결국 너의 동공은 나의 매질이 두려워 가까스로 나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사람의 얼굴을 코 닿을 거리까지 가져다 놓으면, 우리가 으레 눈을 맞춘다는 것이 지극히 가까이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 닿을 거리에서는 그 사람의 눈 두덩이가 있는 곳 부근을 얼추 쳐다보면 되지만, 코 닿을 거리에서는 양쪽 눈을 동시에 쳐다본다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그것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나의 왼 눈을 쳐다봐야 하는지, 오른 눈을 쳐다봐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그 사이에 있는 미간에 한참 떨리는 동공으로 응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너는 초점 잃은 눈으로 모든 육체를 나를 위해 수긍한 뒤에도, 마음은 저 깊은 곳 너머로 침전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갈피를 잃은 네 눈을 쳐다보며 그 안으로 함께 침전하여 끝까지 너를 추적했다.


"잘 들어 이 어린놈아. 너도 반란을 일으켜 죽은 네 아버지처럼 그렇게 나가 뒈지고 싶은 거냐? 차라리 그거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사람은 주인을 물었던 개였지만, 적어도 주인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을 테니 말이다. 네가 그따위 태도로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무엇 하나도 물어뜯지도 못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네가 배반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겠구나. 그래서 그러는 것이냐?"


그때 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그제야 조금은 네 안에서 분노 같은 것들이 흘러나온 것을 느꼈다. 나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것이 쾌감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를 일깨우는 것이 너를 일깨우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네 엄마를 내가 사랑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제 네 아비를 기억도 못 하고, 내 자식인 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너는 아버지를 모욕하기 위해서 나약한 등신 행세를 하고 있는 데다, 이제는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 그 소문을 이용하려는 게냐? 나는 모욕감을 씻기 위해서 수수깡보다 부러지기 쉬운 성미를 고쳐야겠다." 


그리고 나는 네 뺨을 여려번 갈겼다.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네가 내게 주먹질 하기를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네가 나의 왼눈을 보는지 오른눈을 보는지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너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네게 주장하는 법을 가르쳤다.


주장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너를 세상에 관철시키고 알아듣게 만드는 것이다. 네 아버지가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것은, 그의 반란이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 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패배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각오의 대상이다.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어라.


너는 레슬링에서 너를 괴롭히던 놈들을 하나둘씩 눕혀 버렸고, 그리고 나는 공화정을 주장하다가, 독재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를 거역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수긍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네게 내 말을 증명하고자 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증명했고, 너는 내게서 그것을 배웠다.


너는 그 두려움을 네 분노로 통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느냐? 너는 한 명의 사람이 되어 너를 주장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안을 겪었어야 했느냐? 


그래, 그렇다.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또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사랑하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에서, 나는 네가 무엇을 풀어내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 안에 깊은 분노를 이끌어내고, 그것이 네가 가진 두려움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그리고 너는 이제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주장으로 나의 주장을 꺾어버릴 수 있을 지경으로 커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랑스러운가? 내가 자랑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결국 여전히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인가? 모르겠다. 그러나 패배의 쓴맛은 나쁘지 않고, 내 살을 뚫고 들어온 네 날카로운 주장들은 그보다 더 쓰라리구나.


"이 칼은 주장이 아니라 복수입니다. 나는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날 밤 당신이 나에게 윽박지르고 때린 만큼 되돌려 주려다 오늘 이 순간까지 참았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주장을 모르고, 그러나 당신은 사라져야 할 사람입니다. 이것은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공화정을 원하는 시민들의 선택입니다." 


너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좋은 복수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역시도 하나의 주장이었고, 복수는 역시 하나의 주장이며, 좋은 복수는 하나의 치명적인 주장이었다. 한 사람은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의 주장을 가지게 되던가. 한 사람은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을 거머쥐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가.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모두가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모두가 훌륭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자웅을 겨루고 다투고서는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죽여버릴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사실 죽고 싶지 않았기에,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는가.


네 표정이 불안해 보였다. 너는 내 입꼬리가 하늘을 향하는지, 땅을 향하는지가 몹시 궁금한 듯이 보였다. 그런 것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데 말야. 불안 같은 것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데 말야. 말을 하고 나서도, 강건하게 무언가를 관철시키고 나서도, 불안은 언제나 다시 찾아오고, 그 누구든 겁에 질린다 할지언정, 상대를 약 올리기 위해서 웃음 정도는 지어 보일 수 있는 것인데 말야.


어두운 밤 하늘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밤공기를 타고 어느 집에서인지 모를 쉰 포도주 냄새가 흘러들었다. 나는 내 입꼬리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이 유쾌했다.



-누군가의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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