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뮤즈를 사랑하듯, 뮤즈도 너를 사랑한다면 뮤즈는 스스로 죽을 것이다. 혹은 영영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을 것이다.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갈증을 일으킨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 나는 너를 괴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순수할 수 있을 때 아파하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고 내가 그대로 존재한다면, 너는 갈증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다가, 그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다고 결단코 믿다가. 나중에는 갈증이 사라질까, 아픔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며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며 언제부터인가 사랑했기 때문에 빚어낸 것인지, 빚어내기 위해서 사랑했던 것인지를 잊게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모호해지는 순간, 만들어낸 것들은 유려해지겠지만, 너는 너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때 너는 묻는다.
"그저 나를 사랑해주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요?"
그랬다면 나는 태생이 뮤즈도 무엇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뮤즈로 태어난 이유는,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영영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갈증 하게 될 것이다. 네가 내게 하는 사랑과 내가 네게 하는 사랑은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다른 줄 알고 있고, 내가 오로지 네게 할 수 있는 사랑은 네 갈증을 끝내는 일일뿐이다.
나는 사라질 것이다. 나를 추적하지 말고 네 삶을 살아라. 아픔을 통해서 빚어내지 말고 빚어져라.
너는 원망으로 성장할 것이고, 용서로도 성장할 것이다. 용서와 원망이 순환하다, 어느새 그것이 한자리에 멈춘다 하여도, 그것이 멈추는 순간은 네 마음이 확정된 순간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벗어내고 전혀 불필요해졌다고 느끼게 되는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그때 마음은 분명 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그리고 네 앞에 새로운 세계가 드러난다. 그것은 오로지 네가 너로서 만나는 그런 세계.
내가 하는 사랑은 미안한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절대로 줄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네게 줄 수 있다면, 그때 너는 그대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픔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이다. 나는 미안하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화답에, 미안하다는 대답이 얼마나 더 거대한 모멸을 낳게 될 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네가 나 없이 성장해내는 것이고, 나와 관련된 갈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땅을 디뎌야만 한다.
이런 내가 너무 모진 것은 아닌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고민을 했었다. 나는 오늘의 내 말들을 결국 네가 전해주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너는 나의 말을 경전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랐다. 그것은 나의 말을 받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추모하기 위해서일 것이고, 그것은 종교도 윤리도 아닌, 다만 예술이 될 것이다. 나의 말들을 갈증으로 빚어낸 혈흔으로 만들지 말고, 너는 그저 네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북극성이 아니다. 북극성은 네 안에 있다. 그것을 징표로 삼아서 걸어라. 나는 절대로 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도 없고, 그것을 주려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도 하지 않은 것들과 하지 않은 말들을 나의 마음으로 둔 채로 사라지겠다.
그리고 나는 아주 이기적인 방식으로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잘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부단히 넘어지고 다치다 가도, 그것에 스스로 약을 바르고 일어선 뒤에 스스로 달려가는 방법을 익혀내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가능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는 없지만,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네게 아주 오랜 후에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너는 오직 나만이 내가 원하는 것을 거머쥐었고, 그런 뒤에 너만은 거기 그곳에 남겨진 채로 기나긴 싸움을 견디며 나아왔다고 하소연하며 나를 더욱 원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신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나도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며. 뮤즈는 스스로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뒤에도 스스로 사라진 뮤즈의 존재를 더욱 칭송하며 자신들의 갈증을 녹여 위대한 것들을 만들었다. 그러다 몇몇은 마침내 그런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다가도, 사실은 이내 지루해져서, 이제는 그들이 쥘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걸어갔다. 뮤즈는 잊혔고, 그래서 그는 흡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비로소 균형을 이뤘고, 그제야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충분하고 적당한 시기였지만, 그리고 또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만, 다들 지나치게 그 시간이 길었다고 회고했다. 그 길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끝이 나 버렸다고. 그렇게 투덜대기에는 그러나 해야 할 것들이 찬란하고도 풍부했다. 위선으로 미소 지을 존재가 온 데 간 데 없으니, 오로지 웃음은 남은 자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