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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Nov 26. 2019

지갑을 버스 정류장에 두고 온 건에 관하여

가을비 추적추적. 나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내린 비인데,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아스팔트를 씻어낸 비 냄새가 무엇을 어떻게 적시고 있는지, 짓이겨진 은행의 향기가 노랗게 물들어버린 잎사귀를 어떻게 땅에 들러붙도록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산을 털어내고 마른 버스 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며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지쳐 보였고, 성가신 비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버스를 잡아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희미하게 안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된 날의 마지막은 하루 중에 가장 힘든 순간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라는 그 사실이 역설적으로 하루의 가장 끝에 벌어지는 그 피로를 조금은 덜어주고 있는 듯하였다. 그들은 하루 중 가장 지쳐버린 국면에 있었던 탓으로, 종종 패잔병에 비유되는 오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패잔병이라기엔 내일 또 다른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패배했다기에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쳐있다는 사실이 패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며, 안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포기하고 있음은 아닐 것이다. 통통통 버스의 천장을 빗방울이 두드렸고, 버스에서는 철 지난 노래가 흘러들었다. 사람들은 노곤함에 잠에 빠져드는 듯했고,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오늘 이 심야버스가 처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곤한 안심으로 범벅 진 적막 가운데, 모두가 집으로 향하는 이 귀가 버스 안에서, 나는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쏟아지는 선잠으로 빠져드는 사이, 내 마음은 그들과는 달리 조바심으로 가득하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조바심과 불안 같은 것들과는 척을 지고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계획적이고 철저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미루고 방치하다 마지막에야 급박해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나는 바쁘게 살지 않았지만, 귀찮게 살지 않을 만큼은 바쁘게 살았다. 느긋한 삶을 위해서는 철저해져야 했고, 나는 이런 내 삶의 방식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내가 끔찍하게 싫어서, 최대한 나의 내면의 불안으로 멀어져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빗소리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향기가 암시하는 모든 것들에 내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술 탓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리되었다고 후배 놈에게 털어놓으니, 이런 날은 술을 마셔야 한다며 녀석은 나를 불러냈다. 그랬던 놈이 내 얘기를 들어주기는커녕 술자리 내내 군대 가기 전에 헤어진 전 여자 친구 얘기만 고래고래 늘어놓았다. 그게 괘씸하다기엔 우리 둘 다 이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잊지 못한 오래된 사랑은 타인의 이별이라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에야 조금은 제 자리를 찾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헤어진 직후에는 말없이 견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할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특별한 사랑이기에,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경험. 그들만의 순간. 몸동작 하나까지도, 습관적인 말버릇까지도. 기계장치가 그녀의 목소리를 몇 헤르츠쯤이라고 분석하건 간에, 나야말로 그 모든 목소리의 산증인임을 자부하던 순간에, 그들은 그냥 슬퍼서 혼자 우는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마음은 버티고 버티다가, 사랑이라는 것들은 시시해진다. 그저 시시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시해지는 것이 서글프다. 그제야 남들 다하는 이별에 대해서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하기엔 이미 잊었어야 할 시간이라 쉬이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집착하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지난 사랑에 대한 자신들의 마음을 숨긴다. 잊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잊은 줄 알고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게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 녀석의 반칙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이별 선배인 것처럼 스스로를 가장할 수 있을 때에야, 타인에게 조언하듯 말하며 사실은 자신에게 조언할 수 있었으니까. 그가 이별 선배인 것처럼 말할 때, 그들은 여전히 이별 안에 있으며, 또다시 무언가 털어내며 배워가고 있는 것이겠기에. 그래서 나는 그냥 그놈 이야기를 들으며 들러리를 섰다. 그리고 진탕 마셨다.


비틀거리며 혼자 갈 수 있다던 놈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토했다. 그 녀석은 토하다 말고 내게 말했다.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강해요? 안 힘들어요?"


괜찮지 그럼. 내 나이가 이제 몇 살인데. 이제 연애 같은 걸로 울며불며하는 나이는 지났단다. 나는 그리 말하며 그놈의 등을 마저 두드렸다.


그래.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지갑을 정류장 의자 위에 올려 둔 것은. 그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고나서야 알아챘다. 요즘 핸드폰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으니까.


조바심. 불안. 잊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감정이 되살아나니, 잊고 있던 기억들도 함께 되살아났다.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든다. 그러나 한번 되살아나면, 유아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떨림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감정이 불쾌하고 스스로가 추해지는 것을 알아서,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혼자서 화장실에서 나온다. 부모 없이 학교에 나간다. 사춘기 어느 시절, 부모가 부끄러워지는 것은, 사실은 그들에게 한없이 의존하고 싶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는 독립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불안의 대상을 저 멀리까지 후퇴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내게 연애라는 것도 그쯤 되었을 것이다. 남자들에 대한 도움 따위 없어도 혼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그들과 헤어져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잘생기고 매너 있고 능력 있는 사람 마다하지 않지만, 질질 끌고 싶지도 않다. 두어 번 만나보면 서너 번 더 만날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질척거리면 헤어지고 또 그뿐이다.


"내가 강하긴. 그건 그냥 아이가 혼자서 화장실을 가릴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일 뿐, 강한 것도 뭣도 아니야. 그냥 나이가 든 것이고, 이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게 되었을 뿐이야. 대단한 것도 뭣도 아니야. 나도 그때는 그랬어. 너보다 더 최악이었지."


나는 그렇게 무심하게 말해 놓고서는, 멍청하게 지갑을 놓고 두고 온 채로 버스에 타버렸던 것이다. 그걸 알아채고는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추위는 묵직하게 내 안을 스며들었고, 내 등에서는 으슬 거리는 열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되돌아가는 버스를 잡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택시를 타지 않고 귀가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당장 내일부터 커피를 며칠 안 마시면 이 실수가 만회되는지를 계산해 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아메리카노 몇 잔을 마다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만회할 수 없는 실수다. 그래, 엎질러진 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부터 하는 것이다.  우선은 지갑부터 찾는다. 그래. 그제야 그곳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지갑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몰려들었다. 그 녀석한테 잘난 듯이 말한 모든 것들이 수치스러웠다. 진정으로 수치스러운 마음은, 허세를 부리다가 들켰을 때가 아니라, 겸손을 떨다가 그 겸손이 감내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떨려온다. 그것이 더욱 수치스러운 이유는 겸손조차도 허세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며 감정이 몰려든다.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데, 이제 다 잊어버렸는데, 그냥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이 그저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감정의 대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는데도. 여유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며 잊어버린 감정. 조바심. 나는 그 조바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며 여기까지 나아왔던가. 어른의 연애라면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았다. 그러한 패턴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질척이는 사랑 따위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며 여기까지 늙어왔기 때문이다.


사랑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실은 정말로 그런 게 없을까 봐 겁을 내던 시절. 상대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험하던 시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또 그것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던 그런 시절. 


그때 그런 나를 위해 안심시키려 애를 쓰던 사람. 이렇게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 우산을 멍청하게 두 개나 들고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던 사람. 


개 같았다. 충직한 개. 너무나 말을 잘 들어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또 시킨 짓만 했다. 그런 기다림이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지 않으려 떼를 쓰고 멀리했던 그때의 모습은 이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사소한 것에 화를 냈다.  이제 와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그런 것들로 화를 내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때에도 너는 늘 나를 붙잡지 않았다. 씩씩 거리며 걸어가다 따라오지 않는 너를 알아채고는, 제 발로 몇 차례나 다시 돌아갔던 그 기억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조바심. 그래 조바심이 들었다. 네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번번이 내 마음만을 확인했다. 뿌리치고 걸을 때에야 알아챈다.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제야 또 불안이 몰려온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배한다. 시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서 더 먼 곳을 내다보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 너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 눈빛으로 차창 밖을 살핀다. 오늘 같은 날 너를 잃어버린다면, 와르르 내 삶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 그런 뒤에도 삶은 계속되겠지만 순식간에 무너진 것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기에는, 삶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어서. 나는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를 찾으러 돌아간다. 


그러면서 알게 되는 기다림의 의미. 기다림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 안에 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너를 집어 들고 떠날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재미로. 주인 없어 보이는 그것이 너무나 취약해 보여, 슬쩍 집어 들고 담겨 있는 기억들을 훔쳐보려 할지도 모른다. 싫었다.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만 했을 그것. 그리고 그것이 사라져서 내 손이 닿지 않는 다른 곳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 있을지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야 했고, 숨은 가빠 왔으며, 걸음걸이는 점점 빨라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에게 관심 없는 모든 사람들. 내가 가는 방향과 반대로 걷던 사람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은 점점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내가 찾아야 할 것을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재촉하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쳐서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달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빨리 출근했다. 달리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살았다. 무엇이든 떠나야 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고, 그러나 떠나야 할 때 누구보다 여유롭게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무장한 마음과 삶의 방식들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고 있었다. 


지갑 하나 두고 왔다는 사실이 그때 그 시절의 조바심과 불안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그때는 되돌아서 달려갔을 뿐이고, 이제는 달리지 않는 방법을 익혔을 뿐이었다. 나는 불안해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아니고, 어른의 연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때는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고, 이제는 잃어도 되는 사랑 앞에서 자존심을 걸 필요조차 없었던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되살아나는 어느 카페 안의 풍경. 네가 풀 죽은 얼굴로,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앉아있던 햇살이 들이치던 그 카페 안. 그 따뜻했던 공기. 


문이 열린다. 그리고 다시 또 쓸쓸한 버스 정류장.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의 찬 공기. 


지갑이 저기에 있었다. 


고스란히 너는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얼른 귀가하기 위해서 네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나보다. 그들은 저 먼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네 앞에 섰다. 안심. 그래, 나는 안심했다. 그때도 그랬었다.


"네가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때 너는 눈치를 보면서 말했지만, 그 말이 순진해 보여서 차라리 당당할 정도였다. 그날의 나는 네게 한차례 욕을 퍼부었지만, 사실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해 버렸다는 것은, 내 작은 비밀이다. 나는 알고 있었따.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누군가 주워가지 않았다는 우연, 그리고 또 누군가 주워가려 해도 버티고 서 있었다는 의지. 그것들이 나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마음은 서서히 깊어가고 있었고 그 마음을 재차 확인하며 마음은 다시 또 불안해졌다. 그러며 사랑했고, 그래서 불안했고, 또 어리고 서툴러서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했고, 내 마음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정말로 너를 두고 떠나버렸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너를 두고 온 게 아니라 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모르겠다.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했던 개 같던 사람이 싫증 났던 것인지, 자꾸만 의지하게 되는 나 자신이 두려웠던 것인지. 그런 뒤에도 한동안 네가 나를 기다리기를 바랐던 건지, 아니면 누군가 주워가서 그 기다림을 끝내주기를 바랐던 건지도. 그냥, 안심한 뒤에야 멍청하게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그 지갑이 불쌍해 보여서, 그때 그 네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조용히 아려왔다. 나는 나의 이런 연민이 혐오스럽다. 불쌍한 건 나였다. 시험지를 채점하는 학생처럼 그 자리에 네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정답을 확인하던 나. 그리고 어느 순간 채점하기를 그만뒀고 나는 도망쳤다.


어쩌면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버려두고 떠나가서 미안하다고. 사실은 사랑해서 그랬다고, 그날의 그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어려서, 서툴러서, 고맙다고 말하면 지는 것 같아서 그랬다고. 네가 나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지를 생각했다. 나는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뿐이라고. 미숙해서 버린 것은 몰라서 버린 것이고, 몰라서 버린 것은 버린 것이 아니라 두고 온 것이고, 몰라서 두고 온 것은 잃어버린 것이고, 몰라서 잃어버렸으나 되찾지 못한 것은, 그저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두고 온 지 너무 오래된 것은 더 이상 그곳에 있을 리 없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대상에게 사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더 먼 시간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던 것이고, 시간은 정말로 너무 많이 흘러서 나는 지갑을 잃어버린 뒤에야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아주 가끔 알아챌 뿐이었다.


그리고 막차는 떠났다.


다시 또 혼자였다. 내가 가진 것은 허여멀건한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몇 가지의 교훈과, 후퇴한 불안. 그리고 들이치는 비를 막아주는 버스 정류장의 지붕 같은 것들. 텅 빈 도로는 고요했고, 습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들이 모두를 죄어오면서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도 여전히 또렷하게 보이는 노란 중앙선이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즈려밟고 건너라. 나는 그를 따라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서는 다시 또 선을 넘는다. 모든 것들이 외롭게 젖어오고 있었다. 나도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잠에 들고 싶다. 피곤했다. 실수하면 후회하면 되고, 밤에는 잠을 자면 된다. 그리고 또 일어나서 살아가자. 우리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뿐이니까.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거면 되었다. 우리는 패잔병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살아간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두고 간 것을 주울 수 있고, 너무 늦었다면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면 된다. 막차가 끊어지면 택시를 타거나 첫차를 기다리면 된다. 그럴 수도 없다면 걸어간다. 


나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올라탄다. 피곤한 몸을 기댄다.









"아 시발 누가 현금만 다 빼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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