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
"너 그거 알아? <고기가 안 빠지는 날이 없네>랑 <고기가 빠지는 날이 없네>랑 다른 뜻이야"
"같은 뜻 아냐? 아니, 왜 둘 다 고기만 나온다는 말 같지?"
어디서 주워 들어온 이상한 문제. 너는 걸려들었다는 듯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나를 음흉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왠지 나의 직감을 믿고 너를 한 번쯤 이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비밀을 알아내느라고 끙끙 애를 썼었지. 아마 두 시간을 붙잡고 너랑 실랑이를 벌이고, 나는 패배했다. 결국 두 개는 다른 뜻이었다. 그 이유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이제는 납득할 수 있지만, 그때에는 늘 논리적인 말로 나를 쏘아붙이는 너를 보면서 네 궤변에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너는 나를 두고두고 놀렸었지.
네 청첩장을 받고 문득 그때 생각을 했다. 네가 벌써 결혼하는구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너를 나는 별 감흥 없이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똑똑했던 사람. 어벙했던 나를 잘 놀리던 사람. 왜인지 너는 나를 늘 데리고 다녔다. 공식을 하나 외워야 문제 하나를 풀던 나에게 늘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하던 사람. 그때 그 시절 내 우상이자, 내가 아무도 몰래 좋아했던 사람.
그때 나는 왠지 우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어. 기가 센 네 옆에서 구박받고 놀림받으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소개해준 네 남자 친구 앞에서 나를 무시하는 것들에 나는 그렇게 화가 나고 분했던 걸까.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나는 네 연락을 다 무시하고 그 길로 군대에 가버렸었지. 그 이후로 종종 네 소식을 듣곤 했지만, 그날 그렇게 일어났을 때 나는 내 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었어. 늘 사람들 사이에서 <빠지는 곳이 없던 너> 그러나 늘 사람들 사이에서 <안 빠지는 곳이 없던 나>. 우리는 그렇게 달랐고, 나는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한 번쯤 너를 이겨서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나 봐.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가끔은 이 책장과 수식 사이에 앉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너였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너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일이 있는 곳으로 떠났고, 이제는 나만 아직도 이곳에 남아 책 속에 파묻혀 있지. 그냥 가끔은 그때가 그리워져서. 내가 지금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도 더 훌륭하고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던 네 탓인지 덕인지 뭐 그런 것 같아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만난 지 오래되었다>랑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같은 뜻인 거 알아?"
그날 놀려서 토라진 내게 너는 달래듯이 그렇게 말했었지.
"자 봐봐,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만난 그 시점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야. 그런데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만나지 못한 그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이야기고. 그래서 결국 오래 떨어져 있었다는 뜻으로 같아. 이건 신기하지 않아? 사실 이게 네가 말하고 싶었던 그런 예 같지 않아?"
너는 싱글벙글하며 어린아이 대하듯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지.
그런데 말야, 사실 두 말은 다른 뜻 같아.
우리가 못 만난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너를 만난 건 아직도 어제 일 같아서.
그냥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던 풍경들이 있어. 수업을 마치고 네게 달려가던 순간들. 아무런 걱정조차 하지 않고 허송세월 보내며 웃고 떠들던 날들. 내가 굽던 고기와, 네가 따르는 소주 한 잔. 막차가 끊어지기 전에 지하철로 달려가던 그 가빠오는 숨과 흐르는 땀 같은 것들. 뜨거운 여름 공기와 열차 안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던 안도감과 에어컨으로 서늘한 그 냄새. 너와의 저녁이 짧아 아쉽던 그 하루들. 내일의 공강이 싫고 다가올 방학이 싫었던 하루하루. 너를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못 만난 지는 아주 오래되었던 것 같은 그런 기분들.
그래서 그 말은 다른 뜻이야.
축의금은 오만 원만 넣을게.
나는 너를 생각하면,
아직도 대학생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