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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an 15. 2019

성애 서린 유리 너머

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해"


너는 내게 덤덤하게 말했었다. 


나는 그 덤덤함이 싫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 앞에 초연해질 때, 그 다가올 죽음 앞에 마음 쓰고 있는 내 마음만이 홀로 외롭게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한 어떠한 대안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네가 만약 괴로워서 몸서리치다가,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다가, 그렇게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죽어버린다면, 아마 나는 그것을 더욱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네가 그렇게 했듯이 초연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를 덮쳐오는 재앙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고민하지만,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든 재앙은 우리를 그렇게 덮쳐 온다는 것일 뿐이다. 그때에, 기도하는 자의 자세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만약 정말로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을 부릅 뜨고 뒈지든, 눈을 질끈 감고 뒈지든, 뒈진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옳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네 안의 시계는 명백한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생각이 같다면, 그래서 너는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내가 너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내가 전학을 왔을 때, 칠판에 쓴 내 이름을 가지고 너는 나를 놀렸다. 나는 그것이 분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고, 너는 누군가를 울린 다른 개구쟁이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는 자라면서 개구쟁이 같은 모습들을 점점 증발시켜 버렸고, 점점 더 진지해졌다. 너는 내가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에도 주정뱅이였던 망나니 같은 아버지의 냉장고 안에서 소주를 몰래 훔쳐다가 놀이터로 나를 불렀고, 우리는 치토스 하나로 그 쓴맛을 함께 느껴보려다가 그냥 모두 다 갖다 버렸다.


나는 그 망나니 같은 너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도 함께 했고, 몸이 약한 너를 뒤로하고 입대할 때에도 너는 함께 훈련소까지 나와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가 외로워도, 휴가 때마다 네가 있어서 나는 위로를 얻었다. 그런 네가 위장이 약해 피를 토할 때, 너를 죽이는 것은 술이 아니라, 사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핏줄 때문이라는 걸 소름 끼치도록 싫어하는 너를 나는 보았다. 그러나 너는 언제나 그런 모습에 장난을 섞었고, 너는 늘 진지한 모습 때문에 차라리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알고 있다. 네가 전학 왔던 그 첫날 나를 놀렸던 이유는 네가 개구장이여서가 아니라,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오래되었고, 네가 나를 떠난 지도 오래되었다. 너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래서 너는 그 말대로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네가 그리워 울고 싶었지만, 초연했던 네가 괘씸해서라도 내 마음을 눈물로 풀어버리지 않고 담아두기로 한다.


어렸을 적 나는 모든 것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것은 너라는 존재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내 모든 기억들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학 온 날에 네가 놀렸다는 것은 기억해도, 그때 너를 꾸지람했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같은 것들은 모두 텅 빈 공책처럼 비어 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너조차도, 네 표정과 목소와 어투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를 잊어간다는 것은 기억과 느낌 사이의 좁은 틈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잊은 줄은 알아서, 사실 너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너의 표정과 말투와 네 감수성과, 네 사상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을 묘사할 수 있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를 말하며 너를 여전히 기릴 수 있다.


너의 재를 뿌린 바다 앞에 앉아, 네가 몰래 훔쳐 나온 그 소주를 생각하며 혼자 나는 이렇게 술을 마신다. 그러나 내가 너를 아무리 기억하고 또 묘사한다고 한들, 그 느낌이라는 것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오로지 재생해낼 수 있는 그런 느낌이라는 것은 다시 들이키는 이 술의 맛뿐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우리가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놀이터의 그 말도 안 되게 쓴 독약과 같은, 그 맛을 재현시키지는 못한다.


시간은 기억과 느낌의 틈을 벌리고, 나는 너를 기억해도 더 이상 너를 느낌 할 수 없다. 그 말은, 사실상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너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되돌아오지 않는 그때 그 순간의 술의 맛과 같은 것이 지금 마시는 이것과도 다르다는 그 말은, 내가 다시는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처음에는 너의 느낌과 결별했고, 이제는 그 결별한 순간과도 동시에 결별하고 있다.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처음 네가 모자를 벗어 앙상한 머리를 보여주었을 때, 화장실에서 내가 몰래 흘렸던 눈물의 느낌조차 이제는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네 존재가 언제까지나 내게 분명하다 믿었다. 그러나 내 안에 술 때문인지 세월 때문인지 계속해서 성애 같은 것들이 낀다. 네 존재는 희미해졌고, 내 기역은 뿌예져만 간다. 모든 것이 혼미해진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서 과거의 너를 그리 보고 있는 것이다. 너는 저 멀리 걸어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나는 막힌 유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는 말은, 네가 네 죽음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이 유리벽을 넘어 네게 달려갈 수 없다는 그런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너를 본다. 정말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기에는, 내 입김조차 유리에 달라붙어 얼어 버린다. 너무나 가까이에 숨을 몰아쉬며 지켜보았기에 더욱 뿌옇게 서리는 것들이 분명해지는 것만 같았다.


너는 말했다.


"서리는 서려서 서리래. 그래서 창문에 서리는 것을 서리의 탓으로 돌리지 마. 서리는 서리기 위해서 서린 것이니까."


기억은 느낌과 결별하는 것을 알기에, 어느 하나라도 붙들기 위해서 남겨 놓는 하나의 사진첩이었고, 서리가 서려서 서리이듯이, 기억은 태생이 그런 것이고, 느낌의 소실을 탓할 수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전히 문제는 네가 사라졌다는 것뿐이다. 사라져서는 내가 붙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우리 유한함을 탓하고, 돌아갈 수 없음을 탓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기에는 이 삶에 대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리를 파괴하는 꿈을 꾸었다. 


성애를 탓할 수 없다면, 유리를 탓하겠다. 이 모든 것을 망치로 부숴 버리고, 모든 뿌옇게 된 것들을 뚫어 버리고, 저기 희미해져가는 것을 되찾아서 너를 얼싸안는 꿈을 꾸었다. 예전에는 그리 붙잡는 이미지가 분명했는데, 이제는 오로지 뿌옇게 된 유리만이 분명하다.


겨울 바다는 말이 없고, 저 멀리 오징어 잡이 배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내 시력으로 먼저 사라졌다. 나는 그 한계를 알고 있고, 이제는 그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 바다로 깊게 잠수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그대로 있듯이, 그래 나는 유리가 온통 뿌옇게 된다 하여도, 사실은 유리도 무엇도 아닌 그저 가림막에 불과하다 하여도, 저 너머에 네가 있을 것을 믿는다. 희미해지고 또 뿌예진 것을 넘어서 너는 거기에 분명히 존재했다. 이제 나는 보이지조차 않게 된 것이 어쨌든 있음을 믿는다.


너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그렇게 말했던 네가 있었다. 그리고 네가 사라져도 나는 너의 존재를 믿는다. 그 믿음을 근거로 하여 나는 지금 여기 너 묻힌 곳에서,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소주를 생각하며, 그와 닮은 것에 불과한 다른 병에 담긴 이것을 홀로 마시고 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내 옆자리를 비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만드는 이유는, 오직 그곳에만 앉을 수 있는 자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며, 나의 모든 행위는 네 존재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 나는 네 존재에 이끌려 행위 한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 네 존재를 증명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틀렸다. 너는 사상적으로도 틀렸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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