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 마시는 것은 역시 내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헛개수를 한 병 산다. 몇 모금 마시고 나서 더 마시면 악화될 것 같아서 카드를 찍고 나오자마자 쓰레기통에 빈 병을 던져 버린다. 쓰레기통 안에 수북이 쌓인 전단지들. 나는 이걸 볼 때마다 가끔 네 생각이 난다.
연애 같은 것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에 질질 끌려 다니는 것들이 시시해졌을 때였다. 내가 해야 할 것들도 벅차다고 느꼈다. 그래,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심심했고,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말하던 친구는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었지. 우리는 건대 앞 6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너는 나보다 적당히 큰 키에, 적당히 생긴 얼굴에, 그를 어떻게든 해보려 적당히 신경 쓰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수줍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사람 많던 그 거리를 함께 걸었다.
할머니들이 나눠주던 수많은 전단지들. 너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다 받았다. 나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 하는 생각을 했다. 거절하려는 쑥맥이려나 혀를 내두루려는데, 너는 그중에 하나를 꺼내더니 여기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 그 닭갈비집이었지. 너는 정말로 뭔가를 찾은 것처럼 의기양양해 보였다. 너는 말했다. 여기 이거 들고 가면 콜라 한 병 더 준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고, 너는 콜라가 싫은 건지 닭이 싫은 건지를 물었다. 파스타 집도 있다고 여기는 사이드 메뉴를 할인해준다고 말했다. 아니야, 우리 동갑이니까 말 놓을게. 닭갈비 집 가자. 우리는 그렇게 앞치마를 두르고 양배추와 양파를 휘저어 그 사이에 있는 것들을 잘 집어 먹었다.
우리가 그날 헤어질 때, 너는 잠깐 나보고 기다리라고 말하며 주머니에 든 서너 장의 전단지를 한 번에 쏟아 버렸다. 그리고 말했지.
"저 쓰레기통 안에 쌓인 전단지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유약한 마음과, 진심으로 사람을 위하는 이타심과, 그저 동정심에 한 장 받아볼 뿐인 위선과, 어쩌면 억지로 강요당한 마음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야."
나는 가끔 별거 아닌 것에 시를 짓듯이 말하는 네 그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에 나는 분명히 너를 몇 번 더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또 적당한 날에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약속을 잡아 적당히 만나고, 연애를 시작했다. 너의 고백에 나는 말했다. 나는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랑은 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함에 눈물겨워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밤을 새워 전화통화를 하다가, 또 일어나서 다시 전화를 하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그 사랑을 시작했던 이유는, 어쩌면 네가 있는 대로 다 받아보는 그 전단지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 하나를 골라 공짜로 콜라를 마시고, 할인된 사이드 메뉴를 먹고, 우리는 즐거웠으니까. 나는 거절을 못하는 유약함 때문인지, 동정심 때문인지, 아니면 네 절실한 눈빛에 강요당해버렸기 때문인 건지 어떤지, 아니면 희미한 사랑 같은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인 건지. 나는 네 마음을 한 장 받아 그곳으로 갔다.
나는 아직도 생각해. 그때 그것을 받았던 것이 과연 잘했던 것인지. 그래 얼마 동안은 좋았어. 다시 사랑받는다는 느낌도 좋았고, 또 내가 무언가를 조금 해 줄 때마다 너는 활짝 웃었지. 그때 그 마음이 사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틀린 생각일 거야. 그러나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절대로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깨달아갔고, 너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려보려고 늘 열심히였지. 그게 가엽고 귀여워서 나는 너를 안아주었고, 그때 그 향수 냄새. 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나의 말에, 너는 울면서 말했지. '너는 내가 어디서 술을 먹고 죽을 수도 있고, 또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시작할 수도 있고, 또 밥도 못 먹고 어디서 굶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런 내가 불쌍하지도 않으냐'고. 물론이지. 걱정했고, 걱정하고 있고, 또 잘 살기를 바라. 하지만 나는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어.
있잖아, 나는 원래 동정심 때문에 전단지를 받는 사람이 아니야. 좋아해서 받았고, 가보고 싶어서 받았고, 그리고 이제는 오직 마음에 남은 그 걱정스러운 마음 하나로 전단지를 받기에는, 그것은 말야, 저기 저 쓰레기통 안에 쌓인 수북한 마음들처럼, 그것이 동정심이든, 유약함이든, 강요에 못 이긴 그런 마음이든 뭐든, 저렇게 버려지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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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을 하다 무심결에 받아 버린 이 전단지 한 장.
그래 딴생각을 하다 받을 수도 있는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받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그 계기가 어쨌든 또 제멋대로 흐르고. 너는 닭갈비를 그렇게 먹고 나서도, 그 역할을 다한 전단지 꾸러미를 건대역 6번 출구 쓰레기통 안에 털어 넣어 버렸다. 내가 네게 보낸 편지들 조차도, 언젠가는 제 역할을 다해서는 그 전단지 처럼 무의미한 것이 되어서는 그렇게 치워야 할 순간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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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걱정하긴 뭘. 너는 잘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