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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27. 2019

추신과 추모

네게서 네 아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지 벌써 일 년 만이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완치율 십 퍼센트에 불과한 최악의 암. 일 년이면 차라리 오래 버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작년 이맘때쯤 싸우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췌장암의 생존율과 생존기간에 대한 나의 판단에 너는 술에 취해서는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네가 나를 때린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너는 늘 끈질긴 놈이었다. 너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어딘가 함께 놀러 갈 때에 너는 한번 물어보고 내가 거절한 뒤에도 집착적으로 되물었다. 진짜 이번에 같이 놀러 가지 않으면 우리는 친구도 아니다, 이렇게 으름장을 놓다가도, 다시 연락이 와서 미안하다, 잘못했다, 네가 필요하다, 네가 없으면 재미가 하나도 없다- 라며 다시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그래서 나는 열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너와 함께 가서 낚시를 했다. 거기서도 늘 줄이 끊어져 놓친 물고기를 아쉬워했다. 나는 그때마다 다른 놈을 잡으면 되지 않으냐고 말했고, 너는 그때마다 지금 놓친 바로 그놈을 잡을 거라고 했다. 성급하게 행동하고 또다시 거기에 다른 말들을 덧붙인다. 나는 그 점이 사실 별로 싫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 한 명조차 없었으면 아마 나는 친구도 없이 홀로 늙어 죽었을 것이니까.


그런 네가 그렇게 사랑한다고 난리치고 자랑하던 그 아내의 사형선고를 받아들일 수 있었 리가 없다. 내가 그간 너를 찾지 않은 이유는, 네가 나를 한대 때려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네가 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처롭게 매달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설령 아내가 네 곁을 떠나고 난 뒤에도 너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네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죽은 자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이려 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너는 늘 편지 뒤에 수많은 추신을 덧붙이곤 했다. 뒤늦게 군대 간 내게 너는 내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너는 나를 실실 비웃으면서 차라리 자살하는 게 답이라고 썼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 깜깜한 것이 내 남은 군생활과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너는 꼭 작별 인사에 날짜까지 적고 난 뒤에도 추신을 마치 주석 달듯 적어 놓았다. p.s 거짓말이니까 죽으면 안 되고 나오면 꼭 술 한잔 하자. p.s 남의 군생활은 원래 빨리 간다니까 적어도 자기 시계에 한한 내 군생활은 빨리 갈 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선임한테 잘 보이는 법에 대한 꿀팁이라고 또 몇 가지를 본문보다 더 길게 남기곤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부대 전화번호를 잘도 찾아내서는 내게 전화까지 했다. '잘 지내지? 삐진 거 아니지?' 그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야 바로 그 잘난 편지가 도착했다.


바보 같은 놈.


반면에 나는 추신이라는 것을 결코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위한다며는 그저 본문에 신경 써 적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에서 그 말을 제일 좋아했다 : '죄송할 짓을 왜 해.' 억울하기는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주워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려는 나의 태도를 내 선임들은 더 싫어했고, 그래서 나를 더 많이 괴롭히곤 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은 갈 사람 가는 것이고 올 사람 오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말이다. 물론 죽은 사람은 당연히 돌아올 수 없지만, 산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할 수 있는 만큼 말한다. 그런 나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되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욱 네게 모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다시 고쳐대고 있는 널 보면서, 나는 더욱 내 말을 주워 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태도가 마지막에 이르러 네 아내는 결국 죽게 될 것이라 말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내 멱살을 잡고 목이 쉬도록 소리치는 너를 봤다. 내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말 뿐인 말. 그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안에서 사실 나도 네게 서운했던 것이다.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리움. 뭐 그런 것들. 내게도 그런게 있다. 나도 어쩌면 너의 상실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고, 단지 그것은 그저 나의 마음이었을 뿐, 그 어떤 질병도, 죽음도 막아줄 수 없는 그저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말하지 않아도 네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네 아내를 알고 있다.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그녀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 좋아했을법한 그런 여자아이였다. 공부도 잘했고 노래도 잘 불렀다. 밝고 명랑했고, 또 남자애들을 잘 때렸다. 그런 그녀를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네게 소개해 줬다. 너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또 내게 설쳐 댔다. 그리고 문자를 하나 보내고, 실수한 거 같다면서 또다시 다른 말을 보냈다. 영화 볼까요, 아뇨 영화가 싫으면 미술관에 가도 괜찮습니다, 아뇨 그냥 식사만 해도 좋아요. 이런 말을 잇따라 보내는 네가 그녀와 잘 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너의 집념은 결실을 맺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건, 그런 너는 그녀와 결혼했다.


이제는 안다. 그런 너 였기에, 만사 던져 버리고서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곁에 있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꼴이 너무나 처참할 것만 같아서 차마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너 역시도 나를 한대 쥐어 박은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사실은 술에 취해 그랬다며 미안하다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조금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뿐.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다시 또 연락한 것은 너였다. 그렇게 일년만에 받은 전화 였다. 그녀가 죽었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장례식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직접 너를 찾아갔다. 오랜만이었다. 너는 예전보다 더 마른 얼굴에 표정은 엄숙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하는 것 같아 안심했다. 우리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술을 한 잔 했다. 너는 장례식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고집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그녀에게는 찾아올 가족도 더는 없다고 말한다. 장례식 같은 것은 끝을 "그럴듯해" 보이게 만드는 인간의 행위에 불과하단다. 자기는 그런 것을 할 마음도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란다.


나는 오히려 말한다. 바로 그런 거야말로 네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느냐. 왜냐하면 너는 늘 모든 것이 끝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덧붙여 말했기 때문이다. 편지에 써댔던 그런 추신처럼, 장례식이라는 것은 다 끝나고 난 뒤에 덧붙이는 우리의 의식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문화이다. 오히려 네가 그러는 것을 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야. 추신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네게 연락했잖아. 그래서 안녕이라고 말한 뒤에 우리는 또 무언가를 적는 거야. 그건 끝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끝을 거부하는 거야."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 나는 술에 취해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너는 끝을 유보시킨다. 추신이다.


그러나 장례는 추모다. 추모는 끝을 참고 인내하고 그대로 두기 위함이다. 어쩌면 나야말로 추모의 인간이다. 해야 할 말을 하고서는, 단지 그 뿐. 말이 끝난 뒤에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 끝에서 해야할 일이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저 그것을 기념하는 것 뿐. 어쩌면 나는 그녀가 처음 췌장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 이미 내 마음속에서 모든 장례를 끝내버렸는지도 모른다.


"너는 그냥 보내주는 거 말고 더 하고 싶은 말, 정말 없어?"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내가 그런 너를 알듯이, 너도 이런 나를 알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 


나도 사실은 그녀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던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그러더니 씩 웃으면서, 너는 안 나가? 그렇게 말하더니 교실 문 앞으로 나가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는 저기 햇살이 내비치는 너무나도 번쩍이는 황금빛의 운동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중간쯤까지 달려가더니 뒤를 돌아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핸드폰도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 우리는 묘한 무전의 사인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를 보며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어린 날의 그런 추억 하나.


그 이후에 십오 년이 흘러 너는 그녀를 만났고, 그리고 오 년을 더 사랑했다. 네가 하지 못한 말들로 계속해서 추신을 덧붙이는 사이, 나는 하지 못한 말에 대한 추모만을 올렸다. 어쩌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드는 팔과 손의 움직임과, 그것이 흔들리는 사이에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몸 동작 하나 하나가 그 해맑음을 어떻게 묘사해냈는지.


그 밝고 강한 에너지가 나와 걸맞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 그런 사람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으면 끊임없이 슬퍼해야 하는 거잖아. 그건 무서운 것이다. 참을 수 없이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네가 어째서 사랑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관계는 끝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끝을 유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하지 못한 말이 떠오르는 사람. 그래서 사실은 아직 하지 못한 진심이 있었다고 늘 떠벌대는 것이다. 그런 너는 너를 떠나지 않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조차도.


그래서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그저 지켜보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여기에 이르러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과오조차 알기에, 그저 추모를 올리는 방법밖에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도,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 나도 사실은 많이 슬프거든."




내가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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