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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03. 2019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 (3)

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너는 늘 내가 떠날까 두려워했고, 나는 그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서 급급했다. 내가 기꺼이 거부했던 것은, 사실 우리 둘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너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작았고, 너는 너무 거대했다. 사실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내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함이 거대해질수록, 사실은 그 모든 호기심을 등지고서, 날개를 조금이라도 펼치면 저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으리라는 예감을 어그러뜨리고서, 그저 네 곁에 머무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궁금했다. 내가 정말로 저 먼 곳까지 날아간다면, 그리고 하늘이 아니라, 이 습지를 등지고 너를 버리고 떠난다면, 나는 슬퍼할까, 후련할까. 그것은 결코 확인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슬퍼한다면, 그것은 내 사랑이 진정한 것이었다는 말일 테고, 마침내 후련해 한다면, 그것은 내가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논리는 완벽했다. 슬퍼한다 해도 사랑하는 것이었고, 후련해 하는 내가 끔찍하다 한들 그 역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논리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나의 호기심은 결코 확인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나는 그 물음을 영원히 유보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너는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 내가 있을 곳은 없다. 그때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뭇가지 끝으로 밀려났다. 너의 부재로 음산하게 깔린 공기를 넘어 저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나는 차라리 되레 화를 내고 싶었다. 봐라. 이것은 내가 바라던 끝이 아니었다. 나는 저 하늘로 날아가게 되면 어떨지를 정녕 궁금해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의심했다. 너 없이도 내가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틀렸다. 그 증거로 나는 아직도 이 음산한 공간에서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보란 듯이 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끝까지 밀어 부칠 것이다.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이 바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새들은 바람의 의미를 안다. 모든 새들은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를 예감한다. 그것은 그가 결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그런 바람이다. 하지만 온몸의 새포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느꼈다. 


날개를 펼친다. 


바람은 두 날개에 부딪혀 마치 그렇게 흘러야 했던 것을 미리 아는 것만 같았다. 바람은 손등을 쏜살같이 훑고 지나갔고, 동시에 내 팔의 하박을 천천히 감싸 주었다. 유선형의 날개는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도 내 발을 땅으로부터 떨어지도록 만든다. 이것을 한 번이라도 휘두루면 순식간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을 알았다. 내 모든 기억들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태어나면서 한 번도 나를 붙잡아 본적 없었던 중력에 불과했다. 중력조차 붙잡을 수 없었던 나를 네가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이 한 번의 날갯짓


 떠나고 싶지 않았다 -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날갯짓 이후에 이어질 무수한 연쇄들. 


바람과 온 세계가 나를 밀어 주었다. 나는 쏜 살 같이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다시 저 바닥을 향해 뛰어들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려는 찰나에,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을 알았다. 온 몸이 확신으로 가득했다. 순식간에 땅에 깔린 모든 공기를 박차고 올라 처음의 그 도약으로 오른 그곳을 넘어선다. 하늘은 끝이 없었다. 끝 뒤에는 또 다른 끝이 있었고, 그 뒤에는 또 다른 세계와 새로운 시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허겁지겁 탐식했다. 모든 것은 시간문제였고, 나에게는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능력이 있었다. 바람은 나를 밀어주다, 나는 바람이 되었다.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떠나보자. 끊임없이 나를 갱신하고, 그 나를 다시 또 넘어선다. 날갯짓 뒤에는 또 다른 날갯짓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무수한 연쇄들은 한 번도 같은 것일 수가 없었다. 그래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유보하고 확인하지 않으려 했던 그런 나다. 이제 됐냐. 이제 속이 후련하냐. 나는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괜찮다. 그러다 눈물이 흘렀다. 


문득,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느꼈다. 습지가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를 참을 수없이 슬퍼졌다. 이것은 논리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나의 능력과 성취로 얻어진 환희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슬프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차라리 안심했다. 이것은 결코 내가 확인하고 싶은 그런 끝이 아니었다. 이별을 통해서 얻은 슬픔은 어떤 마음을 증명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부재를 분명하게 해줄 뿐이다. 완성은 완전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끝을 내도록 한다.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었다. 존재의 부재도 여전했고, 내 마음도 이렇게 남아 있다. 소중한 것을 부재한 세상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마찰했고, 그를 통해서 그저 슬픔이 연역될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가야할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데 까지 간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모든 자유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안녕.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악어새를 생각한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 이 물음은 어쩌면 적당한 물음이 아니다. 그는 그가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탁월하게 나는 새는 드물고, 영원히 나는 새는 더욱 드물다. 쉴 새 없이 날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곤두박질치지 않는다면 땅에 발이 닿는 순간 다시 아픈 기억들을 되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늘에는 더 멀리 날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이, 땅에는 지루한 휴식이라는 권태가 그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그 누구도 서로의 운명을 예측한 적 없었고, 그 누구도 이별을 예측한 적이 없었으니까. 단지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행운을 빈다는 나의 바람이 만약 한낱 낙관에 불과한 것이라면, 나는 대신해서 그가 불안과 권태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라는 예견조차 헛된 것이라고 말할 거다. 


단지 그의 여행은 무언가를 넘어서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저 떠밀려졌을 뿐인 것이다. 떠밀려진 뒤에야 넘어서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는 잘 할 것이다. 물론, 바람일 뿐이다.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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