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이 글은 일기가 아니다. 어쩌면 차라리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부러지는 것과 바스러지는 것 사이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고, 그것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으나, 나는 반대로 그것을 물어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글을 써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의 화자는 내가 아니다. 그것이 비록 나 자신의 일을 기술하는 형식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새롭지도 않은 것에 대한 케케묵은 설명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 글은 나 자신이 서술하는 것이기는 하나,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거니와, 이 글을 서술해 갈 나 자신 역시도 다른 누군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놓지 않으면 오해가 빚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하나의 글에 여럿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는 있어도, 이 글 자체가 무엇을 투영해서 적어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이 글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서술일 뿐이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인간에 대한 하나의 독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를 써야만 하는 이유는, 내가 어제 오랜 친구의 소식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는 내 가장 내 의지가 되는 친구였고, 이제는 병실에 누워서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수술을 받았다. 두 다리는 으스러졌고, 보기조차 힘든 철심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다행히도 말쑥했던 얼굴은 상하지 않았다. 대신해서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붕대로 둘둘 말려 있었다. 막노동을 하다가 떨어지는 자재를 맞고 2층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10년 만의 재회가 이런 식이라니.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감 넘쳤던 인간이 약해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사정이 좋지 않아 떠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나는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감 넘치게 살고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자유로움과 자신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늘 그때 그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서 연습해야 해. 어디까지나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는 친구는 없어. 너는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나는 그렇다고 말하려고 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지 않았던 순수했던 나였기에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긍정하려는 내 입을 가로막았다.
"정지 정지. 너는 네가 100미터를 몇 초에 뛰는지 알아? 정확히 말이야."
나는 몇 번의 체력검사를 체육시간에 했었지만, 사실 그런 기록에 관심이 없어서 정확히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래서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너는 100미터를 몇 초에 뛸 수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지금 감히 네 목숨을 함부로 걸 수 있다는 말을 내게 하려는 거야? 그런 자신감이 나를 안심시킬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오히려 너는 네 통장에 잔고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경매를 하려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사려 하고 있다고. 그리고, 나중에 목숨이 아까워서 내빼면, - 아 미안, 내가 이렇게 겁쟁이인지 몰랐어 - 이렇게 말하려고?"
그는 질책하는 만큼 더 신나 보였다. 나는 마치 핀잔을 듣는 듯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분명히 제대로 대답을 한 것이다. 나는 늘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을 해서 그를 기쁘게 했다. 의심 없이 대답하는 것이다. 그의 말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을 구태여 간파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내가 아무리 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고 해도, 그의 이론을 온전히 다 듣기 위해서는 순진하게 대답하는 것이 훨씬 유용했다. 이쯤 되면 내가 더 영악하게 그를 맞춰주는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늘 그의 기세 등등함을 신비하게 여겼던 것 같다. 이기려고 하지 않는 나의 습성은, 그러나 차라리 성급하게 정직하고자 하는 나의 습성은 그와 잘 어울렸다.
"자, 물론 내가 목숨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네게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나는 예를 들면, 네가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을 때, 경찰에 신고해줄 수는 있어. 어쩌면 경찰이 올 때까지 너와 싸워주거나, 또 그 덩치가 너무나 크다면 함께 도망 쳐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네가 1억 빚이 있다면, 그것을 대신해서 갚아줄 능력은 없어. 그때에는 아마 목숨을 바친다고 하고, 또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리고 그 목숨이 1억보다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을 거야."
나는 콩팥이라도 팔면 그게 목숨을 걸고 1억을 갚아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다가 그만두었다. 나도 콩팥을 그를 위해서 팔 수 있는지 아닌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콩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내 몸에 칼이 들어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는, 내 안에 있는 어떤 생명이라는 에너지를 빼내서 타인에게 선물 포장해주듯 하는 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밀치고 차에 치인다든가, 날아오는 총알 앞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혹은 콩팥을 팔아서 소중한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어떤 것은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령 사랑니를 대신해서 뽑힌다든지 하는 것들. 치아를 뽑는 건 그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러면 사랑니를 뽑는 대가로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을까? 그건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정일 뿐이므로, 그때 가봐야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분명히 너를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그리고 나는 너에게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을 거야. 그것을 시험하려 하는 것만큼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는커녕 관계를 파괴하는 것도 없단 말이지. 그래서 말이야, 나중에 내가 너한테 헐레벌떡 달려와서, 보증 좀 서달라고 한다면 말야, 보란 듯이 거절하기를 바라. 네가 어디까지 내게 해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그 어디까지를 못해줘도 상관없는 것으로 하자고.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바보 같은 질문이나 요구를 하지 마. 시험 끝에 관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서 시험을 하지 말자고. 그러면 아마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괜찮을지도 몰라. 이것이 이른바 관계 유지 필승법이라는 거야. 간곡한 부탁은 가짜 친구에게 하는 걸로. 그리고 거절할 수밖에 없는 부탁을 거절해도 그것이 우리 관계의 거절은 아닌 것으로."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했던 그는, 그는 나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해줬다. 우리가 처음 친해진 것도, 아침 조례 시간이 끝나고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때는 나는 아침을 제대로 차려 먹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아쉬운 때였다. 그는 엎드려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는 분식집에 가자고 말했다.
"아무렴, 내가 돈도 없어서 너를 깨웠을까 봐"
그는 내가 항상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한 발 먼저 대답했다. 그는 내 볼멘소리 같은 것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돈이 없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 이러면 내가 미안하다 - 와 같은 말들. 그런 말 듣지 않고 호의를 베풀 수 있는 방법을 그는 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용하던 것들만을 나한테 줬다. 시계를 새로 샀다면서 시계를 줬고, 전자사전을 새로 샀다면서 전자사전을 줬다. 내가 거절하기도 전에, 내가 거지새끼라서 주는 거라고 했다. 나는 필요 없다. 중고로 하는 자선이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나는 부담 가지지 않고 네 자선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까? 대부분의 좋은 관계들은 아마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앞으로 평생 내게 그런 것을 확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에는 분명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필승법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하면서였다. 나는 그 소식을 그의 전학 소식과 함께 들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살던 그 윗동네의 그럴듯한 단독주택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연민과 배신감에 휩싸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는 조악하게 딱지 모양으로 접힌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랬어야지'라는 표정으로 서둘러 그것을 주웠다. 거기에는 다음처럼 적혀 있었다.
<친구. 나는 네가 나에게 무얼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그것은 내 의지로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줘. 우리 가족은 황급하게 이사를 가야만 하거든. 그래도 우리의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은 그런대로 즐거웠지? 그거면 된 거야. 보증 같은 것은 앞으로도 서줄 필요가 없어. 네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앞으로 내 삶은 조금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우리의 관계는 온전할 거야. 그렇지? 우리가 앞으로 당분간 만날 수 없다고 해도 말이야.>
어려서 할 수 있는 멋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고 떠날 자격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점에서는, 그가 자신의 일관성을 위해서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일관성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를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는 없지만, 아마 너는 그것보다도 나를 과소평가했다. 나는 너를 동정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너는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너는 아마도 바로 그러한 불신 때문에라도 사라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때 그 어린 날에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아는 네가 그때 그 모습대로 자랐다면, 너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콤마 상태에 있는 너를 보고 있다. 10년 만에. 너는 내게 보증을 서 달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여기까지 이렇게 온 것이냐. 나는 너에게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냐. 그러나 관계는 네가 죽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데 말이다. 너는 나의 무엇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시험하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도망치다가 부러져 버린 것이냐.
일관성을 위해서 사는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 있다. 그것 하나를 위해서 살다가 스스로 그 높은 허들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어겨서 부러진다. 그렇지 않다면 사상을 위해서 살다가 몸이 부러진다. 나는 네가 너의 일관성이라는 것을 위해서, 혹은 우리 둘의 관계를 위해서 부러졌다고 생각했다.
그의 곁에 잠시 앉아 있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너의 부모님인 것 같았다. 나는 아마도 그 분위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쉽게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니까. 네가 그 쪽지를 남기고 떠났을 때, 나는 왠지는 모르지만 그 편지 뒤에 네가 억누른 삶에 대한 불안과 슬픔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랫동안 아파했다. 어쩌면 나도 너를 조금은 닮아갔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감내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후 십 년의 시간 동안 천천히 배워왔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넘실대는 마음들은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으면 곧잘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네 모습을 보고 누구 울음이라도 터뜨린다면, 내 마음도 함께 둑이 무너지듯 그리 울어버릴 것 같았다. 사람이 울음을 겁내는 이유는, 그렇게 우는 순간 세상이 끝날 것처럼 걷잡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모두 부서지도록 한다. 세상은 늘 그대로 있는데, 나 자신이 대신해서 부서진다.
나는 병실을 잘못 들어온 사람 마냥, 두 사람을 모른 체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빠른 걸음의 끝에서, 비상구의 문이 닫힐 때쯤 희미한 비명을 들은 것도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세상은 어떤 한 인간의 세상이 파괴되는 줄도 모르고 여기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것조차 보고 싶지 않아서, 여전히 파랗게 펼쳐져 있는 태평한 하늘을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고 조용한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리깔았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돌아다니다, 두어 번 가보았던 바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을 때라, 사장님은 뜻밖이라는 눈치였다. 그는 늘 조용하게 사람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종종 사장님의 그런 태도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부터 시중에서 보기 힘든 애일 맥주와 와인까지, 분명히 여러 술들이 즐비해서 구색은 갖춰진 바였지만, 그냥 동네에 있는 작은 술집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마치 유럽의 유서 있는 바텐더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우습다는 생각은 곧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왜 행동하는지 알 때, 오히려 그 사람의 행동은 종종 분위기에 적응하기는커녕, 분위기가 그의 행동에 적응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하는 어느 첩보물의 신사처럼 행동했다. 토킹 바의 마담에게 주정이라도 부리는 놈들이 한 번이라도 찾아오는 그런 곳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그게 좋아서 종종 그를 찾고는 하였던 것이다.
나는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그에게 칵테일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술을 잘 모른다. 진열되어 있는 술 앞에서 나는 늘 압도되기 일쑤였고, 아마 술에 잔뜩 취해서 호기롭게 방문해보지 않았더라면 평생 여기는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장은 내가 처음 왔을 때 부담 가지지 말라고 말했다. 부담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모르면 물어보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자신은 설명하는 것이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술을 알고 오는 사람은 원래 없다고도 나를 안심시켰다. 그 뒤로 나는 이것저것을 물었고, 곧 다시 잊어버렸지만, 사장님은 여유가 있다면 늘 내가 무엇을 마시고 있는 건지를 성실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때 나는 소주만 퍼마시는 것 말고도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것저것을 능숙하게 섞었다. 그리고는 갈색 빛깔의 그것을 유리잔에 얼음과 생 라임을 띄워서 내놓는다. 나는 그것을 단숨에 마셨다. 처음에는 단 맛이, 그리고 그 단맛이 가시자 뜨끈하고 독한 기운이 내 몸 안에 퍼져 들었다.
"파우스트예요. 75도짜리 럼에 카시스 리큐르와 라임을 넣었죠. 처음 느껴지는 단맛에 속아서 들이키다가, 뒤에 찾아오는 럼의 기운에 당황하기 십상입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고 젊음을 얻은 뒤에 호되게 당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걸 왜 마시고 난 뒤에 말하냐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뭔가 마셔야 할 때는 차라리 이런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벌써 취하는 것 같았다. 같은 걸로 한잔 더 달라고 말하고는, 부러지는 것과 바스러지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아냐고 물었다.
"그건 좀 이상한데요? 두 단어 사이에는 별로 관련성이 없어 보여요."
그가 의아하다면서 반문했다. 나는 왜냐고 물으니, 그가 답한다.
"부러지는 것의 반의어는 구부러지는 거예요. 바스러지는 것의 반의어는 닳는 거고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덧붙인다.
"구부러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만이 부러질 수 있습니다. 나무젓가락은 아무리 구부리려 해도 결국 부러지죠. 구부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사는 끊기 위해서는 먼저 계속해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그걸 금속 피로라고 하나요? 그리고 바스러지거나 부서지는 것은 부러지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닳는 것에 대응해요. 다이아몬드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에요. 다이아몬드는 망치로 치면 부서집니다. 다이아몬드는 경도가 센 거지 강도가 센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흠집이 나지 않는 대신에 파괴됩니다. 그러나 부서지지 않는 것은 강도가 세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강도가 센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경옥이예요. 그리고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인간만이 닳으며 살고, 절대로 닳지 않으려는 인간만이 결국 부서지게 됩니다."
"사장님은 나무젓가락과 쇠와 다이아몬드와 경옥을 예로 드셨지만, 사실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네요."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속에서부터 피어난 알코올의 느낌은 이제 내 몸 밖으로 스며 나와 머리에서부터 허리 아래 춤까지 나를 뒤덮고 있었다. 말을 붙들고 있는 끈들은 그러한 취기가 덮어주는 이불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사장님,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부러지는 사람일까요? 구부러지는 사람일까요? 부서지는 사람일까요, 닳은 사람일까요."
"그건 제가 알 수 없지요. 저는 손님을 모르니까요. 손님의 정보는 손님한테 다 있어요. 우리가 개념들을 구분할 수 있고, 반의 관계로 그것들을 아무리 대응하고 나열할 수 있다고 해도, 제가 손님을 안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무엇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해도, 그것에 손님이 동의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저는 모르지요. 물론 손님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제 판단은 여전히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에 대한 제 판단이 저의 손에 있는 게 아니라면, 사장님은 과감하게 저를 판단하는 것에 베팅해도 상관없을 텐데요."
"그것은 우리의 대화가 정말로 손님의 마음에 대한 진위를 밝히는 것에 있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술집의 사장님일 뿐이고, 저도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이 손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인지를 찾아보는 거죠. 제가 오늘 이것저것을 섞어서 손님에게 술을 내왔듯이요."
"그래요? 그러면 어쨌든 사장님은 저를 잘 모르고, 저에 대한 정보는 사실 제 자신에게 모두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사장님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나요?"
나는 나의 말이 무례로 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사실 스스로에 대해서 막연히 설명해보라는 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좋아요. 제가 손님에 대해서 아직은 모르고, 정보는 손님에게 다 있다고 말했으니, 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겠군요. 사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래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부러지는 것과 부스러지는 것, 구부러지는 것과 닳아 헤지는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옳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손님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왜 그렇죠?"
"제가 손님을 판단한다고 해서, 그것에 손님 스스로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방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가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말도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불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대화가 실패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판단과 타인이 내리는 판단은 그렇게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불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사실은 비관적이라기보다도, 다른 판단이 지칭하는 동일한 한 사람의 무엇을 오히려 보증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제 스스로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만큼, 손님도 제가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러죠. 그러면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여기까지 이른 것을 보면 알겠지만, 저는 원래 천성적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은 제 자신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도 더욱 그렇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한 어떤 판단이라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이러한 성향은 아마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척하면서 더욱 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부러지는 사람이라기보다도 구부러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모순을 싫어하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은 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느라 부러지는 것이 더 싫기 때문입니다."
사장의 말을 쉽게 따라가기 어려웠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척하면서 더욱 숨기고 싶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나의 판단을 수용하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배제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는 지금 사장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은 지금 두 가지 점에서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은 스스로가 틀릴 수 있다고 말했고, 누군가 자신에게 그러한 지적을 한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제가 사장님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면, 결국 사장님의 의견은 사실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사장님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면, 당신의 말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당신의 말을 우선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고집하는 것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군요. 결국 제 말을 듣는 척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그는 내 말을 공격으로 듣기보다도, 적절한 반론이라며 흥미로워하는 듯했다.
"그 말은 진실입니다. 물론 저는 그러한 역설조차 진실이라고 하면서 손님의 말을 회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럴 때에는 제 구체적인 인생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 정보는 제 안에 다 있지만, 우리는 또 개념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좋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요."
"그것은 문제없습니다. 저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바텐더입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만큼, 제 경험을 팔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의 규칙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거죠."
"그 이야기는 결국 저도 제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군요."
"처음에 손님 자신에 대해서 물었을 때, 제가 정당하게 내린 판단을 듣고 싶다면, 아마도 그래야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용하게 웃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무례를 무릅쓰지 않고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데 흡족해 보였다. 그는 그러며 말을 잇는다.
"어쨌든 저는 제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원래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원까지 갔었죠. 아마 부러지는 것과 부서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을 그때 생각했던 이야기들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러나 손님 그걸 아시나요?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다고 믿으며 하는 인간 심리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제게는 아직도 중요하고 또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즐거운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때로는 두려운 일이죠. 즐겁게 하는 일들도 결국 업으로 삼는다면 언젠가는 잘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나가면서 깨달은 것은 제가 하는 것은 기껏해야 인간들을 줄 세우고 분류하고, 잡담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뿐이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웠죠. 제가 선택한 길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와 융, 아들러와 라캉. 또 다른 한쪽 날개에서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벌이는 실질적인 실험과 뇌 과학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처음에는 자유롭게 헤엄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안에서 겨우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죠. 제가 그럴듯하게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분명히 좋아했고,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공부를 하기에는 저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저는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라는 것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는 집안에서, 저는 아버지의 의견에 저항하다가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순응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로부터 더욱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다는 양 도망쳐 버린 거죠. 저는 제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버티는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이 자리에서 손님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제 지적 호기심을 자잘하게 쓸어 담는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부러지는 사람이 아니라 구부러지는 사람이고,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기꺼이 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저는 자평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저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 사장님이 하는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하나의 가게를 굴러가게 만드는 일은 책을 읽고 쓰는 것보다 종종 더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이제 개념 싸움이 아니라 조금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이 일은 쉽지 않고, 실제로 저를 좌절시키는 일들은 많습니다. 손님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대화를 마음껏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만, 다른 모든 손님이 그런 것은 아니고, 알코올을 공부하고 섞는 것은 육체적인 기술이 필요하며, 연마해야 하는 일이지요. 어떤 점에서 어려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포기한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종종 순수한 즐거움은 정말로 해야 한다고 믿는 일들을 저 너머에 세워두고서, 포기를 통해 선택한 일을 통해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제가 가지 않은 길을 곁눈질하면서 지금 하는 일에 자격지심과 동시에 위안을 얻고 있는 겁니다. 저는 레시피를 외우지만, 이것을 탁월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칵테일 콘테스트를 한 번이라도 참관해보면 그건 분명해집니다. 실제로 타협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도피하지 않고 이 일에 정말로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 사람들은 포기하고 선택한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히 아닙니다. 그 안에서는 아무리 미식의 세계가 단순한 우열의 세계가 아니라고 해도, 최고를 노리는 사람들은 미슐랭 별 하나를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우승자가 생기고 패배자가 생깁니다. 꿈을 극단적으로 좇는 사람들은 패배해서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끝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정진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스스로 그런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사장님은 여전히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고 그를 주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순히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우리의 대화를 추적하면 당신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말하면서 그 포기한 것의 부분들을 여기서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당신을 휘어지는 대신에, 부러져서는 안 될 것을 여전히 붙들고서는 버티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러한 지적에 그는 매우 흥미로워하면서 대답했다.
"그 말은 대단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제 안에 중요한 것이 여전히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치게 호기로워 보이지 않는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을 해보죠. 저는 구부러지는 인간이되, 사실은 구부러지지 않는 인간이다. 제가 스스로 묘사한 것이 지나치게 왜곡된 시선에 의한 게 아니고, 또 손님의 판단을 제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이런 모순된 말을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결국 모든 인간은 어떤 부분에서는 구부러지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러질 때까지 버틴다는 말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대신해서 이렇게 묘사하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구부러지는 인간이지만, 파괴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는 차라리 경옥의 비유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내 진로를 바꾸기 위해서 자잘한 상처와 위반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늘 단단한 강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이에 응수한다.
"저는 오히려 다이아몬드가 더 나은 비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긁히지 않는 대신에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이아몬드가 언제라도 파괴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자극들을 피하려고 애를 쓰다가 마침내 파괴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구부러지는 인간이 언제라도 구부러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기꺼이 부러지지 않기 위하여 구부러지는 인간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강도가 강한 인간은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기꺼이 모든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의 인간은 그 어떤 상처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부서지는 것이지요. 사장님은 상처 받지 않으려고 구부러지는 사람이고, 부서질 수 있지만 결코 부서져서는 안 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상하게 나의 어조는 취기에 의해선지, 감정이 실려 있었다. 나는 내 목소리의 떨림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능란하지만 수동적인 사장의 태도는, 나의 도전 욕구를 부추겼다. 이 게임에서 흥분하는 것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그 말은 제가 스스로 구부러진다고 묘사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보다 조금 더 아픈 말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리고 저는 그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구부러질 겁니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요. 그런데 좋습니다. 무례하지 않다면 저도 이제 손님에 대해서 조금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손님은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다가 누군가가 생각난 것이 아닌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투영한 것은 아닌지를 궁금하게 했습니다. 손님께서 먼저 이 주제에 대해서 화두를 던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 그 친구를 떠올렸다. 경옥처럼 단단해서, 그 어떤 상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 그러나 파괴되어 누워있는 사람.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의 강직함과 자유로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어려움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그 모습도 그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나를 어떤 점에서는 믿었을 것이다. 더는 내게 자선을 베풀지 못할 너라 해도 나는 절대로 등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너는 생각한다. 나는 그런 너를 눈뜨고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를 동정하고, 무언가를 더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할 것이다. 아마도 네가 견디지 못한 것은 나의 그런 표정과 몸짓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냉소를 보내고 등지는 것보다 그것이 더 괴로운 일이었을게다. 그래서 너는 차라리 나를 과소평가하는 길을 선택했고, 너는 나를 믿지 않는 주제에, 나를 시험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장했다.
"저는 있는 대로 구부러지다가 결국 부러지는 인간을 봤습니다. 저는 이제 그런 인간이 넌덜머리가 납니다. 그들은 다른 인간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버티다가 부러지는 인간보다 더 혐오스럽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말했듯, 누구나 부러지는 부분이 있고 구부러지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저는 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제 사장님의 판단도 온전히 들을 수가 있겠죠. 그러나 아직 제게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만한 충분한 정보가 없습니다. 단지 옛이야기를 몇 개 알고 있을 뿐이죠.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보다는 경옥의 비유가 더 어울리는 인간이었습니다. 스크래치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그가 파괴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결국 파괴되지 않으려고 저를 떠났습니다. 그 친구도 결국 파괴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마침내 부러지는 인간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 구부러지다가 마침내 부러져버리는 인간이었고, 강직한 척 스스로를 내세우면서 사실은 그 어떤 스크래치 하나를 견딜 수 없어서 마침내 파괴되는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비유를 통해서만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올리는 구체적인 상상들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모든 인간은 얼마간 구부러지고, 또 구부러지다가 끊어지는 철사처럼 무릎 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모든 생물이 그렇듯 적응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물이 적응해낸다고 해서, 내가 늘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수영을 배우고 또 능숙해진다고 해서, 덮쳐오는 해일에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깨지지만, 경옥도 결국에는 깨집니다. 그 파괴된 사람을 부순 것은 스스로의 강도와 경도, 휘어짐과 저항 사이에서 이겨내기 힘든 세상이 단순히 덮쳐왔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친구가 저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파괴되건, 휘어지건, 닳고 닳아서 모래가 되건, 저는 그 친구가 궁금했습니다. 잘 지낸다는 말을 들으면 좋았겠지만, 잘 지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 친구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다시 그때 그 물음을 생각했다. 나는 100미터를 몇 초에 주파하던가? 나를 믿지 못할 만큼 견딜 수 없는 삶의 소식을 듣고 나는 무력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네가 나를 시험하지 않은 만큼, 나는 스스로를 사고 실험 속에 내몰고 있었다. 내가 감히, 네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왜냐면 나는 그 시험에 아직 한 번도 통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할 말이 있었다.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시험하지 말자고. 저는 그 말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상대가 내게 해줄 수 없는 일이 있어도, 그래도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우정이 영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해주지 못해도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를 시험하지 않는다는 말로, 관계를 과거에 박제시켜 둔 채로 나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싫습니다."
사장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상태를 가늠하더니, 맥주를 한잔 더 내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러면 이제 그것이 시험이겠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생각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네요. 누군가를 믿게 되면 의지하게 되고, 의지하다 보면 기대하게 되죠.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상대에게 시험을 치르게 만들고 또 실망하게 되죠. 그것은 종종 사랑의 증거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친구에게는 손님분이 꽤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그 친구가 양보하지 못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깨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결국에는 시험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상대에게 치르도록 하지 않는 만큼, 늘 자기 스스로를 시험에 들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공복에 슬금슬금 나를 타고 내려와 뱃속에 고인 술이 쓰라렸다. 사장은 석화를 몇 개 씻어서 내주었다. 비리고 향긋한 바다향이 파우스트에 퐁당 잠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위를 맥주로 덮었다. 다듬어진 논의들에 그를 끼얹어 두루뭉술하게 만들었다. 사장의 이야기는 틀린 것이 없었다. 어쩌면 그게 너의 방식이다. 너는 내가 이렇게 서운해서 화라도 낸다면, '그것 봐, 너는 감당할 수 없잖아'라고 말하며, 웃으며 달아날 것이다. 그게 네가 내 화를 돋우면서도, 동시에 화를 내지 않도록 봉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리를 벌렸던 너는, 영원히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영원한 거리를 두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물었다.
"그래서 사장님, 저는 어떤 사람이지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듣고 보면 결국 저는 친구분 이야기만 들었지, 손님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사람은 결국 최후에는 부서지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휘어도 끊어지게 되어 있고, 또 부러지는 인간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구부러질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알량한 것이든, 위대한 것이든 뭐든요."
나는 말한다.
"그것은 이미 다분히 맞는 말인 대신에,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긴 거 같은데요."
"그것은 맞습니다. 그러려면 아마 다음에 손님의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면, 사실 친구분과 선생님은 별로 다른 사람 같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아마도 이것은 사람들이 늘 안과 밖을 반대로 가질 때 느끼게 되는 동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부러지는 인간은 사실 그 속이 더 단단하고, 겉으로 휘는 인간은 속이 더 여린 법이니까요. 손님은 착하지만 우직한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상처는 덜 받을 겁니다. 쉽게 마음 쓰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은 더 빨리 자신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일 테니까요. 그 친구는 단지 아무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룰을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한번 다치면 다시는 낫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거지요."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았다. 그 이유는 결국 영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러한 생각과 함께 악마에게 혼을 빼앗긴 것 마냥 더 깊게 취해갔다. 인간은 언젠가는 파괴된다. 그것은 영혼의 강도가 얼마나 강하건 간에, 바로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힘으로 내려치게 된다면, 부서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결국에는 파괴되리란 증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내주는 순간, 더 중요한 무엇이 그렇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우리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나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네 빈자리가 그리웠다. 그런 내가 느끼는 서운함과, 잠들어 있는 너의 몰골에서 느낄 수밖에 없던 슬픔은, 네가 구원한 그 관계를 기꺼이 포기하고, 또 내가 영영 홀로 남는다고 하여도, 네 안녕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도록 하였다.
나는 사장에게 돈을 지불하고, 다음에는 내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게 사장 자신에게 흥미로운 주제라면 그러겠다는 단서조항도 덧붙였다.
"얼마든지요. 사실, 바텐더를 위한 주제를 묻는 사람은 드물지요.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보죠."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취기에 맞는 바람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너는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였다. 상태가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는 증거인 지도 모른다. 너의 어머니는 나를 반갑다며 맞이했고, 나를 보면서 울었다. 곧 깨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태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너를 보니, 나는 예전에 네가 어떻게 웃고 떠들었는지가 더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과거 어린 날의 기억 위에 오로지 고요하게 잠든 얼굴만이 덧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고요하게 덮여있는 저 눈꺼풀이 걷힌다 해도 너는 울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모든 것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부서져서는 안 될 무엇을 위해서, 사람들은 모두 다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말 하나로 다툼을 벌이고, 더는 다투지 않기 위해서 헤어진다. 그냥, 조금의 안부 인사와, 잡담으로는 어느새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를 만나게 했고, 또 그것이 우리를 타인으로 만든다. 나는 네가 내지 않은 시험을, 스스로 출제해 되풀이해본다. 네가 백 미터를 몇 초에 뛰는지 아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한번 꼭 스스로 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서로를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관계에 좋다는 네 이론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너는 그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템포를 놓쳤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몇 초에 뛰는지를 안다. 나는 너를 시험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나를 시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시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날의 작은 다짐이었을 뿐, 그조차도 타성 안에서 잊어졌다.
상태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또 그보다 더 오래 지켜보기로 했다. 네가 일어나면, 나는 너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해 줄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서 병원비를 보태지도, 너를 부축해주지도, 과일을 사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네게 그 어떤 도움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사는 것이 빠듯하다. 나는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학자금 대출도 다 갚지 못했다. 사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너는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것이고, 대신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냥, 앞으로도 종종 여기에 들러 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이며, 네가 숨어버린 이후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강제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얼른 건강해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네게 내는 시험이다.
부스스스 바스러지는 마음 안에 네가 붙들고 있는 것과,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또 모르지.
키워드 : 부러지는 것과 바스러지는 것 [출제자 : 윤창진]
칵테일 관련 감수 : 김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