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것은 사랑의 권태라는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인간들은 그들의 가족을 물어 죽이고 달아난 악어를 잊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짓을 그녀에게 했었건 간에,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주목하고 또 분노했다. 그들은 기꺼이 복수심을 갈고닦았고, 그 복수심을 기꺼이 실현했다. 그러한 복수심의 실현은 기껏해야 그들이 해대는 수많은 밀렵에 의해 산더미처럼 쌓이는 동물들의 시체의 양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대신해서 그들은 악어의 시체를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것이 가죽을 위해서 살해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살해했다는 하나의 증거였을 것이다.
익숙했던 습지는 어느덧 음산함으로 가득 찼다. 늘 같은 하루에, 여전히 그 모든 곳들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음에도, 이제 그곳은 순식간에 낯선 곳이 되었다. 그는 불안한 기색으로 총총거리며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오갔다. 어디에도 그가 찾는 것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에 얽매여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모든 삶이라는 것을 기꺼이 포기했다고 믿은 뒤에도, 곁눈질을 하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악어새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누군가가 너무나도 손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심지어 잃게 된다면 그런 권태라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기분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상실이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로 상실을 겪어본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나갈 수 있을 정도로 발생 가능한 것들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상실에 한한, 그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때 우리는 느낀다. 실제로 우리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권태를 사는 모든 인간들이 그 마음을 아무리 다잡고 한갓 지금에 충실하려 한들, 상실 후에는 그 지난 삶에 충실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실 앞에서는 후회조차 덧없는 것이지만, 후회에 대안이라는 것도 없었다. 하루에 열 번씩 소중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그를 잘 알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사라질 때, 더 감사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제로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실이라는 것 자체가 소중함이라는 것을 그 상실한 자의 마음 안에서 직접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이다.
악어새는 이제는 그가 기꺼이 포기했던 하늘을 무감각하게 올려다본다. 그는 되려 땅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은 괴로운 순간을 더욱 떠올리게 했다. 총구가 가장 겨눠서는 안 될 그것을 겨눴다. 그를 가로막기에 그녀는 너무 거대했고, 그는 너무 작았으며, 탄알은 잔인하게 신속했다. 떠올리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써도, 결국에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장면들은 순식간에 반복 재생되었다. 강물에 피가 스멀스멀 퍼져서 그것은 더 낮은 곳까지 흘러들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시체였다가, 나중에는 온갖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갔다. 그는 탄알이 관통하는 순간에 비해 너무나도 길고 지루한, 그래서 더욱 견딜 수 없는 해체의 시간들로부터 달아났다. 생각이 이에 이르면 그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억지로 발굴해낸 그의 권태를 스스로 원망하고 난 뒤에도, 그는 차라리 짜증을 내고 싶었다. 너는 언제라도 자신을 떠나라고 이야기했고, 그러나 나는 꾸역꾸역 사랑하는 행세를 하며 그 곁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행세도 무엇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괴롭기 때문이다. 이렇게 끝날 것이었다면, 너는 내가 떠날까 봐 감히 불안하고 슬퍼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내가 언제라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네게 입증하기 위해서 온갖 애를 다 써야만 했고, 그것에 모든 것을 할애하느라, 실제로 내 안에 있는지 모를 권태와,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은 여남은 욕망이 있는지에 대해서 늘 검열하고 싸워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집중하고 노력해왔던 터이므로, 나는 반대로 네가 나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 홀로 남아서, 이제 준비되지 않은 세상에,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기분을 마주해야 한다. 너는 차라리 내가 떠난 후에는 덜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증명되었다고 자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것 봐. 너는 언제라도 나를 떠날 줄 알았어. 그게 새라는 족속들이지. 언제라도 찾아와서 누구보다 쉽게 훌쩍 떠나는 게지. 그래 갈 거라면 미리 가라. 나에게 사랑이라는 믿음을 주지 말고, 나를 기대하게 하지 말며, 그리하여 나를 의지하게 하지 마라.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될 테니 - 그러면 너의 마음은 조금은 편해졌을까? 오히려 나의 가설들은 모든 것이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이 증명되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으며, 우리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공생관계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 관계가 사라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옳았고, 떠난 것은 너였기에, 악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 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녀의 사치스러운 불안과 그의 사치스러운 권태는 사실 모두 불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늘 지금을 살았으면서도 동시에 벌어지지 않을 미래와, 두고 온 과거에 그 지금을 할애했다. 악어새는 이제야 지금으로 돌아왔다. 상실 뒤에 드러나는 존재의 문제에 한한, 지금으로의 돌아옴은 늘 늦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돌아옴이라는 것의 순리이기도 했다.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지금이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은 반복되었고, 돌아갈 수 없는 좋은 추억들은 되찾을 수 없는 것이었던 탓에 악몽이 되어 돌아온다.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것들은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남았고, 홀로 잠드는 나날은 그만큼 지독하게 낯선 것으로 되었다. 그런 뒤에도 이 모든 끔찍함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또 너무 지나치게 없었다. 괴로울수록 깨달음은 깊어가고, 깊어진 그 깨달음이 지금을 분명하게 해 주었다. 그 분명해진 지금은 다시 괴로움을 한번 더 관통해, 괴로움을 괴롭게 했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대로 있던 하늘이 나에게로 쏟아져 내렸고, 나는 그로부터 도망쳐, 네가 쓰러져 있어야 할 곳으로 날아 되돌아갔다. 그 자리에 너는 없었다. 누군가가 물어갔는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내려가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유유히 헤엄치던 그 물가에는,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 대었다. 강물에 달빛이 일렁였다. 물이 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물에 비친 달빛을 가르고 유유히 밤공기를 지날 때에도, 내가 떨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늘 네 등에 올라타, 이 밤을 누볐었다. 너는 내가 너의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에도 이 긴 밤을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가 딱딱 거리며 부딪혔다. 추위가 모든 것을 실감하게 했다. 밤공기는 분명하게 너를 알렸다. 너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한 밤에, 여기에 그가 있을 곳은 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