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꽉 쥐고 있던 것을 놓았다. 그리고 그 손을 풀고 난 뒤에야 눈을 떴다. 기나긴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았다. 무엇을 추구했던것 같다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것 같다가. 준비와 마무리의 언저리에 있던 그런 여행. 너무나 중요한 것을 과거에 두고 온 것 같았다.
나는 베개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든다. 어슴푸레한 새벽. 창문으로 푸른 빛깔이 흘러들어와서는 어두운 방 안의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었다. 어젯밤 뉴스에서는 드디어 첫눈이 내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문 밖의 검푸른 하늘은 내게 충분한 정보를 줄 수 없었다. 나는 문득 그 눈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침대에 작용하는 중력은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나는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변명하기 위해서 밖에 내렸을지도 모를 그것이 첫눈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시도한다.
아는가. 첫눈의 사전적 의미는 "그해 겨울에 처음으로 내리는 눈"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 해'에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한 번 뿐이지만, 겨울은 늘 두 번이다. 겨울은 그 해가 그쳐갈 때 즈음 시작하여, 다음 해가 시작할 때 즈음에 그쳐간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계절을 지나서 다시 그 겨울을 만날 때, 그제야 그 겨울이 올해 첫겨울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겨울에 본 그 눈이 처음인 줄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한 해를 겨울로 시작했고, 어김없이 그 늦겨울에도 눈은 내렸다. 그래서 올해 12월의 한 복판에 있는 내가 마주할 저 눈은 그것이 언제 어떻게 내리든 올해 처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처음은 이미 예전에 지나갔을 것이며, 그렇게 지나간 처음은 더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유래 없이 따뜻한 올 겨울의 뒤늦은 첫눈은 사실상 처음도 무엇도 아니다. 개뻥이다.
처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그것이 처음이 아니라 말해버리는 것이면 충분하다. 호들갑 떨지 말자. 우리는 이미 수 없이 많은 겨울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우리의 처음은 정말이지 먼 과거의 어느 날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싱크대가 나의 정수리보다 높았던 시절에, 하늘에서 눈이 내려온다는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날에 말이다. 나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늘에서 마치 눈알이 내리는 것은 아닌지를 물었던 그런 날에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보는 나의 이 두 눈과, 하늘에서 수없이 많이 내리는 제각기 특수한 얼음 결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던 그런 날에 말이다.
그조차도 처음은 아닐 것이다. 내 두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구분조차 할 수 없었던 날에, 그리고 내 눈과 손과 발조차도 구분할 수 없을 그런 해에도, 내가 요람에 누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옹알거이던 시절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두 번 찾아왔을 것이고, 그 두 겨울에도 눈은 왔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눈'의 정의를 바꿔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첫눈을 부정하는 대신에, 첫눈의 정의를 뒤바꾸는 것은 어떨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첫눈이라는 것은 우리의 기억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시작했던 그 겨울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언 땅을 녹이며 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봄이 끝나며 가장 뜨거운 시절이 오고 가고, 그 땀방울이 마른자리가 서늘해질 때 즈음에 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그 안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겨울의 지독한 고독과 비관을 넘어서, 다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마음에 발맞춰 무언가를 불태우다가, 다시 또 찾아오는 쓸쓸함. 마음은 지난겨울을 지나며 고독을 잊었듯이, 다시 겨울을 만나며 지난 열정을 잊는다. 그런 뒤에 지친 마음을 식혀주듯 그렇게 하늘에서 무언가 내리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첫눈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이처럼 첫사랑의 정의를 바꾸기도 했다. 처음이었던 것 같은 그 사랑은 사실 첫사랑이 아니라 풋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잊을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야 지금에야 보이는 저 눈발을 첫눈이라 규정하면서, 다시 또 내 마음을 붙드는 사람을, 지금 내 마음에 걸리는 그 사랑을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잊힌 어떤 사랑을 처음도 무엇도 아니라며 지워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었건 어쨌건, 그것은 거짓이지 않은가? 그렇게 제멋대로 우리의 기억에 의존해서 첫눈과 첫사랑 따위를 마음대로 이름 붙인다면, 그것은 기만이지 않은가?
"맞아. 똑똑하네. 그 눈은 세상을 보는 눈이고, 저 눈은 비가 얼어 내리는 눈이란다."
그렇게 말하던 엄마의 말을 들으며, 마침내 세상의 눈을 구분할 수 있게 된 날에. 그때 내리던 그 눈이 우리에게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어쨌건 지금의 첫눈은 첫눈이 아니다. 아주 어린 날에 가슴 졸이며 해보던 짝사랑의 추억이 이제는 아주 흐릿하게 남았다고 할지언정, 이제야 겨우 어른의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을지언정,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니고, 따라서 첫사랑이 아니었다고 쉬이 장담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시절의 우리가 지금에 분노할 것이다.
우리의 시작은 모두 어설프지만, 그것이 어설프다 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설프기 때문에 진지하다. 그래서 신중하다. 모든 능숙한 것들은 오히려 진지하기 어렵고 또한 신중하기 어렵다. 사랑한다는 말이 부끄럽고, 어설퍼서, 그래서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밤들을 지새워야 했던 그 처음이라는 것은, 고민 끝에 그럴듯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민할 수밖에 없을 만큼 어설프다. 초겨울 햇살에 첫눈이 쉬이 녹아 버리듯이 말이다. 그 취약함 때문에 우리는 처음을 잊어버리나, 혹은 모멸의 추억과 아픔 때문에 억지로 잊고자 할 것이나,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것은 처음이었고, 그 처음을 처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려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잠에 덜 깨어서는 스스로가 한 말에 대해서 스스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조차 비몽사몽으로 행사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정당화하고 또 무엇을 막으려고 하는가. 오는 첫눈을 첫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저항이다. 지금의 내가 너무나 가볍게 부정하려고 하는 것. 지난 눈 내리던 날의 추억과 같은 것들.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나 쉽게 모든 것에 '처음'이라 이름 붙이는 것이 불경스럽다고 느낀다.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눈밭에서 누군가와 함께 뒹굴던 기억. 나는 눈 뭉치를 만들어서는 도망가는 그 사람의 뒤통수에다 던져버리고서는 깔깔 웃어버리고 말았던가. 그리고 그렇게 입을 벌리고 웃다가 반격으로 가해진 눈 뭉치는 내 입에 퍽 하고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날의 웃음과, 그 눈과, 그 사랑조차 정녕 처음이 아니었을지언정, 바로 그 이유 때문에야 오늘 내렸을지도 모를 이 눈 역시도 처음이 아니다. 그날에 분명히 사랑했고 또 눈이 내렸는데, 도대체 앞으로 또 무엇이 계속해서 '처음'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어떻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날의 꿈이 희미해지고 동시에 내 의식이 또렷해질 때, 나는 내 분노와 실망감의 원인을 자각한다. 그러나 자각할수록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그 꿈은 내 의식 곁에서 사라져 간다. 나는 사라지던 바로 그것을 움켜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움도, 분노도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새하얀 세상. 스산한 바람과 냉기가 나의 품을 타고 들어왔고, 그것은 내 몸을 타고 바닥에 깔리는 듯하였다. 유난히 따뜻했던 올해 첫겨울. 아니, 올해 두 번째 겨울. 그 따뜻함과 갑작스러운 한파가 한 데 엮여서, 이 눈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많이도 쌓였던 것이다. 나는 이 눈이 쉬이 녹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나는 마침내 흐릿하던 꿈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기로 한다.
꿈의 해석. 그것은 전적으로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나의 꿈은 그리움도, 분노도, 실망도, 여남은 사랑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미안함이다.
서툰 사랑 고백을 하던 날, 누군가 내게 미안하다 말했듯이. 그 거절의 미안함은 그 사람의 애정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미안해하는 그 애정은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을 그가 죽어도 내게 줄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알려주고 있었다. 매몰차지 않은 거절. 그것이 가장 아픈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도 아플 줄을 알아서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이고, 그 때문에 나는 아프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의 내가 이제는 지난밤의 꿈에게 미안하다 말해보는 것이다. 처음의 순간들을 잊지 말아 달라며 밀어닥치는 그 꿈에 더는 부응해줄 수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잊었기 때문에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것들은 언제까지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이야말로 처음이라며 호소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처음이라는 시절이 저 너머 우리의 뒤꼍에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의 뒤꼍에 놓인 우리의 철 지난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다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대했다.
'떠나지 마라. 이 마음이 처음이다. 이 눈이 처음이다. 그와 함께 했던 순간과 그와 함께 맞았던 모든 것들이 바로 첫사랑이고 첫눈이다.'
그러나 이제 그 처음은 끝났다. 사랑은 끝이 났고, 눈은 녹았다. 그래서 이 사랑과 눈은 모두 다 거짓말이었다. 그것은 거짓말이고, 나는 앞으로 모든 처음을 믿지 않을 것이며, 눈도 사랑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그렇게 처음은 흘러가 버린다. 처음을 위한 기회는 다시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한다. 새로운 것에 희망을 가지려 한다면 그 뺨을 후두려 갈겨 버릴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그렇게 수많은 계절이 흘러서, 계절은 한 없이 따뜻해져 갔고, 우리 마음의 상처에는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혼자가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 그 무엇도 더는 내게 필요하지 않다.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다짐해 버린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길. 나는 그곳을 밟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충동은 그것이 정녕 언제로부터 어떻게 처음이었는지가 아니라, 그저 새하얀 그것에 함께 일렁이는 마음으로부터 발생했던 것처럼.
턱을 만지다, 꺼끌꺼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문득, 면도가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드라이를 맡긴 셔츠를 찾고 싶다.
악에 받쳐 부정하다가,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며 나아가려다가. 그리고 마침내 거짓이었던 것들을 더는 부정하지 않게 될 정도로 완전히 지워버렸다가.
다시 새로운 것들은 거짓말처럼 내렸다.
첫눈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내리는 것이다. 믿지 않으리라는 다짐조차 사라질 무렵에, 기대하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던 그런 날에, 사랑은 거짓말처럼 다시 찾아온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청산을 끝내 버리고, 기대하지 않은 그것이 거짓말처럼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 거짓말은 어설픈 미안함과 기억들을 압도하는 것처럼.
그런 내가 오늘의 거짓말 같은 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신은 이제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아직은 쓸 데 없이 너무나 이른 시간. 너를 만나러 가기에는 아직 너무나 이른 날의 새벽. 정신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었다.
면도를 한다. 그리고 드라이를 맡겨둔 옷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는 샤워를 할 것이다. 향수를 고른다. 우리는 정오가 되어서야 만날 것이고, 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그 눈을 함께 밟으며 무언가를 먹으러 갈 것이다. 첫눈을 함께 맞았다고 말하며, 그 거짓말 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할 것이고, 그 사랑을 다시 처음이라 말할 것이다.
저 먼 과거가 아니라 조금만 기다리면 다가올 코앞의 오후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 사람의 목 언저리와 손등의 굴곡 같은 것들이 그려지고, 나는 그것을 건드리고 싶다. 조바심과 설렘 같은 것들이 마음을 참을 수 없이 비집고 나와서는, 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부정출발을 해버릴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면도를 하고, 세탁을 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갖춰 입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만진다. 준비와 마무리가 교차하고, 나는 준비를 하면서 마무리를 완성한다.
'그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묻는다. 나는 어떻게 했던가. 이 사소한 준비의 과정들을 나는 어떻게 했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면도를 하고, 세탁을 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지고, 시계줄을 고쳐 매는 그런 준비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참을 수 없도록 만드는 기다림. 그 안에서의 초조함. 시간을 앞질러 먼저 뻗어나가는 그런 마음. 상대와 맞춰 걷지 않으면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터질 것처럼 나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사랑하고 싶다. 문득 그렇게 소리치고 싶다. 다시 더 열렬하게, 모든 것을 거짓말 같다 여기면서, 다시 믿지 않으려 했던, 그리고 결코 믿지 않았던 그런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을 그런 사랑을 네게 줄게. 아니, 내가 한 번도 줘 본 적 없는 그런 사랑을 네게 줄게. 그렇게 소리치고 싶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이른 아침이었고, 적절한 시기가 된다 하여도, 이 마음을 토해내듯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를 초조하게 했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나의 안절부절을 방해하는 모든 초조함이, 얼른 다가오길 바라는 우리의 만남이, 그러나 그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꾸며야 할 시간이, 모든 것을 낯선 것으로 만들었다.
"거짓말하지 마."
꿈 저 너머의 누군가가 속삭였다. 눈발이 내 얼굴에 닿았고, 그것은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그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는 없었다. 모든 것을 거짓말로 여겨 버리고서는, 정말로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나의 말을 번복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의 나를 배신한다.
지금 내리는 이 눈이 그치지 않기를 바랐고, 중천에 뜬 해에 쉬이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늘 이 눈이 내리지 않았을지언정, 그리고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나 이 눈을 놓쳐버렸을지언정, 다시 내 얼굴에 닿을 그 눈이 언제라도 다시 내린다면, 여전히 처음이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눈은 정말로 거짓말처럼 내렸고, 그것은 차라리 사막에 내리는 눈보다도 더 거짓말 같은 것이다.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 거짓말 - 아무리 부정해 보아도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시계를 곁눈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른 흐르기를 하염없이 바라면서도,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시간이 흘러서,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이 부스스한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네 앞에 서서는,
이 눈을 너와 함께 맞고 싶다고
네게 그리 말하고 싶다.